기능 잃은 소방도로 도심 곳곳 시한폭탄

안전불감증, 생명과 재산 앗아간다

2015-11-09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소방관들의 하루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향해 달려가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화재·구급 등의 사고처리를 위해 출동하다 보면 교통체증이나 불법차량 등으로 인해 조바심을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민들이 각종 재난으로부터 불행을 당하거나 커다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우선 안전불감증부터 벗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경남지역 한 빌라에서 화재로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지는 참변이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화재현장 주변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굴절사다리차의 진입과 전개가 불가능했고, 에어매트를 보유한 구조공작차가 다른 곳으로 출동했다가 현장에 늦게 도착한 것이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건물의 복잡화·다양화, 주변 도로의 무질서한 주차, 그리고 주민들의 안전 불감증과 안일한 대처 등 복합적인 요소가 부른 인재'였다.
 
자동차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대부분 가구당 1대 이상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만 주차공간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주택가 주변도로는 밤이면 주차장으로 변해 차량통행조차 원활치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주택가나 아파트, 다세대 주택 고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굴절차나 고가사다리차가 출동해 인명구조와 화재진화활동을 해야 함에도 공간 확보가 어려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인명과 재산피해가 커지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사고발생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주민들의 안전불감증도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서울YMCA복지관 김학열(39) 실장은 국민들 모두가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 기초질서를 지켜서 이 같은 불행을 막아야 하며, 소방당국에서도 소방통로확보를 위한 불법주차금지 주민계도와 단속강화로 '인재'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방통로는 곧 생명통로
 
재래시장이나 주택가, 아파트 등의 소방 통로는 곧 '생명 통로'이다. 화재 등 각종 사고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현장 도착이다. 얼마나 빨리 현장에 도착하느냐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진다.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재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인명 피해까지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소방 통로에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빽빽이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주택가 골목길이나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승용차 한 대만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큼 비좁다. 시장의 경우도 쌓아둔 물건이 소방차 진입을 방해해 대형 화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도 소방차 주차 구획선 안에 차량들을 주차해 놓고 있으나 이를 통제해야 할 관리사무소마저 나 몰라라하며 주민들의 안전 불감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국 어느 도시나 주택밀집지역의 주차난은 심각의 도를 벗어나고 있어 화재나 긴급재난 시 무질서하게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 소방차의 접근이 용이하지 못하다.
 
화재·구조·구급현장으로 출동하는 소방차는 초를 다투며 출동한다.
 
화재 발생으로부터 5분 이내에 화재 현장에 도착해야만 초기에 화재를 진압하고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 , 화재·구조·구급 등 신고접수 후 신속한 출동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소방 출동로를 확보하는 일이다.
 
현장으로 출동하다보면 꽉 막힌 도로에서 소방차는 경적만 울려 대거나 불가피하게 중앙선을 넘어가기도 한다.
 
또한 화재·구조·구급 등 소방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음에도 증가된 차량으로 인한 정체현상으로 출동시간이 지연되고 있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위협받고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큰 애로점은 불법주차
 
일례로 양천소방서에 따르면 양천구 지역에는 올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간 총 131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이틀에 1건 꼴이다. 이 같은 양천구 화재는 3명의 사망자와 2억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발생하게 했다.
 
또 지난 10월에도 화재발생건수와 재산피해액이 전년 동월대비 각각 110%, 291% 증가한 31건의 화재가 발생해 4879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5일에는 2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양천구 목동 빌딩 건설현장에서 큰 불이 발생해 막대한 재산피해를 봤고 4일에는 목동의 5층짜리 다가구 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나 약 2억이 넘는 재산피해를 냈다. 주민 5명은 부상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화재 사고현장을 목격한 인근의 한 상인은 그때 불이 나자 소방차 수십 대가 긴급출동했지만 골목 한쪽에는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또 다른 쪽은 공원이어서 소방차가 쉽게 접근하지 못해 화재진압에 애를 먹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양천소방서 관계자는 양천구에 소방차가 출입하지 못하는 도로는 현재 모두 18곳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화재 발생 시 진압하는 데 가장 큰 애로점은 주택가 골목길에 주차된 불법주차 차량들이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도로관리에 있어 도로 폭 20(M)미터 이상은 시에서, 20미터 미만은 해당 자치단체인 구에서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이는 양천구는 관내도로 중 폭 20M가 되지 않는 도로에 대해 관리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재 시 현장 출동을 위해 소방차가 통과해야 하는 골목길 갓길에 황색선이 그어져 있다면, 소방차 진입로 확보를 위해 구는 불법 주차를 허용해서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지난 6월 여수시 국동 모 아파트에서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긴급 출동을 했는데 당시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입구에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소방차량이 진입에 애를 먹었다.
 
이 화재는 다행히 현장에 먼저 도착한 소방대원의 신속한 조치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초기 진화됐지만 조금만 대처가 늦었다면 자칫 대형화재로 이어져 주민의 인명과 재산피해 등이 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런 모습은 시민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다.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