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까지 리베이트 가담…해외관광·골프비 관행 여전
적발된 의사만 536명
리베이트 쌍벌제·투아웃제 효과 있나 의문
비윤리적 의사들 또 문제… 불법 끊이지 않아
리베이트 무풍지대라 불렸던 다국적 기업이 최근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의 법망에 걸렸다. 외국계 기업은 그간 리베이트를 단속하지 않았던 터라 국내외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7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단장 이철희 부장검사)은 리베이트를 제공한 의사 74명 및 외국계 의료기기 판매업체, 대형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대학병원 의사 등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수사단은 관련자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9개 회사 및 의사 339명에 대해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적발된 총 의사 수는 536명으로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비윤리 의사’란 세간의 비판이 일고 있다.
수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제약회사 A사, 외국계 의료기기 판매업체 B사, 대학병원 의사 C씨(48)가 주요 수사 대상이다.
다양한 제공 수법
A사는 의약품 판매를 위해 거래처 의사 등 461명에게 총 3억5,900만 원가량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특히 A사는 의사들에게 논문번역료, 시판후 조사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회사에서 따로 논문을 번역해두거나, 시판후 조사를 실시한 것처럼 설문지를 허위로 미리 작성해두는 수법이었다.
전직 임원이 설립한 모 설문조사기관을 리베이트 수법에 악용하기도 했다. A사는 리베이트 제공을 편리하게 하고, 법망을 수월히 빠져나가기 위해 이 설문조사기관을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외부 회사를 자사의 리베이트 수단으로 삼은 셈이다.
외국계 의료기기 판매업체 B사는 해외제품설명회 명목으로 의사들에게 해외관광비 및 골프비를 주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의사들은 B사의 초청으로 방콕, 하와이, 싱가포르 등을 관광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구속 기소된 대학병원 의사 C씨는 다양한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받았다. ▲자료가 남지 않는 현금을 받거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술값·식대를 미리 결제해두면 C씨가 식당·주점을 방문해 따로 돈을 내지 않고 이용하거나 ▲영업사원으로부터 아예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하는 등 리베이트를 여러 차례에 걸쳐 제공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젠 글로벌 기업까지
이번 수사 결과가 논란이 된 건 리베이트 영역에서 자유로웠던 글로벌 기업까지 수사망에 걸렸다는 점이다. B사는 미국계 기업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 일본 등 전세계 19개에 지사를 둔 다국적 기업으로 유명하다.
의약품 리베이트는 일반적으로 후발주자인 국내기업이 초기시장 확보 등을 위해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에 적발된 기업도 국내 제약사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사에서 외국계 기업인 B사가 적발되면서 의약품 리베이트가 만연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B사가 의료기기 판매업체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서부지검은 리베이트 시장이 약품 외에도 의료기기 등 다른 영역에까지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리베이트 쌍벌제 및 투아웃제가 시행됐음에도 이런 불법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여론의 비판이 뜨겁다. 정부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 지속적인 단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리베이트 자체에 대한 단속활동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일부 의사들의 비행에 의사윤리 등 다른 제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용어
▲리베이트 쌍벌제 : 리베이트를 제공한 업체 측만 처벌하던 것에서 제공을 받은 사람도 함께 처벌하는 의료법 규정. 2010년 11월 28일 이후의 범행만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한다.
▲리베이트 투아웃제 : 제약회사가 특정 의약품을 채택한 병원, 의사 등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2회 적발될 경우 해당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아예 퇴출시키는 제도. 2014년 7월 2일부터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