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달라진 집장촌, 업주보다 성매매 여성 입김 더 세

성매매 여성들 온 몸으로 울었다

2011-05-30     최은서 기자

[최은서 기자]=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돼 국내 모든 성매매 행위가 금지된 지 올해로 8년째다. 최근 이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영등포 집장촌이 있다. 이곳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보장’과 ‘성매매집결지 단속 중단’을 요구하며 거리시위에 나선 것이다. 반나체의 모습으로 시위를 나서는가 하면,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을 시도하는 과격시위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경찰은 단속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점차 격해져가는 이들의 시위는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성매매 여성들이 전면으로 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달라진 집장촌 구조가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월초 영등포경찰서가 성매매 업소 집중단속 및 폐쇄 방침을 밝히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경찰은 성매매 업주와 건물주에게 영업장 폐쇄를 통보하고 지난 4월 1일부터 영등포 집창촌을 전면 봉쇄했다. 24시간 단속에 업소들이 문을 닫아 사실상 폐쇄상태가 돼 성매매 여성들의 수입도 뚝 끊겼다. 성매매 여성들은 타임스퀘어와 신세계 백화점이 당국에 압력을 넣어 집장촌을 폐쇄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 “생존권 보장하라”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는 지난 5월 17일 오후 극에 달했다. 500여 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영등포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 앞에서 온 몸에 붉은색 물감을 칠한 채 소복을 입거나 속옷만 입은 채 반나체로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골목에서 방화를 하기도 하고, 온 몸에 시너와 휘발유를 붓고 “분신까지 불사하겠다”며 극단적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시위에 나섰던 성매매 여성 김한별(가명·35)씨는 “대형쇼핑몰과 백화점 관계자들에게 우리의 심경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준비했던 것”이라며 “경찰과 당국이 성매매 여성들의 숨통을 조여 우리가 죽었다는 의미에서 소복을 입었다. 붉은색 보디페인팅은 성매매 여성들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린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고, 얼굴을 기괴하게 분장한 것은 시체를 표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시위를 벌이던 성매매 여성들 중 16명이 인화물질을 마시는 등 격한 시위를 벌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시위가 격화됐던 이유에 대해 김씨는 “성매매 여성들 모두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며 “우리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무턱대고 억압해 너무 억울하고 한이 맺혀 극단적 행동까지 벌이게 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를 비롯한 성매매여성들은 이 일대에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경찰이 영등포 집장촌만 집중단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생존과 생계를 위해 남아있는 것인데 경찰이 밥줄을 끊은 것”이라며 “최소한의 생계대책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하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김씨는 “현실적인 대책도 없이 단속을 강행해 성매매가 음지로 파고들고 있다”며 “최근 단속 강화로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기형적 형태의 성매매가 증가했다”고 전했다.


성매매 여성 과거와 현재

이처럼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 시위를 벌이는 데에는 성매매 업소 구조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집장촌 업주와 성매매 여성은 과거의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적 구조다. 오히려 집장촌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들은 “요즘엔 성매매 여성들의 입김이 훨씬 더 세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집장촌에도 큰 변화가 들이닥쳤다. 성매매여성들은 예전과는 달리 업주에게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한다. 소득분배 역시 성매매여성들이 우위에 있다. 6대 4로 수익이 분배되는데, 업주는 그야말로 빈약한 ‘4’라고 한다. 강현준 한터전국연합회 대표는 “업주는 성매매 여성들의 의식주 중 ‘식주’를 해결해 줘야하기 때문에 수입의 절반이 결과적으로 나가는 돈인 셈이다”라며 “요즘 성매매여성들은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가 높아 논리적 싸움에서 업주들이 이길 수 없다. 사실상 집장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성매매여성들로 모든 생활적 패턴은 이들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성매매 여성들의 파워가 더 세져 성매매 여성들 간 결속력도 더 강화됐다”며 “최근 일어난 시위자체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들 주체 하에 이뤄진 것이다”고 전했다.

이번 집회에서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 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가 격렬했다. 반나체 시위나 분신 소동 등은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40대가 넘어가면 호객해서 영업을 하는 ‘팸프골목’에서 영업을 한다고 한다. 강 대표는 “밖으로 노출해 성매매 영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성매매 여성은 안내하는 사람인 ‘팸프’가 손님을 끌어오면 업소 안에서 서비스를 해주는 형식으로 영업을 한다”라며 “나이를 먹고 성매매업 외에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중년 성매매 여성들의 위기감이 상당했으며, 이런 절박감이 과격 시위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집장촌 업주들과 성매매여성들은 “성매매 여성들은 더 이상 성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발적 성매매인데 어떻게 약자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성매매 특별법은 남녀 성별 갈등을 극대화시키는 법으로, 성매매 특별법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남성들이 전과를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 강 대표는 “성매매 여성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곤층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지 성적인 약자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성매매 특별법에 대해 “국가가 성매매업을 하도록 방관하면서 단속을 통해 막대한 돈을 국고로 환수하는 이중플레이를 펼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의 어떠한 지원도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며 “성매매 금지 국가에서 규제적 국가로 바뀌어 성매매 여성들이 레드존을 형성해 정부 관리 하에 영업을 하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의 대표 집장촌들은 미아리, 청량리, 용산역, 천호동, 영등포 등 5곳으로 서울 도심 재개발사업, 뉴타운사업 등과 맞물려 몰락하고 있다. 역세권 개발 사업 바람에 밀려 용산역 집장촌은 3개 업소만 남아 사실상 폐쇄상태다. 영등포 미아리 청량리 천호동 집장촌은 과거대비 85%로 규모가 축소됐다.

choies@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