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독일서 북한 반응 빤한 제안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
이명박 ‘김정일 G-50 초청’ 진짜 대북 빅이벤트는 따로 있다!
2011-05-17 윤지환 기자
[윤지환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독일 베를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제안해 정치권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한다면 내년 3월 26∼27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여러 추측과 평가들이 분분하다. 야권에서는 “터무니없는 제안으로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고도로 계산된 남북정상회담의 포석을 깐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이 있기 수 일 전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유럽과 남미 특사로 파견됐다가 귀국했다. 박 전 대표가 갑작스럽게 특사로 임명돼 네덜란드로 떠나자 정치권에서는 몇 가지 분석이 나왔다. 이 중에는 대북 비선접촉설도 포함돼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호(제 887호)를 통해 박 전 대표의 특사 파견 사실과 더불어 남북정상회담 비선접촉 가능성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지금까지 세 번의 특사 임무를 수행했다. 주목할 것은 박 전 대표 특사 직후에는 정해진 것처럼 북한 관련 이슈가 불거졌다는 점이다.
[일요서울]은 지난 887호 보도를 통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지지율 하락세 반전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측근의 잇따른 해외 특사 파견이 남북 제 3국 비선접촉을 위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전 대표가 네덜란드 특사로 출국한데 이어 이상득 의원이 오는 5일부터 17일까지 특사자격으로 볼리비아 페루 등 남미로 출국한다. 지금까지 특사 파견 직후 항상 남북정상회담 극비 추진 소문이 불거진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정상회담을 위한 비선접촉설이 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이후 이 대통령은 독일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번에도 특사 파견 직후 남북정상회담 사안이 불거져 나왔다. 이는 보도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되면 “박 전 대표 특사활동의 실체가 제 3국을 통한 남북비선접촉 아니냐”는 일부의 추측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또 [일요서울]이 보도한 청와대의 남북정상회담 극비 추진설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주변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성사 가능성을 높이고 있어서다.
이 대통령의 초청 제안 배경
이번 제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뜬금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물밑작업 없이 이 대통령이 이같은 발언을 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발언 당일,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베를린 시내 총리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핵 포기 문제에 대해 북한이 진정하게, 확고하게 하겠다는 의견을 국제사회와 합의한다면 핵안보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대하겠다는 제안을 한다”며 “이 점에 대해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는 북한에 미래를 위해 매우 좋은 기회이며, 국제사회에 나오게 되면 북한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번 제안의 전제는 핵을 포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국제사회와 합의를 이룰 때”라며 “그 진정성의 전제는 북한이 테러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사과 문제는 6자회담이라든가 여러 가지 남북문제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천안함ㆍ연평도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핵안보정상회의 초청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핵무기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북한이 지금에 와서 핵 포기를 선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을 잘 아는 이 대통령이 이 같은 발언을 한 이유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뢰도 높은 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핵안보정상회의와 더불어 북핵문제를 놓고 북한과의 빅딜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지원 통해 북핵문제 해결
이 소식통은 “핵 포기, 천안함 연평도 사태 사과 등은 지금 대북현안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이 이런 내용들을 언급한 것은 그저 치장에 불과하다. 중요한 핵심포인트는 핵안보리정상회의와 독일과 북핵문제 관련 합의점을 이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럽 연합의 주축은 독일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국제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유럽 연합 분위기는 북한 핵 무기 보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만약 핵안보리정상회의 전에 북한이 부분 개방 또는 남북한 합의안 도출 등 남북 빅딜 무드가 조성되면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위기감을 저하시키는 효과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북경제압박 명분도 흐려져 압박 수위가 약화될 수 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워싱턴에서 2차 핵안보정상회의 유치 관련 기자회견 당시 김 위원장 초청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이 2010년과 2011년, 2년 동안에 6자회담을 통해 핵을 포기하는 확실한 의지를 보이고, NPT(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해서 세계(에서) 합의된 사항을 따르게 된다면 기꺼이 초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발언과 최근의 깜짝 제안을 살펴보면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소와 시기, 그리고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 초청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은 앞선 발언과 분명 다르다. 또 청와대는 이 같은 제안과 관련, 미국 백악관과도 이미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미뤄볼 때 미국이 유럽연합과 뜻을 같이 할 의사가 있음을 우리 측에 내비쳤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미국도 정면 승부로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겉으로 대북제재를 가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에 식량 등 물자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보면 향후 북한은 핵무기를 내세워 외세개입 없는 안정적인 경제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또 유럽은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양면적인 대북정책에 따르는 구조로 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그림이다.
초대형 빅이벤트 터지나
이렇게 되려면 남한이 북한 경제개방의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는 추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근거가 여기 있다. 남북이 경제협력개방 선언을 하게 되면 이는 일차적인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외형상 연방제국가에 근접하게 되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보면 초대형 빅이벤트다. 더구나 북한은 올해를 경공업육성의 해로 정했다. 북한이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전통적인 슬로건을 내리고 경제육성을 내건 것이다. 이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며 그만큼 적극적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또 이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도 대북 빅이벤트 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이 대통령의 지지도 급락으로 청와대 공기는 매우 무겁다. 정권 재창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적 지지도를 끌어올릴 카드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같은 남한의 정치상황과 국제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북한의 심각한 경제상황 등을 고려하면 그 어느 때보다 남북 대타협의 과실은 무르익었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11일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에 대해 ‘도전적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이 대통령을 ‘역도’로 지칭하면서 “남조선을 세계최대의 핵전쟁 전초기지, 핵화약고로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핵수뇌자회의 개최요 뭐요 하고 희떱게 몰아치는 것도 가관”이라고 이 대통령의 초청 제안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천안함 및 연평도 포격 도발 사과 요구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지 않고 우리와 끝까지 엇서려는 흉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핵화 요구에 대해서는 “핵포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것 역시 우리를 무장해제시키고 미국과 함께 북침야망을 실현해보려는 가소로운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북한의 공식입장이 전달되지 않은 만큼 향후 이와 관련해 북한과 소통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2일 “우리가 제안한 배경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한과의 실무 접촉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방한 초청과 관련해 “어떤 반응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이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가진 한 덴마크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반응이)부정적으로 나왔다고 해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나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에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고 북한경제도 자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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