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벼랑끝 ‘당권 사수’대해부
‘총선 승리’ 명분으로 비노 협공 정면돌파 작전
통합전당대회론으로 조기 전당대회 무력화
계파 초월 특보단…조기에 범계파 선대위 구성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내년 총선 승리와 2017년 정권 교체를 위해 탈당·신당파를 포함한 모든 야권이 ‘빅텐트’ 안에 뭉쳐야 한다.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통합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박영선 의원)
“이건 반칙 아닌가 싶다. 국민들은 지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일을 해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당내 권력싸움으로 비춰지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최재성 의원)
“야권 통합을 위한 방안으로 통합전당대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당의 단합이 먼저고 그 다음이 통합이다. 다음 총선 승리를 위해 야권이 통합돼야 한다”(문재인 대표)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통합전당대회를 둘러싼 미묘한 움직임이 있었다. 당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박영선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밖의 천정배·박주선 의원 등 신당 세력과 정의당, 민주당 등 야권이 함께 전당대회를 치러 하나의 정당으로 선거에 임하자는 ‘통합전당대회론’을 제기했다.
이 경우 문재인 대표는 대표직을 일단 사퇴한 뒤 후보 중 한 명으로 다시 대표 경선에 나서야 한다. 이에 대해 문 대표의 핵심 측근인 최재성 의원(총무본부장)은 ‘문재인 흔들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통합전당대회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박영선은 文의 ‘X우먼'?
정치평론가 A씨는 “‘문재인의 비밀 카드’를 측근들조차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문 대표는 당내 비주류 핵심에서 요구하는 조기 전당대회를 피하기 위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통합전당대회를 화두로 던져 전선을 교란시키려 한다. 이 과정에서 박영선 의원이 ‘X우먼’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호남 출신을 중심으로 당내에선 문재인 대표체제로 총선을 치렀다가는 완패할 것이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따라서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구도는 문 대표의 2선 퇴진을 전제로 할 때 성립된다.
반면, 통합전당대회는 문 대표가 당내 다른 유력 인사들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자’로 다시 통합야당의 당권에 도전할 수 있다. 현실성은 매우 낮다. 당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천정배·박주선 의원이 들러리를 설 리 만무하다. 정의당과 민주당도 사실상 새정치연합에 흡수통합 되는 이 방식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만일 통합전당대회가 현실화되더라도 야권의 세력분포로 볼 때 문 대표의 승리가 확실시 된다. 박 의원의 통합전당대회론은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비노계에서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조기 전당대회와는 결이 다른 셈이다. 문 대표에게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는 통합전당대회론을 제기한 박 의원을 A씨가 ‘X우먼’이라고 지칭한 이유다.
통합전당대회는 당내 비주류의 협공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표가 당권 사수와 대권 고지 등정을 위한 비밀 카드의 하나다. 새정치연합 당직자 B씨는 “앞으로도 지난 9월 ‘재신임 정국’ 때 밝힌 재창당 수준의 ‘뉴 파티’(New Party, 새 정당) 비전을 차례대로 구체화 시켜 비주류의 공격을 무력화 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문 대표의 당권 사수를 위한 첫 수는 계파를 초월한 대표 특보단 구성이다. 조만간 비주류 인사들을 대거 포함한 특보단을 구성한다는 계획 아래 대상 인물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외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자문위원단을 꾸리거나 4선 이상 중진 연석회의를 출범시키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문 대표 본인도 “최고위원회 논의만 갖고 (완전히)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비주류 의원들을 더 많이 포함시키는, 특보단이든 자문위원단이든 구성해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함께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이 강조해온 ‘통합과 혁신’이란 키워드를 살려 나가면서 비주류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차원이다.
하지만 특보단이나 자문위원단, 중진 연석회의 같은 인적 구성만으론 한계가 있다. 비주류에선 이런 시도들을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통합 행보라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비주류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빅 카드가 있어야 한다. 바로 통합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발족이다. 범계파 선대위를 발족시켜 일찌감치 선거 모드로 들어가면 문 대표에 대한 퇴진 압력도 묻히게 된다.
통합선대위 구성은 또 하나의 부수효과도 챙길 수 있다. 당내 저항세력인 박지원·안철수·정세균·김한길 의원 등을 참여시킬 경우 총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책임론을 분산시킬 수 있다. 만일 문 대표 홀로 총선을 지휘했다가 참패할 경우 책임론에 휘말려 당권을 내려놓는 건 물론이고 대권 고지 등정도 접어야 한다.
조기 선대위 출범은 비노계 일각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박지원 의원은 10월 8일 방송에 출연해 “호남에서나 서울에서나 그 누구를 만나도 새정치연합이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결론”이라며 “선대위를 조기에 출범시켜서 총선업무를 완전히 선대위가 이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통합론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조기 선대위를 출범시켜 일단 총선에서 승리하고, 후에 대선승리를 위한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강창일 의원은 지난 9월에 ‘조기 선대위 제안서’를 작성해 다른 비주류 의원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박지원·안철수·김한길 의원과 이종걸 원내대표, 당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 의원은 이 제안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계파를 초월한 조기 선대위 구성은 문 대표에게 양날의 검이다. 이를 수용할 경우 공천권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 각 계파 수장들이 자기 사람 심기 경쟁을 벌이면서 친노계가 설 땅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당장 공천혁신안에 포함된 ‘현역 의원 하위 25% 물갈이’ 과정에서도 극심한 계파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현역 의원들을 상대로 점수를 매길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도 더욱 어려워진다.
현역의원 25% 물갈이 촉각
그러나 비주류에서 제시한 이 카드조차 외면하면 당 분란 수습은 요원하다. 총선을 앞두고 연쇄탈당이 줄을 잇게 된다. 이 경우 총선 패배는 필연이며, 문 대표의 대권 가도마저 닫힐 수 있다. 정치평론가 C씨는 “문재인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대권을 잡기 위해선 계파 수장으로 머물러선 안 된다. 지금 시점에 비주류를 모두 껴안는 ‘용광로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부산 출마도 이와 연결되는 정면 돌파 승부수다. 당초 문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전국적인 선거지원을 명분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출마를 포기했다. 하지만 공천혁신안에 문 대표를 포함한 당의 전·현직 대표들은 열세지역에 출마하라는 권고가 담겼다. 문 대표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혁신안조차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히 문재인 캠프 내부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에 출마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표는 최근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느 지역, 어떤 상대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표의 측근 D씨는 “영도는 13만 명의 인구 중 호남 출신이 5만명에 달하고 과거 선거에서도 야당 후보가 선전했던 곳”이라며 “승리하면 최상이고 지더라도 참패가 아니라면 오히려 대권 가도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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