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전국세청장 연이어 구속

김호복·제갈경배·박동열…“정말 창피하다”

2015-09-25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최근 고위직 세무 공무원 출신들의 비리 행위가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후배인 현직 공무원들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민원인검은 청탁을 받아 모종의 일을 처리해 주고 거액의 뒷돈을 받아 챙기는 사례들이다. 국세청 출신 고위직 전관들이 기업이나 로펌, 회계법인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개인 사무실을 차려 놓고 해결사를 자처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게 사법당국과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이미 두 명의 전임 청장 구속으로 기관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는데 다른 전임 청장이 또 구속된다면 국민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호복(67) 전 충주시장과 제갈경배(56) 전 청장이 구속된 가운데 박동열(62·사진) 전 청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세무공무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 청장들이 잇따라 구속되거나 구속 위기에 놓이는 등 도덕성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부 세무공무원들은 정말 창피하다. 할 말이 없다며 수치감까지 드러내고 있다.
 
2011년 퇴임한 박 전 청장은 세무법인을 운영하며 서울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박(48·구속)씨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청장은 같은 명목으로 명동 사채업자에게 2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박 전 청장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에서 대형 룸 살롱 등 유흥업소 5~6곳을 운영하며, 195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박모(48)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박 전 청장을 상대로 강남 룸 살롱 업주의 탈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 전 청장에게 억대의 돈이 건너간 혐의를 포착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청장이 현직 국세청 간부로 있을 때부터 룸 살롱 출입이 잦았고, 이 과정에서 룸 살롱 업주와 친분을 쌓았다는 진술이 있어 세무 조사 무마 등의 대가로 돈을 건냈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청장 측은 박씨와 금전거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2011년 국세청에서 퇴임한 뒤 세무 상담 등을 해주고 받은 정당한 돈이지 탈세 무마 등의 대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청장은 작년 말 불거진 정윤회 문건' 사건 때 허위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구속·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에게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관련한 거짓 풍문을 제보한 인물로 지목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전 청장은 국세청 세원정보과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장, 대전지방국세청장 등 국세청의 주요 보직을 거쳤으며, 20116월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특히 국세청 세원정보과장 시절부터 경찰과 검찰 정보 담당자 등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박 대통령 사촌형부 금품수수에 연루된 여성 황(57·수감)씨에게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제갈경배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구속됐다.
 
의정부지검 형사5(권순정 부장검사)는 사업가 황 씨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제갈경배(55)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난달 19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구속했다.
 
제갈 전 청장은 황 씨로부터 2013년 초를 비롯해 다섯 차례에 걸쳐 민원 청탁과 함께 모두 15천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제갈 전 청장은 검찰에서 빌린 돈이며 모두 돌려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갈 전 청장은 행시 27회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을 지낸데 이어 지난해 1월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제갈 전 청장의 금품수수 혐의는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 이종사촌 형부인 윤모(77·구속)씨의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윤 씨에게 흘러간 돈의 출처를 추적하던 중 황 씨와 주변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돈의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갈 전 청장의 존재는 황 씨에게 거액을 투자해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사업가 Q씨가 올해초 의정부지검에 제출한 고소장에도 등장한다.
 
이 고소장은 투자금 명목으로 자신에게 586백만 원을 받아 챙긴 황 씨 등을 처벌해 달라는 취지로 올해 212일 접수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이 확보한 고소장에는 황 씨가 Q씨에게 투자를 권유하면서 자신의 배경에 제갈 전 청장 등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황 씨는 특히 제갈 전 청장을 '대장'으로 부르며 모든 정관계에 대한 일은 대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해결해주니 앞으로 투자 회수는 걱정이 없다고 회유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이밖에도 준코 세무비리와 관련해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호복 전 충주시장도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출신이다.
 
김 전 시장은 외식전문업체 준코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자신이 이사로 있던 세무법인 사무장과 함께 로비자금 2억원 중 1억원을 전 국세청 공무원에게 전달한 혐의(3자 뇌물 취득 등)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국세청 직원을 상대로 로비에 나선 김 전 시장이 그 대가로 업체로부터 3천만 원을 받아 챙겼고, 업체 고문으로 있으면서 각종 법률 분쟁 해결에 개입하고 총 27500만 원을 받아 챙기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전 시장 변호인 측은 분쟁 해결을 명목으로 받은 돈은 정당한 고문료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직원들 사기 꺾여
 
연이어 전 대전국세청장들이 구속되자 직원들의 사기는 꺾일 대로 꺾였다.
 
일부직원들은 창피하다 못해 수치스럽다면서 현직에 있던 중 벌어진 일은 아니라지만 전 청장들이 연이어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몇 해 전에는 현직 고위 관료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국세청이 몸살을 앓았는데 이제는 퇴직한 고위직들이 조직에 먹칠을 해 고개를 들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고위직에 올랐으면 분명 가문의 영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체 무엇 때문에 불미스런 사건에 오르내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세무공무원은 국세청 전체가 비리집단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국민들이 많아 충격을 받았다면서 전임 청장들의 개인적인 비리인 만큼 세무공무원 전체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