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습으로 시리아 내전 직접 개입
명분은 미국 도와 ‘이슬람국가’ 응징 동참
속내는 러시아의 오랜 우방 시리아정부 지원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함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리전으로 진행되어온 전쟁의 양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지난 9월 30일 시리아 중서부 도시 홈스를 전격 폭격함으로써 냉전 이래 처음 옛 소련 국경 바깥에서 주요한 군사행동을 전개했다. 그간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위해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등 시리아 사태에 간접 개입하는 데 그쳐왔다. 이번에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군사작전을 펼치면서 내세운 직접 개입의 명분은 “인류 공동의 적인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를 미국과 더불어 응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는 시리아 반군들을 공격함으로써 러시아의 우방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습이 단행되기 며칠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의 라타키아 기지에 Su-24 전폭기와 Su-25 공격기 각 12대와 Su-30 전투기 4대 등 모두 28대의 러시아 군용기를 보냈다는 사실이 서방 언론에 보도되자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통 감을 못 잡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지난 9월 27일 푸틴이 미국 CBS-TV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 ‘60분’에서 “당신의 진짜 의도는 IS 박멸이라기보다 알아사드 지원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음, 당신 말이 맞는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러시아의 의도를 확인했다.
“러시아 의도가 무엇인지…”
현재 시리아에서는 정부군, 온건 성향의 반군, IS가 삼중으로 맞물려 있다. 9월 30일 러시아가 공습한 도시 홈스는 현재 IS가 아니라 미국이 지원하는 알누스라전선과 이슬람주의 반군인 아흐라르알샴 등이 장악하고 있다. 시리아 3대 도시였던 홈스는 2011년 내전이 촉발된 이후 가장 먼저 반군이 장악한 도시라는 점에서 ‘혁명의 수도'라고 불렸다. 알아사드 정권으로서는 시리아 서부 지역 전체가 반군 수중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탈환해야 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다. 홈스에서는 이번 러시아의 폭격에 2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은 이와 관련해 “왜 반군을 겨냥했느냐”고 따지고 있으며 러시아는 “IS가 소유한 기지와 창고 등을 공격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러시아가 시리아를 감싸고 도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는 “주권국가에 대한 외부의 어떠한 개입도 내정간섭이거나 주권침해”라며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서방 강대국들이 알아사드를 축출하려는 것을 반대한다. 이번에 시리아 공습을 단행하면서도 러시아는 작전 직전에 러시아연방 상원의 승인을 얻었고 시리아 정부로부터 사전에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시리아 내에서의 러시아 군사작전이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전투기가 시리아 영공에 들어가 IS 거점을 폭격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얻었거나 시리아 정부의 요청을 받았거나 둘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법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와 시리아는 1971년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은 이래, 외교·경제·군사적으로 밀접히 협력해왔다. 시리아는 러시아 중동 전략의 유일한 교두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현재 러시아가 외국에 군항을 두고 있는 곳은 시리아의 타르투스뿐이다.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는 타르투스는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전략적 요충지다. 시리아는 또 러시아와 대공 방어 시스템, 해안 방어 미사일, 전투기 등 상당한 규모의 무기판매 계약을 맺고 있으며 건설, 에너지 등 경제 분야에 러시아 업체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봄 중동을 휩쓴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의 일환으로 알아사드 독재에 반대하여 들고일어난 시민들을 알아사드가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20여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지금까지 시리아 전체 인구 1800만 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0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지금도 유럽으로 향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美, 알아사드 정권 타도 노려
미국은 5년째 끌고 있는 시리아 내전을 해결하는 길은 알아사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시리아 반군을 육성해 이들로 하여금 알아사드 정권을 타도케 한다는 기본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이 일이 쉽지 않다. 지난해 미 국방부는 시리아의 온건파 반군을 규합해 지금쯤 50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형성해 전투 배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랬다가 지난 9월 초 “지금까지 끌어 모은 반군이 4, 5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를 없었던 일로 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지상군을 파견해 시리아 사태를 정리하려 들다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유엔 연설에서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과도기적 정권 이양 과정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을 참여시킬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면서 ‘친(親) 알아사드' 진영의 러시아·이란 정부와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 미국의 이런 고민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현재 시리아 온건 반군을 군사적으로 집중 육성하는 것보다는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을 통해 IS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는 일이 더 급하다. IS는 미국의 동맹국인 이라크를 직접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리아 내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기여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옛 참모들까지 시인할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중동에서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재기함에 따라 오바마는 애당초 원치 않았던 시리아 개입에서 오는 미국 측 손실을 줄이면서 푸틴이 사태악화로 인한 비난을 혼자 뒤집어쓰도록 러시아를 그냥 내버려둘 것인가하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
푸틴의 이번 군사적 도박은 오바마와는 정반대다. 오바마가 머뭇거린 반면 푸틴은 신속했고, 오바마가 좌고우면한 반면 푸틴은 단호했다. 오바마가 산만했던 반면 푸틴은 집중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비슷한 양면적 태도도 있다. 러시아는 실제로는 알아사드의 적들을 공격하면서 겉으로는 IS 격퇴를 위한 작전을 펼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내 IS 거점들을 폭격하면서도 이웃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에 비해 시리아 내전을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시리아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행보는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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