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 부족 폭로전 된 롯데사태
신동주 반격→신동빈 반박…다시 미궁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롯데그룹 경영권에 드리운 먹구름이 좀처럼 걷히질 않고 있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긴급 기자회견과 소송, 광윤사 주주총회로 형제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뜻”이란 주장으로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도 다시 논의 중심에 섰다. 이와 관련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은 신 전 부회장의 경영실패를 주장하고 나섰다. 경영권 분쟁이 지분경쟁에서 자질 부족 폭로 양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신격호 총괄회장 건강상태 관심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지난 7월 15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롯데홀딩스를 장악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8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롯데그룹 경영권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2차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경영권을 다시 찾고,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신 회장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시작했다”고 공개했다.
또 신 전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위임장 서명 영상을 공개하며 신 총괄회장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렸다.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이 장남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14일에는 광윤사 주주총회를 열고 신동빈 회장을 광윤사 이사에서 해임시켰다. 광윤사는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롯데홀뎅스의 최대주주다. 광윤사가 보유하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은 28.1%다.
신 전 부회장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광윤사 보유 지분 50%와 신 총괄회장에게서 1주를 사들여 과반수를 확보했다. 또 광윤사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롯데그룹 경영권 탈환에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도 논란이 됐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후 신 총괄회장은 치매설을 비롯한 건강 이상을 의심하는 각종 설들의 중심에 섰다.
신동빈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판단능력이 고령으로 저하됐다”고 주장한다. 신 전 부회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 총괄회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지난 16일 언론인터뷰에 응하면서 치매설은 설득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또 신 전 부회장은 이런 설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신 전 부회장이 대표로 있는 SDJ코퍼레이션은 지난 19일 “신 총괄회장이 건강검진을 위해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서울대병원으로 출타해 간단한 체크를 받았다”며 “건강하다는 결과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34층 놓고 으르렁
하지만 서울대병원 측은 “상태를 추측할 만한 진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 어떤 코멘트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혈압과 맥박을 측정했지만 건강검진이 아니었으며, 검진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장도 타격을 입었다.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이 건강하며,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한 문서가 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믿기는 어렵다는 시선이 나온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는 오는 28일부터 시작되는 소송에서도 중요한 증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 총괄회장이 판단 능력 저하를 이유로 일본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된 만큼 경영 지속 능력을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주장만 난무한 가운데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자질부족 폭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동생 신동빈 회장이 의도적으로 중국 사업에서 발생한 1조 원가량의 적자를 숨겼고,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뒤늦게 이를 알고 격노했다”고 주장한다. 또 일본롯데홀딩스 자금으로 손실을 메우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을 해고했던 것에 대해 “잠시 쉬게 한다는 의미였는데 신동빈 회장 측에서 나를 쫓아내는 계기로 삼았다”며 “아버지의 경영 복귀와 한·일 롯데 분리경영 복원이 목표다”고 언급했다.
반면 신동빈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에게 중국 사업 적자에 관한 내용을 수시로 보고했다”며 “내용을 숨긴 사실이 없다”고 반박한다.
또 “신 전 부회장은 회사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무시하고 투자결정을 내렸다가 대규모 손실을 입혀 해임된 것”이라며 “투자의 타당성 조사도 없었고, 직원의 이메일을 무단으로 열람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이 투자로 인해 95억 원가량의 손해를 봤다”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측은 “한·일 분리경영은 기업을 총수 일가의 사유재산으로 보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며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투자를 감행하다 적발돼 해임된 것인데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양 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 34층의 관할권에서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6일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 배치 직원 해산 및 CCTV 철거 등 6가지 요구 사항을 통보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 했다”고 밝혔다.
앞서 신동빈 회장은 지난 8월 이일민 전무를 비서실장으로 앉혀 34층 통제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의 반격과 신 총괄회장이 비서실장을 해임하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양측이 34층 통제권을 놓고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신 전 부회장이 이번 논란으로 34층 전용 카드키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절차를 밟은 뒤 신 총괄회장을 만날 수 있던 상황에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편, 롯데그룹 경영권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반(反) 롯데정서도 깊어지고 있다. 이는 롯데그룹 이미지와 기업가치 훼손은 물론 호텔롯데 기업공개, 면세점 사업권 불투명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롯데그룹 경영권 싸움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지면서 오는 28일부터 한국, 일본 양국에서 시작되는 소송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