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연결’ 사물인터넷, 그림자도 짙다
IBM·시스코 등 잇따라 한국시장 진출 선언
소비자보호·해킹대책 등이 구조적 과제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14일(미국 동부시간) 대한상공회의소와 전미(全美)제조업협회가 워싱턴 D.C. 윌라드 호텔에서 공동 주관한 ‘한미 첨단산업 파트너십 포럼' 축사에서 “지금 세계 각국은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의 원천인 제조업의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면서 “스마트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제조업의 만남은 전통 제조업을 신성장·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과 빅데이터(Big Data) 기술을 활용하면, 첨단 센서로 측정한 소비자 정보가 공장으로 실시간 전달되고, 주문자 맞춤형 제품을 생산해서 드론으로 배송하는 것도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물인터넷 사업전략 발표
박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IoT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같은 날, 다국적 ICT 통합솔루션 기업 IBM은 서울에서 2020년까지 14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IoT 시장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IBM은 이날 한국 기업과 언론을 상대로 ‘IoT 사업전략 발표회를 열고 “IoT는 2020년 세계 시장 규모가 1조7000억 달러(2000조 원)에 달할 만큼 유망한 분야"라며 “특히 한국이 IoT 기술을 통해 기업의 수익과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펴낸 ‘2015년 OECD 디지털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 100명 당 온라인으로 연결된 장치 수’에 있어 한국은 37.9개로 단연 1위다. 미국(4위·24.9개), 독일(6위·22.4개), 일본(16위·8.2개), 중국(20위·6.2개) 등과 비교할 때 IoT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매우 잘 갖춰져 있다. IBM이 미국, 독일, 브라질, 중국, 일본과 함께 한국에 ‘IoT 센터'를 설립키로 한 것도 한국의 이런 ICT 환경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IoT는 전자장치, 소프트웨어, 센서, 그리고 네트워크 연결성이 내장된 물리적 물체, 즉 “사물들”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사물에 내장된 이런 요소들은 사물들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교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IoT는 사물들이 기존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가로질러 감지되고 통제되도록 함으로써 물리적 세계와 컴퓨터 기반 시스템들 사이에 더 직접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기회를 창출한다. 이로 인해 효율, 정확성, 경제적 편익이 증진된다. 각각의 사물은 그것에 내장된 컴퓨팅 시스템을 통해 독자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인터넷 인프라 내부에서 상호 운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이 되면 IoT에 편입될 사물이 50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미 6년 전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의 수가 사상 처음 지구 전체 인류의 수를 추월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장비업체인 미국의 시스코(Cisco)는 IoT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가 2013년부터 2020년 까지 총 19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지난 2010년 기준 세계무역 총액규모에 해당된다. 시스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환경보호, 수자원 관리, 폐기물 관리 등 총 12개 분야에서 스마트시티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스마트 주차 서비스는 시민들의 삶을 불편하게 하고 교통 혼잡의 큰 원인이 되었던 주차 문제를 해결했다. 바르셀로나 시는 차가 있는지 감지하는 센서를 주차 공간에 심고 센서를 주변에 설치된 스마트 가로등과 무선으로 연결했다. 자동차가 주차를 하면 무선으로 연결된 가로등을 통해 데이터센터에 ‘주차 중’이라는 정보가 전달되고 중앙 관제 시스템을 통해 주차 공간에 대한 정보가 스마트폰 앱에 즉시 반영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이 더 쉽고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바르셀로나 시는 스마트 주차 솔루션을 도입한 후 주차 효율이 14% 높아졌고 주차 요금 수입이 매년 5000만 달러가량 늘었다. 시스코는 한국의 인천 송도를 비롯해 유럽, 미국, 인도 등에 스마트시티 센터를 짓고 도시 전체를 하나의 인터넷망으로 연결해 관리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인천송도 스마트시티 건설
시스코는 얼마 전 척 로빈스 새 CEO의 취임을 계기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사물인터넷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애플·구글 등 주요 ICT업체들이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빈스 CEO는 “시스코는 단순히 기기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사람, 건물, 기기 등을 모두 연결하는 만물 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스코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도시용 와이파이(WiFi·무선랜) 기술을 이용해 가로등을 모두 연결해 중앙관제센터에서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IoT라고 하면 일반인은 휴대전화기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조종하는 가전제품을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정작 IoT는 산업에서 더 많이 활용된다. 대규모 조립라인이나 제트엔진에 센서를 달아 이를 인터넷에 연결하면 해당 장비의 운전이 더 부드러워지고 효율적이 된다.
IoT가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IoT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적 상황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해커가 IoT를 활용해 원격으로 자동차의 전자시스템을 장악해 자동차에 해를 입히는 것을 막을 보호 장치의 개발을 자동차회사에 의무화하는 법안이 이미 미국 상원에 제출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규제와 관련해 의문이 뒤따른다. 만약 자동차가 해킹을 당해 점화 스위치가 작동불능에 빠진다면 이것을 부품 결함으로 간주해 리콜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강도가 창문을 깨고 주택에 침입한 것과 같은 범죄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규제당국인 FTC는 미국 의회가 이런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보호는 IoT 장치 제조자들의 부담이라는 것이다. FTC는 “그러한 법률은 신축적이고 기술 중립적이어야 하면서도 동시에 데이터 수집 및 사용 관행에 관해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어떻게 제공할지 기업들에 분명한 통행규칙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과 제도는 언제나 기술발전을 뒤쫓을 수밖에 없는 속성이어서 앞으로 IoT는 숱한 규제 관련 딜레마를 낳을 것 같다.
scottnearing@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