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추적] 방산비리 권력형거물 고강도 사정칼날 정·재계주목

2015-09-07     장연서 프리랜서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 예고… 총선정국 변수로
사정의 칼날 기업수사 겨냥할지 정·재계 주목


[일요서울 | 장연서 프리랜서] 해군과 공군에 집중됐던 방산비리 수사가 육군으로 본격 확대하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육군 무인 정찰기 ‘헤론’에 이어 육군의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 개발 사업 관련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방산비리 수사가 다시 전방위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합수단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전날 체포한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박모 육군 중령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중령은 성능 미달인 현궁 평가 장비를 인수받고 허위로 확인서 등을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단은 전날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산업체인 LIG넥스원 등 현궁 개발 사업과 관련된 기관 4〜5곳을 압수수색했다. 합수단은 압수수색한 기관들로부터 확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납품 관련 서류 등을 분석한 뒤 납품사 관계자 등을 잇달아 부를 계획이다.
검찰이 LIG넥스원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자 재계와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방산비리 관련 수사 대상 업체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국방과학연구소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LIG넥스원 등으로부터 총 80억 3000만 원 규모의 내부피해 계측 장비와 전차 자동조종 모듈 등 현궁 평가 장비들을 납품받아 검사 업무를 수행했다.

감사원은 지난 7월 국방과학연구소가 내부피해 계측 장비에 진동센서와 제어판이 부착돼 있지 않아 작동할 수 없는데도 합격 판정을 내리고 이 업체에 11억여 원을 부당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또 전차의 자율주행을 돕는 모듈을 7세트만 납품받았으면서 11세트를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이동식 표적 역시 실제 제작에 들어간 것보다 많은 부품을 쓴 것처럼 속여 웃돈을 타냈다. 이 같은 감사원 조사 결과를 넘겨받은 합수단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국방과학연구소와 납품사 간의 유착과 뒷돈 거래 여부에 대해 수사할 예정이다.

‘빛과 같은 화살’이란 뜻의 ‘현궁’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전체 개발을 담당했고 LIG넥스원이 생산을 맡았다.

이와 별도로 합수단은 400억원대 무인정찰기 헤론 도입 비리 의혹도 수사 중이다. 중개를 맡았던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헤론 선정 과정에서 육군 고위층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벌였는지도 캐고 있다. 이와 관련, 이 회장에게 사전에 관련 군 기밀이 유출됐다는 정황을 포착, 수사를 하고 있다.

합수단의 납품비리 수사를 두고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산사업은 ‘소요 결정→제안서 작성→제안서 평가→시험 평가→가격 협상→기종 결정→납품’ 단계를 밟는다.

그러나 합수단의 수사는 제안서와 시험 평가, 납품 등 하류에서만 이뤄졌다. 비리의 출발점인 무기 도입 결정 과정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윗선 수사 확대 어디까지

합수단은 LIG넥스원 등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 조사하면서 현궁 성능 평가 장비 납품 비리의 ‘윗선’을 규명하는 데도 속도를 낼 계획이지만 탄력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박 중령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합수단 주변에서는 수사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작년 11월 합수단 출범 이래 군사법원이 방산비리에 연루된 현역 군인의 영장을 기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사법원이 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박 중령을 발판으로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합수단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합수단은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이른 시일 내에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1월 합동수사단을 설치해 대대적으로 방산비리 척결에 나선 이후 그 결과물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합수단이 군부의 핵심인 육군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주목된다.

합수단의 수사가 시작되자 야권은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천문학적인 규모의 방위사업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로비스트가 개입해 방위사업 곳곳에서 방산비리가 발생했다”며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해왔다.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비리 내용을 살펴보면 ‘군피아(군+마피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방산업체-예비역 장성 및 간부-현역 장성·장교가 연결된 비리 사슬고리는 그 뿌리가 깊어 합수단 수사가 미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같은 비리실태가 실체를 드러내면서 여권도 방산비리와 관련해 더욱 철저히 수사하는 것은 물론 강도 높은 처벌이 가능하도록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예컨대 방산비리 사범을 ‘이적죄’로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및 군형법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방산비리 수사가 정부 차원에서 또다시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이 사정기관 주변에서 나온다. 일부에서는 역대 정권 때마다 불거진 방산비리가 대부분 권력형이었던 점을 들어 “합수단이 이명박 정권과 무기브로커의 커넥션 정황을 잡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지난 정권이 대규모 국방사업을 추진한 배경에 린다김이나 조풍언 같은 로비스트 또는 무기브로커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방산비리 수사에서 정치권에 줄을 댄 국제급 로비스트가 드러날 경우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국제급 로비스트 촉각

로비스트들의 정치권 로비 내용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합수단 안팎에서는 제 2, 제 3의 이규태가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방위력개선사업에 사용된 자금은 40조 원 정도다. 당시 MB는 2020년까지 국방산업 및 기술 분야 세계7대 수출국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과 합수단 조사에 따르면 공문서위조와 부실부품 사용으로 세월호 참사에 출동도 못해 방산비리의 대표격이 된 통영함, 공군전투기 시동장치 중고부품사용 비리, 병사들 호주머니에서 8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군 PX납품비리 등 그야말로 비리백화점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비리가 만연하려면 윗선의 묵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2012년 이명박 정권 말에 추진된 14조규모의 해외무기도입 추진과정도 복마전이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감사원이 최근 방위사업청 등 무기획득 체계 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재취업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고위직인 취업승인 대상자 7명 중 6명이 승인 대상이 아닌데도 방산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2명은 퇴역 후 현역에 종사했던 업무와 연관된 방산업체에 재취업했다.

감사원 소식통에 따르면 방산비리 연루 정황이 포착된 일부 예비역 인사들은 지난 정권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정치권 로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 국방사업에 관여했던 거물급 무기중개업자들의 소재가 잘 파악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 해외 등지로 이미 종적을 감춘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방산비리 수사가 ‘권력형 거물’들은 잡지 못하고 깃털만 단속하는 수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합수단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외국인과 교포 등 ‘로비스트’로 의심되는 무기로비스트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해외로 도피했다는 첩보가 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입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 업체와 연결돼 방산 로비를 해온 A씨 등은 합수단이 현판을 걸기도 전에 이미 국외로 피신했다. A씨는 MB정권 때 정치권 유력인사들과 극비리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대표적 방산로비스트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번 방산비리 수사는 미처 충분한 내사를 벌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사정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무기중개상과 중개업자들이 그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방산사업은 해외거래가 많아 방산비리 수사는 사전 준비와 핵심인물 확보가 매우 중요한데 이 부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해외거래를 수반한 방산비리가 이번 수사의 중점 대상이며 이미 내사자료도 갖고 있다"며 "그러나 해외무기거래 수사는 해당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