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 노린 냉혹한 교수
금전·치정관계 얽힌 막장드라마?
2011-05-30 최은서 기자
실종 50여일 만에 낙동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교수 아내가 남편과 내연녀의 계획적인 범행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컴퓨터범죄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범죄분야에 전문가였던 남편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사체 발견 이후 곳곳에서 드러난 증거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재산을 둘러싼 갈등과 치정관계가 얽혀 한편의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컴퓨터 전문가인 강씨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명성을 쌓아온 이력이 화려한 교수였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이와 달리 굴곡이 많았다. 이미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친 강씨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지난해 3월 박씨와 결혼했다.
3번에 걸친 사전 답사 등 치밀한 범행 준비
이후 강씨의 재혼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부간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다.
강씨 부부는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11월 별거에 들어갔다. 강씨는 내연녀 최모(50)씨와 잦은 만남을 가졌다. 강씨는 최씨를 만나게 되면서 박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최씨와 공모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강씨는 자신의 컴퓨터로 ‘사체 없는 살인’과 ‘시신 유기 방법’ 등을 검색하며 범행에 필요한 지식들을 학습해 나갔다.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체 없는 살인’을 노린 셈이다. 이와 함께 범행 일주일 전 부산 북구 덕천동 모 등산용품 매장에서 사체를 유기할 때 쓸 대형 가방을 구매하는 등 범행에 필요한 도구들을 갖춰나갔다. 강씨는 최씨와 함께 사체를 유기할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부산과 경남 인근 주요 다리들을 찾아다녔다. 사전답사는 3번에 걸쳐 이뤄졌다. 을숙도대교는 물론 거가대교까지 샅샅이 훑어본 강씨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비상 주차용 갓길이 있어 차를 세우기에 용이한 을숙도대교를 사체 유기장소로 정했다.
강씨는 지난 4월 2일 오후 11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콘도 앞에서 박씨를 만나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에 태워 인근의 모 호텔 공영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어 승용차 안에서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강씨는 시신을 빨랫줄과 쇠사슬 등으로 감고 하반신은 포대자루로 덮은 후 미리 준비한 대형 가방 안에 담았다. 이후 강씨는 최씨가 주차장 부근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옵티마 승용차에 시신을 옮겨 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차량으로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강씨는 주거지인 만덕동 부근으로 이동했고, 최씨는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40분 가량을 운전해 을숙도대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쇠사슬에 묶인 시신이 든 가방을 여자 혼자 바다에 던지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최씨는 사체 유기가 수포로 돌아가자 강씨를 을숙도대교로 불러냈다. 을숙도대교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다리 한 가운데에서 시신을 강으로 내던졌다.
CCTV에 노출되지 않는 곳 택해
강씨는 시신 유기 이후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 범행을 은폐해 나가는 한편 알리바이 조작에 나섰다.
강씨는 범행 날짜를 산행 모임과 산악회원들과의 뒤풀이가 있던 날로 잡았다. 당일 그는 산악회원들과 산행을 한 후 해운대 로데오거리 술집에서 열린 뒤풀이에 참석했다. 뒤풀이가 끝난 뒤 부인을 해운대로 불러 살해했다. 이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다음날 오전 1시 30분께 부산 사하구 하단동의 모 술집에 들어가 오전 5시까지 술을 마셨다. 당시 주점 업주에게 “내가 12시 30분께 왔다”고 수차례 일러주는 등 증거 은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강씨는 무엇보다도 최씨의 범행 가담 흔적을 지우는데 주력했다. 범행 공모 사실이 발각되지 않도록 범행 열흘 전부터 최씨와는 휴대폰 전화 대신 공중전화로만 연락했다. 범행 전후에는 철저히 연락을 하지 않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 강씨는 범행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 삭제를 요청하기 위해 지난 4월 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카카오톡 본사를 찾아가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범행 전날 강씨가 최씨에게 보낸 ‘맘 단단히 먹으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맘에 걸린 탓이었다.
강씨는 범행 직전 휴대폰을 교체하는가 하면 컴퓨터 로그인 기록과 검색 기록 등 컴퓨터 내에 남아있던 기록을 모조리 삭제했다. 이와 함께 강씨는 자신의 차와 내연녀의 차에 남겨진 증거들도 인멸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차는 세차를 하고 최씨의 차는 중고차 시장에 내다 팔았다. 경찰은 범행 28일 만에 최씨의 차가 중고차 매물로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강씨가 화학약품 처리를 해놓은 뒤라 최씨의 차량에서는 증거가 단 한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CCTV에 자신이 노출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강씨가 부인을 만났던 장소와 살해 이후 을숙도대교로 이동하는 경로는 CCTV에 노출되지 않는 곳을 택했다. 때문에 경찰은 CCTV에서 강씨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강씨는 범행 전날 밤 11시께 부인을 유인해 살해하려다 CCTV를 발견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도 확인됐다.
지난 5월 21일 오후 2시께 을숙도대교 부근 낙동강변에서 시신이 발견돼 수사가 급진전 되면서 강씨가 구속됐다. 구속 이후에도 강씨는 대형로펌 변호사까지 고용하는 한편 경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완전 범죄를 자신했다. 하지만 강씨는 차량에 남겨진 박씨의 머리핀과 혈흔이 발견 되는 등 속속 드러나는 증거를 들이미는 경찰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한편 지난 5월 3일 아랍에미레이트로 출국한 후 호주의 지인집에 머무르고 있던 최씨는 지난 5월 27일 귀국해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