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갈이’ 교수 100여 명 검찰 수사
학계·출판계 “곪았던 치부 드디어 터졌다”
2015-11-02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연구 실적을 부풀리고자 남이 쓴 책을 자신이 낸 것처럼 표지만 바꾼 이른바 ‘표지갈이’ 또는 ‘판갈이’를 한 대학교수들이 대거 적발됐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지난 27일 표지갈이를 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로 서울·충청지역 대학교수와 출판사 관계자들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검찰은 앞서 지난 8월 파주지역의 한 출판사를 비롯, 출판사 여러 곳을 압수수색해 표지만 바꾼 이공계 전공서적 10여 권을 확보했다.
대학 교수들과 출판사가 짜고 기존에 다른 교수들이 출간한 전공서적을 표지만 새로 바꿔 출간· 판매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순수 자연과학 분야의 대학 전공책으로, 내용과 제목은 그대로 두고 저자 이름만 바꾸거나 일부는 제목에 한두 글자만 넣거나 뺀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책을 교수 4,5명의 이름으로 출간한 경우도 있었다.
검찰은 수사선상에 오른 교수들이 서울 유명 사립대 교수를 포함해 100여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소환조사한 교수는 60여명에 이르지만 앞으로 100여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학계와 출판계는 검찰의 전면수사에 “곪았던 치부가 드디어 터졌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표지만 바꿔치기한 책을 직접 쓴 저서처럼 꾸며 학생들에게 팔았고, 자신의 연구실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원저자 가운데 일부는 앞으로 새 책을 낼 때 편의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동료 교수와 출판사의 표지갈이 행태를 눈감아주기도 했다.
다수의 교수들은 “표지갈이는 논문표절, 학력위조로서 올해 논란이 됐던 문학계 표절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며 “최고 지성이라는 교수들이 통째로 베낀 책을 마치 자신의 책인 양 속이고 학생들에게 구매하게 한 뒤 강의하는 등 도덕불감증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있는 서울의 또 다른 출판사 한 곳도 압수수색하고 연루된 교수들을 줄소환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혐의를 확인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소환된 교수들 중 이공계 교수들이 표지갈이를 주로 애용했고 일부 인문계 교수들도 수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중 원저자는 10여명이며 나머지는 원저자나 출판사와 협의해 표지갈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는 표지갈이에 가담한 교수들에게 약점을 잡고 압력을 행사해 ‘추가 표지갈이’를 종용했고, 이로 인해 ‘전공서적 통째로 베끼기’는 마치 찌라시처럼 대량 확대 재생산됐다.
검찰은 저작권법 위반, 업무방해 혐의를 검토하고 있지만 수사개시 이후 일부 교수들의 증거인멸 정황도 포착, 이런 교수들은 엄단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학교수들이 정기적으로 책을 내 연구실적을 쌓는 데 시간에 쫓기거나 대학생들에게 전공책을 팔려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학교수들과 출판사의 도덕불감증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수사결과에 따라 학계에 핵폭탄급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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