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과 따로 노는 한국사 사교육 시장

상업성으로 변질된 역사교육 실태

2015-08-25     김현지 기자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역사의식이 갈수록 저하되는 사회현상과 반대로 한국사 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17년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것도 그것에 한몫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취득하면 일부 기업에 취업지원을 했을 때 가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하지만 교육시장이 커진다고 역사의식 고취로 직결될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사 각광받아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
암기식 주입교육이 역사의식으로 이어질까?


사상 최고의 취업난인 요즘, 서울 유명 사립대학교를 다니는 A(25·여)씨는 여러 자격증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A씨를 골치 아프게 하는 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 자격증 점수가 필수는 아니지만 거의 필수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를 하고 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A씨는 “어렸을 적에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제대로 공부를 하려니 너무 어렵다”며 “하지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한국사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A씨는 ‘독학’이라고 답했다. 다만 “방대한 분량을 오롯이 혼자 공부하는 데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그래서 친구들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동영상 강의를 함께 듣는다”고 말했다. 또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 확실히 단기간에 원하는 점수나 급수를 받는 것 같다”며 주변인들 중 일부는 비싼 수강료를 주고 수업을 따로 듣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라고도 덧붙였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일 년에 네 번 있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이 2급, 70점 이상이 1급이다. 일반적으로 2급 이상을 받아야 취업·각종 시험에서 유리하다. 2급 이상이 필수인 경우도 있다. 공무원 시험을 2년째 준비하고 있는 B(27·남)씨는 “사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며 “다만 회차에 따라 다른 시험의 난이도, 스펙 과열화로 이젠 1급이 아니면 내세울 수 없어 수험생들이 그토록 붙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커지는 사교육 시장

한국사 열풍은 성인들만의 기현상은 아니다. 그 동안 청소년의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교육부는 2017년 수능부터 문·이과 공통 필수 과목에 한국사를 지정하기로 했다. 서울대학교는 입학생에게 한국사 2등급을 요구하며, 서울의 여타 사립대학교들도 2~5등급 정도의 점수를 요한다. 
일각에선 사교육 시장만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교육부 측은 사교육 없이 교과서 공부만으로 충분히 시험을 치를 정도의 난이도로 출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입시전문가들도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됐어도 굳이 사교육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어도 대학교 측에서 요구하는 점수가 지극히 낮고, 시험 자체가 어렵게 출제되지 않을 것이란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이런 언급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강남구 대치동, 대전 둔산동 등 학구열이 심한 특정 지역에선 이미 한국사 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초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과외까지 성행하고 있다. 한국사 교육이 중점인 논술학원도 등장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사교육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국사편찬위원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시행된 한국사능력시험 26, 27회 응시 인원이 지난해에 비해 약 23% 증가했다. 이와 비례해 사교육 시장도 커지고 있다. 메가스터디 등 일부 대형학원에 국한됐던 시장이 최근 들어 소규모 학원가나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한국사능력시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초등학생들도 이 시험에 응시하는 비율이 늘고 있어, 사교육 시장의 실질적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측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정책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를 비롯한 역사와 연계된 사교육 시장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아직 급격히 확대됐다고 말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사를 위주로 한 논술학원을 언급하며 “논술시장이 가라앉고 있었는데 한국사가 각광받으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논술학원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또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대해서도 “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각종 온라인 강의, 학원 등 사교육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교육과 의식의 부조화…
암기식 주입교육 지양해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사능력시험의 경우 시험 회차마다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문제가 골고루 나오지 않는다는 것 등을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해왔다. 객관식으로만 구성된 시험의 경우, 암기식·주입식 교육이 역사의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문제다.


청소년들의 한국사 교육방식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논술학원·과외 등 각종 사교육 시장에서는 아직도 암기·주입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 같은 방식은 ‘시험을 위한 공부’에 그친다며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최근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사교육을 받은 국민이 전체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의 약 85%가 사교육 대책이 시급하다고 응답한 사실이다. 사교육 시장이 문제라는 점을 알지만 의식과 행동이 따로 가는 현실인 셈이다. 그 이유로 ‘자녀가 뒤처질까봐’란 불안심리가 47.6%를 차지했다.


한 교육전문가는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만큼 의식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역사의식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는 이와 반비례하는 게 현실이다.
인터뷰에 응한 정책팀 관계자는 “결국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는 이유는 불확실성과 불안심리다”며 “정부의 교육방침이 큰 틀로 가야 하는데 자주 바뀌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 지적했다. 또 “암기식보단 토론식의 수업을 학교에서 자연스레 진행해, 아이들이 보다 흥미롭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사시험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된 회차별 난이도 조정, 문제유형의 다양화 등에 좀더 힘을 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