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파면’ 국정원 직원 승소

“성 접대 받고 신분 노출됐지만 파면은 가혹”

2011-06-14     최은서 기자

명함 건네 신분 노출…술값 숙박비 성매매 비용 항만청이 부담
“성관계 인정할 만한 자료 없고 비위 정도에 비해 징계 과중”


[최은서 기자] = 국정원 직원이 피지도기관으로부터 향응을 받아 징계를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정원 직원 이모씨는 보안지도를 한 뒤 만찬에 참석해 성 접대를 받고 신분을 노출시키는 등 물의를 빚었다. 이씨는 품위 손상 등의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국정원에서 파면됐고, 동료직원은 강등됐다. 이후 처분에 불복한 이씨는 국정원장을 상대로 “파면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비위 정도보다 징계가 과중하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1990년 2월경 국정원에 임용된 이씨는 2008년 8월경부터 대테러보안국 보안지도팀원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2009년 12월 8일 동료직원과 함께 한 지방해양항만청을 찾아 항만시설 보안점검을 하는 등 보안지도를 했다.

품위 손상 이유로 파면

보안점검을 마친 후 항만청에서 마련한 만찬에 참석한 이씨는 과음을 했다. 만취 상태가 된 이씨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동료·항만청 직원과 함께 항만청 인근의 가요주점으로 옮겨 술자리를 이어갔다.

이씨 등은 가요주점에서 양주 3병과 맥주 1박스를 나누어 마시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여성 ‘도우미’ 3명을 불렀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씨는 도우미의 외모를 문제 삼았다. 이씨는 ‘도우미들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무려 3차례나 도우미 교체를 요구했다.

도우미 교체를 요구하며 이씨는 주점사장에게 국정원에서 제작한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명함에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신분이 노출될 만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로부터 특이한 명함을 건네받고 의아하게 여긴 주점 사장이 항만청 직원에게 이씨의 직업을 물어봐 신분은 들통 나고 말았다. 절대 외부에 노출해선 안 되는 국정원 직원 신분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이후 이씨는 주점사장에게 “오늘 여기서 혼자 자야하는 데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느냐”고 요구했다. 이후 이씨는 주점 사장이 소개한 도우미 여성과 함께 항만청에서 마련한 숙소까지 동행했다. 이날 술값과 성매매 비용, 숙박비 등 일체의 접대비용은 모두 항만청에서 부담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두 파악한 국정원은 품위 손상 등의 이유로 두 사람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당시 국정원은 “이씨가 주점사장에게 성매매가 가능한 도우미 여성을 불러달라고 한후 도우미와 함께 항만청에서 마련한 숙소에 투숙하는 등 향응을 제공 받았으며 신분과시 목적으로 주점 사장에게 개인명함을 건네주어 직원 신분을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 이씨를 파면조치했으며, 동료직원은 강등했다.

파면에 불복
국정원장 상대로 소송


이후 징계에 불복한 이씨는 지난해 4월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였으나 기각됐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여긴 이씨는 결국 서울행정법원에 국정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항만청에서 마련한 식사자리와 술자리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업무의 특성상 불가피한 것”이었다며 “술자리에서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술자리 후 성매매를 한 사실도 없으므로 향응 수수 및 품위손상을 이유로 징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주점 사장에게 명함을 주거나 신분을 노출한 기억이 없다”며 명함을 건넨 사실을 부인했다. 이씨는 “명함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점사장은 항만청 직원으로부터 신분을 전해 들었으므로 본인이 신분을 노출한 것과 동일하게 평가하여 징계사유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씨와 함께 있었던 동료직원이 강등처분만을 받은 사실을 들어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1부(재판장 오석준)는 “이씨가 항만청에서 마련한 술자리에 참석해 향응을 제공받고 만취한 상태에서 불미스러운 언행을 했을 뿐 아니라 주점 사장에게 명함을 건네줌으로써 신분이 노출되도록 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며 “이는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와 청렴의무, 품위유지의무를 모두 위반한 것으로 국정원직원법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씨가 국가기밀이나 중요한 정보를 누설·유출하거나 국정원 직원이라는 직위를 남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의 중대한 비밀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신분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점은 인정되나 국정원의 업무를 수행함에 곤란한 사정이 발생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가 도우미와의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항만청으로부터 향응 등을 제공받은 동료직원에게 향응 수수 및 성매매로 인한 품위손상이라는 징계 사유를 인정하면서도 강등 처분한 것에 비하면 이씨에 대한 처분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씨가 형사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다는 점을 종합해볼 때 파면 처분은 이씨의 비위 정도에 비해 과중한 징계로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처분을 취소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