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치적 쌓기에 제동? 강남구민들 입장 대변했다?
강남구청, 서울시 제2시민청 감사 청구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강남특별자치구 설치 요구’를 하는 등, 시와 구의 대립이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물론 강남구청 측은 강남특별자치구 발언을 두고 “구의 상황을 설명하다 나온 말”이라고 했지만, 이미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이 뿌리 깊다는 데엔 공감을 표했다. 구룡마을, 한전부지 등 굵직한 현안을 두고도 대립각을 세운 데다 최근 수서역 인근에 행복주택을 짓겠다는 서울시의 구상에 대해서도 이견차를 확인했다.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이 바람 잘 날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룡마을부터 시작된 갈등의 골, 사사건건 충돌
교부금이 갈등 원인? 야당 시장 대 여당 구청장?
3일 강남구(구청장 신연희)는 서울시가 제2시민청 건립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전날 강남구민 403명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번 청구의 표면적인 이유는 ‘서울시가 강남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세텍. SETEC)부지 내 제2시민청을 건립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강남구는 보도 자료를 통해 서울시가 현행법을 무시하며 각종 불법을 일삼아 SETEC 부지에 제2시민청을 건립하려 한다고 밝혔다. 강남구가 지적한 서울시의 불법 내용은 크게 △불법 광고물 설치 △무허가 컨테이너 등 설치 △집단급식소 등 무신고 영업 등이다. 또 강남구 측은 시민청 운영조례상 SETEC 용지에 가건물을 지을 수 없다며 법적 하자를 주장했다.
일전에 서울시는 내년 4월까지 약 15억 원을 들여 SETEC에 제2시민청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시민청은 시민소통을 중시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적 중 하나로 꼽힌다. 때문에 이번 강남구의 감사청구가 박 시장에 대한 반발이 원인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감사청구를 두고 일각에선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이 과거부터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와 강남구 간 대립의 골은 깊다는 지적이다. 강남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사실 SETEC 이전에도 구룡마을, 한전부지 같이 굵직한 문제들 때문에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갈등의 시작은 구룡마을이었다. 구룡마을 개발은 2011년 결정됐으나, 2012년 박 시장은 개포동 구룡마을의 개발 방식을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장기간 표류했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개발 방식을 두고 대립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는 혼용 방식으로 개발을 주장했다. 반면 구룡마을의 사업허가권을 가지고 있던 강남구는 수용방식을 주장하며 반발했다. 이를 두고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지난해 7월 강남구는 구룡마을 개발과 관련, 서울시 공무원들의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하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소송은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 말 서울시가 강남구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구룡마을 때문에 시작된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갈등은 한국전력 부지를 둘러싸고 고조됐다. 올 4월 강남구 노른자 부지에 위치한 한전을 현대차그룹이 매입하면서 시와 구의 갈등이 커졌다. 이유는 한전부지를 매입한 현대차그룹이 내는 공공기여금 1조7000여억 원 때문. 서울시는 한전부지부터 코엑스, 잠실종합운동장까지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강남구는 이에 반발했던 것이다. 강남구는 ‘현대차가 내는 공공기여금은 강남구를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남구가 올 8월 서울시 계획에 대해 소송을 내기도 하며 갈등의 불씨가 커지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던 것이 이번 SETEC 감사요청까지 이르게 됐다. 물론 감사청구의 표면적인 이유는 서울시의 부당, 위법성을 가려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사건건 대립했던 이력 때문에 이번 건도 서울시와 강남구청 간의 뿌리 깊은 갈등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돈과 지원의 상관관계?
이런 시각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사적인 대립이라기 보단 강남구의 입장에선 구민들을 대변해 일을 한 것”이란 입장이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여당 구청장 대 야당 시장의 갈등’이란 프레임에 대해선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번 SETEC 감사청구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청은 사실 혐오시설이 아닌 데다, 강남구 측에 제2시민청을 위한 SETEC을 임시로만 활용하겠다고 공문을 통해 전달한 바 있다”고 밝혔다. 강남구가 제2시민청 건립에 반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청 측은 임시 활용이 고착화될 가능성 때문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교부금 문제’와 ‘여당 대 야당 구조’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월 20일 강남구청은 보도 자료를 통해 시세징수교부금 문제를 지적했다. 시세징수교부금은 서울시가 각 자치구로부터 시세를 징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인건비, 고지서 작성, 송달 비용)을 추후 보전해주는 것인데, 강남구 측은 “서울시가 시세의 34%를 징수하고도 시세징수교부금은 27%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즉, 서울시가 강남구로부터 걷어간 만큼 추후 보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남구청 세무관리과 송필석 과장은 “진정한 풀뿌리 자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치구 재정을 하향평준화 시키는 ‘시세징수교부금’을 줄이기보다는 서울시 시세의 일부를 자치구로 이양하고, 교부율을 높여 자치구 불균형을 해소하고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 배경엔 결국 ‘교부금’ 등 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다른 편에선 야당 시장 대 여당 구청장 구도로 몰아가기도 한다. 사실 시민청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표적인 공적 중 하나로 꼽힌다. 소통을 중시하는 박 시장의 철학이 반영된 게 시민청이다. 때문에 제2시민청을 두고 나온 감사청구에 대해 일각에선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적 쌓기에 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 때도 박 시장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공격이 이어졌는데, 이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한편 서울시에 대한 감사는 5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 관계자는 “5일 저녁부터 감사가 시작됐다”며 “추후 진행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언급했다.
<용어>
수용방식
도시개발사업을 할 때 국가·지방자치단체 등 사업시행자가 협의매수나 수용의 방법으로 사업지구 내 토지를 전부 취득한 뒤 사업을 시행하는 방법이다. 사업시행자(공적 당사자)가 토지를 전부 취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전의 토지 소유자가 가지고 있던 권리는 모두 소멸된다. 사업기간의 단축 등 사업시행자의 입장에선 간편한 방식이지만, 토지소유자의 생활기반 등이 와해되는 문제도 있다.
혼용방식
수용방식과 환지방식을 혼용해 개발하는 방법. 환지방식은 사업지구 내 토지소유자의 권리를 변동시키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는 사업시행 전과 후의 토지 위치, 면적, 환경 등을 고려해 사업시행 후의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이전의 소유권을 사업 이후 정리된 대지에 이전시키는 방식이다. 혼용방식의 경우 수용, 환지방식의 각 장점을 활용할 수 있지만 사업시행자와 토지소유자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