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에 25만 원짜리 베스트셀러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자 1000억 원 언급…복제본 판매에 영향?
최근 조선 왕실본도 등장, 가치 급상승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이 최근 화제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배익기 씨(52). 그가 소유한 해례본은 ‘상주본’이다. 이는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간송미술관 소장)과 같은 판본인데, 보존 상태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주본은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누락돼 있다. 하지만 간송본에 없는 훈민정음 창제 원리에 대한 주석이 수록돼 있기 때문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로 평가받고 있다.
배씨가 평가액(1조 원)의 10%를 자신에게 주면,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9일 배씨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조 원의 가치가 된다고 문화재청이 얘기해 왔으니 10%를 받는 게 무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배씨의 발언을 두고 이후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배씨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상주본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배씨는 아버지가 상주본을 물려받았다는 발언을 과거에 자신에게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씨는 ‘상주본은 배씨가 자신의 골동품 가게에서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며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형사 사건에서 배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조씨가 지속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해왔다. 논란은 조씨가 2012년 사망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아직까지도 배씨 소유의 상주본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배씨의 소유인지도 불분명한 데다, 1조 원의 10%인 1000억 원을 요구하는 배씨 발언의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배씨의 발언이 교보문고에서 판매되고 있는 해례본 복제본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 9일 훈민정음 해례본을 최대한 원본과 비슷하게 만든 복제본이 서점에 출간됐다. 진본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이 복제본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례본 복제본 세트 두 권은 10월 22일 기준, 교보문고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8위(집계기준: 2015. 10. 14~2015. 10. 20)에 오른 상태다. 19일까지 약 1800부 팔렸다. 출판시장이 얼어 있는 현 상황에서 25만 원의 고가 책 세트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이 이례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자신의 상주본 가치가 1조 원이라는 배씨의 발언이 복제본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복제본 세트 두 권의 가격이 비싸다고 지적한다. 복제본 세트는 복제본과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한글의 탄생과 역사’로 구성돼 있다. 복제본은 66쪽이고, 해설서는 264쪽이다. 이 세트의 가격이 25만 원인데, 복제본이 책으로 판매된 본래 취지는 사실 ‘한글의 가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함’인데 이와는 맞지 않게 고가라는 것이다. ‘널리 보급’하려면 가격 또한 대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복제본을 구매한 연령 및 성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교보문고 분석에 따르면 주로 중장년층 남성이 구매자들이다. 40대 남성(17.2%), 50대 남성(23.3%), 60대 남성(19.1%) 순이었는데, 주요 구매층이 대부분 고가의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재 교보 측은 복제본의 ‘대중 보급판’의 제작 및 판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한 고서화 수집가가 ‘조선 왕실본’을 들고 나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수집가는 1986년 7월 일본 골동품 상가에서 왕실본을 구입해 그동안 보관해왔다고 모 언론사에서 밝혔다. 이 왕실본은 간송본, 상주본과 달리 낙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간송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되며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남몰래 소장하고 있었는데, 상주본이 일으킨 작금의 사태를 보다 못해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29년 전 일본에서 훈민정음과 함께 다른 고서, 유물을 한꺼번에 여럿 구했다. 예외없이 문화재 수준이다. 개중에는 멸실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급 물건들도 있다. 추측컨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왕실에서 통째로 유출된 듯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왕실본의 등장과 복제본 판매, 상주본 소장자 논란 등 해례본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멈출 줄 모르고 있다.
▲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1446년(세종 28)에 발간된 해례본은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의미, 사용법 등을 자세히 기록한 책이다. 1962년 12월 국보 제70호로 지정됐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보로 지정된 해례본은 ‘간송본’이고, 일반인 배익기 씨가 소유하고 있다는 해례본은 ‘상주본’이다. 최근 ‘조선 왕실본’이라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등장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간송본, 상주본과는 다른 해례본이다. 이 해례본은 고서화 수집가가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