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치 훼손 논란 ‘곤혹’ 부영그룹
‘대관정 터’ 호텔 건축 시비 여전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부영그룹(회장 이중근)이 역사 가치 훼손 논란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논란은 부영그룹이 ‘대관정(大觀亭)터’에 호텔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일어났다. 대관정 터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반포 후 황실 영빈관으로 사용한 곳이다. 또 을사늑약의 강압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다. 이 때문에 부영그룹은 역사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문화발전이나 교육 등에 힘써왔던 이중근 회장이 이 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점도 적잖은 충격을 주는 모습이다.
이중근 회장 행보와 달라 당혹 시선
서울 중구 소공동 112-9번지 일대에 위치한 ‘대관정(大觀亭)터’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반포 이듬해인 1898년에 덕수궁 인근 한 서양식 주택을 매입해 황실 영빈관으로 사용한 곳이다.
일본군은 1904년 영빈관을 무단 점령해 군사령부로 사용해 고종이 있는 곳을 감시했다. 이후 경성부립도서관이 들어섰고, 1966년에는 민주공화당 당사로도 사용됐다.
또 을사늑약 당시 이토 히로부미와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영빈관에 머물며 을사늑약을 지휘, 조종했다. 해외 영빈들을 맞아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피력한 곳임과 동시에 국권 탈취의 사령탑이기도 한 것이다.
부영그룹은 이곳을 2012년 삼환기업으로부터 사들인 뒤 2015년 5월 호텔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결정과 동시에 부영그룹은 역사 가치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역사학계는 “대한제국의 흔적이 남은 얼마 안 되는 유적이다”며 “을사늑약의 강압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인 만큼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존 여부로 논란이 일자 부영 측은 관광숙박시설 건립 계획 수정에 들어갔다. 대관정 터를 호텔 건물 지상 2층에 보존해 전시관으로 꾸민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북창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소공동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에 대한 관광숙박시설 건립 계획안을 수정가결했다.
소위원회의의 가결에 따라 부영그룹은 대지면적 5701.4㎡에 지하 7층~지상 25층 850실의 객실을 보유한 호텔을 건립하게 됐다. 전체 사업부지 면적의 약 15%는 공공기여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보도폭도 현재 약 1.5m에서 10.5m로 늘어날 전망이다. 도로가 기존 20m에서 25m로 늘어나고 건축한계선이 적용돼 약 9m의 보도가 추가된다.
전시관 만든다
하지만 역사 가치 훼손 논란은 여전하다. 전시관을 만드는 자체도 유물 파괴 행위라는 지적이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2층 규모로 올려서 전시관을 만드는데 그 자체가 유물 파괴행위다”며 “국가를 위해서 기업이 국가에 사용권을 넘기고 거기에 대한제국 역사관을 만드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학계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2층 규모로 전시관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어찌됐든 유적에 손을 대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이 보존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고, 터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해외 사례를 보면 유적이 부서지더라도 다시 복원하거나 그대로 둔다”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발전’이란 명목 하에 파괴하기 바쁜 것 같다. 옛날이야 역사 가치에 대한 개념 없이 성장하기에 바빴다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부영그룹은 그동안 문화발전이나 교육 등에 공을 들여왔던 터라 이 같은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중근 회장은 그동안 기부와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을 통해 기업이익 사회 환원에 앞장서온 인물로 대표됐다. 지난달 29일에는 편년체 역사서 ‘미명(未明) 36년 1만276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부 및 저작 활동과 같은 사회 공헌 활동을 꾸준히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행보를 걸어온 이 회장이 역사 가치 훼손 논란에도 불구하고 호텔 건립에 힘쓰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부영그룹 측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서울시 개발계획을 통과했고 허용된 부분에 한해 최대한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