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권창출 계승자 키운다”
2007-05-03 김대현
4·25재보궐 선거로 범여권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발전적 해체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고,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물밑 통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대중(DJ) 전대통령이 주문했던 ‘3단계 통합방안’이 그대로 실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DJ가 민주개혁진영에서 계승자를 선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기 때문에 DJ가 노 대통령과 물밑교감을 통해 차기주자를 키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DJ는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혀왔다.
손학규 전경기지사와 정운찬 전서울대총장 등은 범여권의 잠재적 주자로 인식되면서 DJ와의 관계설정도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한 한나라당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대표는 조정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범여권 ‘빅뱅’이 진행되면서 DJ의 ‘복심’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은 더욱 분분해질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무패 신화’가 깨졌다.
지난 4월 25일 경기 화성, 대전 서을 등에서 치러진 재보궐 선거는 ‘무소속’과 지역 일꾼론의 승리였다. 특히, 한나라당 내부의 공천잡음은 뼈아픈 패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게다가, 당 안팎에서 불거진 ‘돈 파문’은 재보궐 패배를 넘어 연말 대선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태료 대납 사건’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고수하고 있어,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지 몇 건의 ‘사고’가 터졌을 뿐이지만, 한나라당이 입은 타격은 상상 이상이다.
한나라당 당안팎 내홍으로 ‘자중지란’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면서 “지도부와 대권주자들은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동안 대세론에 안주했던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면 정권 창출은 불가능하다”고 성토했다.
당내 일각에선 재보선 참패가 한나라당에 ‘보약’이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작은 선거에서 ‘승리’하고 안주하는 사이에 큰 선거는 놓쳐 왔다. 97년,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웰빙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패배로 느슨해진 당내 분위기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후보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던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대통합의 ‘씨앗’이 될 김홍업씨의 당선과 무소속 후보들의 낙승이 가져올 변화를 말하는 것. 또, 우리당 ‘간판’과 노무현 대통령을 선거에서 배제하자, 여론이 반한나라당 구도로 변형되는 상황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은 이제 재보선 이후의 정치권 구도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심대평, 김홍업씨의 당선으로 범여권의 통합작업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 중심에는 김대중(DJ) 전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김홍업 의원은 당선 소감을 밝히면서 “50년 전통의 민주당이 중심이 돼 중도개혁 세력이 통합을 이뤄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이는 DJ의 ‘메신저’로서 자신의 역할을 밝히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DJ는 지난 연말부터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여왔다.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도 DJ의 행보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어 양측의 물밑교감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DJ가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이유는 살아생전에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정립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그동안 자신을 정점으로 지탱해왔던 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에 일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자신이 뿌리내린 정책기조 자체가 재검증 대상이 될 게 자명하다. 대북송금 특검 당시 DJ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크게 추락했다는 점, 그리고 각종 의혹사건이 재조명될 경우 DJ는 과거 대통령들이 걸었던 ‘불명예’를 떠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 호남 민심은 ‘미워도 다시한번’ DJ에게로 쏠렸다. 민주당에서 김 의원을 공천하자, ‘부자세습’ 등 비판론도 많았지만 대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따라, DJ는 연말 대선에서도 호남의 표심을 갖고 노 대통령보다 더 ‘파워풀’한 뒷방 정치를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봐야 한다.
호남민심 ‘미워도 다시 한번’
그렇다면, 과연 DJ의 ‘복심’(腹心)은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은 지난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경기지사의 행보와 DJ를 연결시키는 분위기다. 손 전지사가 한나라당 당적을 가진 자신의 측근조차 배제한 채 ‘백의종군’을 선택한 이면에는 ‘든든한 배후’가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손 전지사는 탈당을 전후해서 ‘DJ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DJ 또한 자신의 정책을 계승할 수 있는 인물이면 누구든지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좀처럼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결합한다면, 올해 대선은 또 한 차례 파란을 일으킬 것이다. 손 전지사는 과거 민주개혁 세력의 한 축에 몸담으면서 동교동계 인맥들과도 상당히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범여권 한 관계자는 “손학규 전지사가 결국 범여권에 발을 들여놓을 것”이라며 “관건은, DJ나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어느 정도까지 지지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MB진영도 손 전지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MB측 핵심 관계자는 “올 하반기 대선에서 DJ는 손학규 전지사를 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뒤, “호남과 충청을 연결하고 수도권 출신인 손 전지사를 앉히게 되면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는 또, “DJ는 이를 통해 자신이 추구했던 정치적 사안들을 손 전지사가 계승, 발전시켜 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DJ측은 이러한 정치권의 해석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손 전지사와는 ‘어떤 교감도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과거 대선에서 그랬듯이 올해도 충청권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대치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정운찬 전서울대총장은 정치적으로 ‘담금질’이 부족하다. DJ가 정 전총장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다.
범여권의 ‘빅뱅’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도 조만간 탈당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당 해체와 새로운 통합신당의 출현이 더욱 가시화됐다는 점이 이번 재보선이 가진 또 다른 의미다.
‘D-day’는 오는 6월 말경이 될 듯하다. 범여권이 하나로 묶여 경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3~4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범여권이 이처럼 활력소를 찾았다면, 반대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이번 재보선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박근혜 전대표는 ‘전투력’에 흠집이 났고, 이명박 전시장도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양강구도가 무너지면서 두 사람의 여론조
사 지지율도 차츰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박근혜 유세현장 조직 동원(?)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벌이는 과정에서 ‘구름 관중’을 끌어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수가 인위적인 동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이로 인해 재보선에서 본인들을 과시하는 홍보효과를 올렸는지는 모르지만, 선거에는 이렇다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양진영은 이번 재보선에서 DJ의 영향력이 다시금 입증됐고,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의 구도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느라 바쁘다. 범여권 통합추진 움직임에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앞으로 상당기간 지지율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 대통령의 묵인 하에 진행되고 있는 DJ의 ‘계승자’ 선별작업에서 과연 누가 적임자로 부상할지 아직은 불명확하다. 하지만, 손 전지사처럼 DJ의 대표적인 치적을 공개 지지하고 나선 인사들 중 한명이 선택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선 3수생으로 돌아올까”
한나라당 경선구도가 이명박 전시장과 박근혜 전대표의 양강체제로 굳어지면서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경선 흥행을 위해, 홍준표 의원 등이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이회창 전총재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전직 고위 당직자 A씨는 이와 관련, “최근에 이회창 전총재 주변 인사들과 만났는데, 이 전총재가 귀국하는 날(4월 27일) 공항에 환영객들을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면서 “주변에서 이 전총재가 다시 출마해야 한다는 식의 제안을 해서 그런지, 과거와는 조금 입장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을 간 것도 과거 이 전총재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 가신 것 같다”고 했다.
이 전총재는 지난 4월 27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했다.
이 전총재는 현재 이명박, 박근혜 양진영에서 영입대상 ‘0순위’에 올라 있다. 그만큼 아직까지 이 전총재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보고 있는 것. 하지만, 이 전총재가 섣불리 어느 진영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전총재가 DJ처럼 ‘대선 3수생’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