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朴 정부 이끌 파워엘리트 대해부
비박계로 바뀐 집권당 권력지도
“의심 나면 안 쓰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 안 한다”
출범 초 그룹 일부 낙마…문고리 3인방은 건재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의 5년 임기가 8월 25일로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 2년 반은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초대형 사건, 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초기의 인사 참극이 이어졌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 성추문,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파문,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까지 악재가 줄을 이었다.
그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관리 차원에서 부분적인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정권 출범 초기에 파워 엘리트로 떠올랐던 그룹과 현재 신(新) 실세그룹의 면면이 조금 달라졌다. 박근혜정부 이너서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임기 후반기를 이끌어갈 파워 엘리트는 누구일까.
일단 엘리트그룹의 큰 틀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이는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않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의 용병술을 구사한다. 따라서 정권 초기의 파워맨들 가운데 지금도 건재한 인물이 많다.
최경환 부총리 거취 관심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이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최 부총리는 경기부양책을 기조로 하는 ‘초이노믹스’로 경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연말쯤 새누리당으로 복귀하면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친박계의 중심이 돼 내년 총선을 지휘할 전망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 수준인 3% 중반 정도를 복귀할 수 있도록 해 여러 가지 당의 총선 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역 국회의원(경북 경산-청도)으로서 당에 대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중앙선관위에 고발했다.
한편으론 최 부총리가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도 경제정책을 계속 이끌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만큼 최 부총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깊고. 의존도가 높다.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여전히 파워 엘리트 그룹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전반기에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낸 뒤 지난해 6·3 전남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정치적 무게가 커졌다.
일각에선 이 최고위원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김무성 대항마’를 찾는 일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김무성 대표도 훌륭하지만 당 안팎에 대권주자감 인물이 많다. 대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선 캠프에서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 정부 초기에 핵심 실세로 꼽혔던 유정복 인천시장은 중앙정치무대를 떠났지만 여전히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대선 때 당무조정본부장을 지냈던 서병수 부산시장도 마찬가지다. 두 명의 친박계 핵심 자치단체장은 나란히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정치인 시절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다가 청와대에 함께 입성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정윤회 리스트 파동 때 위기를 겪었으나 여전히 청와대 파워그룹의 중심에 서 있다.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은 ‘왕(王) 비서관’으로 통한다. 과거 정권에서 ‘왕 실장’ ‘왕 수석’으로 불린 인물들이 있었지만 1급 비서관들이 청와대를 장악하다시피 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심지어 정치권에선 이들 3인방이 현 정권에서 박 대통령을 제외한 권력 서열 1~3위라고 보기도 한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특히 정호성 비서관의 역할에 주목했다. 황 평론가는 “정윤회 리스트 파문 이후 1부속실과 2부속실이 통합되면서 정 비서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각종 보고서를 취합하고, 대통령의 모든 메시지를 관리하는 실질적인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병기 비서실장은 청와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국회에서 있었다. 새정치연합 강동원 의원은 지난 7월 3일 국회 운영위에서 김 실장의 면전에 대고 “비서실장이 ‘3인방’에 의해 왕따 당하고 있다, 대통령과 독대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실장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처럼 2년반 전의 초기 파워 엘리트들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지금까지 건재하거나 힘이 더 세진 경우도 있지만 반대 사례도 없지 않다. 자의든 타의든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지거나 심지어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들이다.
초기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이끌었던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불과 5개월 만에 퇴진했다. 그는 청와대 입성 직후부터 사석에서 “젊은 참모들 때문에 일하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비서관 3인방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전언이다.
대선 당시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권력 중심부로 진입할 뻔 했으나 좌절됐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국정쇄신이 추진됐을 때 국무총리로 지명됐지만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바람에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서지도 못한 채 낙마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을 앞두고 새 정부의 골격을 짜면서 직접 발탁한 것으로 알려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미국 순방 길에서 성추행 물의를 빚어 도중하차했다.
박근혜 대선캠프로 영입됐던 전문가 그룹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2년가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 등은 잘 나가는 편이다.
전문가 그룹들 희비 갈려
반면, 대선 때 힘찬경제추진단장이었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정치쇄신특위 위원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국민행복추진단장이었던 김종인 건국대 석좌교수 등은 박 대통령과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들은 현안이 생길 때마다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기도 한다.
초기의 파워 엘리트 그룹 가운데 틈새가 생긴 곳은 신흥 파워맨들이 채웠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현 시점에서 보면 황교안 국무총리, 이병호 국정원장,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특히 황 총리의 광폭행보에 주목한다. 전임 정홍원 총리와는 달리 민생현장을 자주 찾고 총리실의 업무 실적내기에도 적극적이다. 주소지를 총리실이 있는 세종시로 옮기기도 했다.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황 총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친박계에서 그를 ‘김무성 대항마’로 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전임자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호흡을 맞춰 음지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돕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국정원 장악에 성공하면서 나름대로의 파워를 갖게 됐다.
김관진 실장은 최근 휴전선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판문점 ‘화장실 담판’을 통해 합의문을 이끌어내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무려 43시간에 걸친 마라톤협상 내내 박 대통령과 핫라인을 통해 교감을 하면서 돈독한 신임을 얻었다. 앞으로 남북정상회담 등 대북접촉에서 김 실장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박근혜 정부 사정라인을 움켜쥐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이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이던 그를 민정수석으로 수직상승 시켜 검찰을 통제하는 임무를 맡긴 바 있다. 박 대통령의 돈독한 신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