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인가? 타살인가?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 추적
[기획특집] 죽음에 묻힌 진실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지난 대선전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 전문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총·대선을 앞두고 민간인 불법 해킹을 벌인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공분이 높아질 무렵 국정원 해킹 담당 직원이 차량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 국정원 불법 민간인 도감청 의혹은 사라지고 국정원 직원 자살 미스터리 공방의 시작을 알렸다. 올해 초에는 검찰이 MB자원외교 의혹을 파헤치던 중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지’는 수사 방향 자체를 바꿔버렸다. 작년 연말에는 청와대가 측근들의 권력 다툼장으로 묘사된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이 터졌을 때 최모경위가 자살하면서 사건이 유야무야되는 데 일조했다. 정권이나 핵심 권부, 권력 실세가 연루됐다 싶은 대형 사건이면 어김없이 따르는 ‘의문의 자살 사건’. 자살로 묻히는 숨겨진 진실을 추적했다.
- ‘죽음’에 덮인 진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 대형사건 핵심 건드리기 전 ‘잇따른 자살’
대한민국 정치권에 자살로 인해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단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여당에게서 ‘박연차 게이트’ 조사를 받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이에 검찰은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덮어야만 했고 수사는 유야무야됐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측근과 가족들을 지켜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덮고 사라진 대표적인 자살 사례로 남게 됐다.
전직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의 행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현직 국정원 직원이 갑작스럽게 자살하면서 몸통인 ‘국정원 대국민 해킹 의혹’은 사라지고 죽음에 따른 진실공방만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대선에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국정원이 재차 이탈리아 해킹회사로부터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형세였다.
국정원 불법해킹 들통날 시점 ‘자살’
특히 국정원 직원 임 과장의 자살을 둘러싼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으면서 몸통은 사라지고 깃털만 나부끼는 형국이다. 현재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 왜 임과장의 배우자는 경찰이 아닌 119에 신고했는지 ▲ 국정원 직원이 왜 경찰보다 먼저 도착했는지 ▲ 소방당국과 국정원은 왜 경찰을 따돌렸는지 세 가지 의문점이 풀리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임씨가 실제 번개탄을 구입했는지, 왜 소방당국과 경찰은 시신의 위치를 다르게 발표했는지 그리고 시신이 발견된 마티즈 차량의 조기 폐차와 임씨의 부인이 신고과정에서 벌어진 ‘신고쭻신고취소쭻취소확인쭻재신고’도 제대로 해명이 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타살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문제는 국정원 직원의 자살 공방으로 왜 국정원 직원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이탈리아 해킹 업체가 해킹을 당하면서 해킹 프로그램 구매자 중 국정원이 포함되면서 사건은 외부로 알려졌다. 결국 여론을 못 이긴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인정했고 이어 국정원이 해킹회사에 ‘카톡 검열 기능’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번졌다.
주 대상은 삼성 갤럭시폰 국내 모델에 대한 해킹을 요구했고 국내 백신을 회피하는 요청을 하면서 지난 총대선을 앞두고 국내 민간인 도감청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사건이 점점 커지자 국정원은 ‘대북용’이라고 밝히면서 국내 간첩이 카톡으로 간첩활동을 해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북한 요원이 카톡으로 간첩활동을 하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급기야 국정원의 감시 대상이 ‘변호사’라는 폭로가 이어지고(7월15일 위키트리) 2012년 총대선 당시 해킹회선 대량 구매사실(7월16일 한겨레)도 드러나면서 야당에서는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특위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지난 7월 17일 국정원의 SKT사용자 휴대전화 해킹 정황이 드러나면서 ‘대국민 불법 사찰 의혹’이 신빙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7월18일 경기도 용인에서 해킹 담당 핵심 인물로 지목된 임과장이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채 발견됐다. 이로써 지난 2012년 총대선을 거치면서 국정원이 불법 민간인 해킹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잠재워지고 언론과 정치권은 국정원 임과장의 자살을 둘러싼 공방만 늘어놓고 있다.
‘몸통’은 사라지고 ‘꼬리’만 남게 만든 사건은 올해 4월9일 발생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성 전 회장이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은 혐의는 MB자원외교 비리의혹 수사였다. MB자원외교는 재임기간 동안 혈세 30조 원 가까이 들어갔지만 ‘자원 확보’는 안 되고 혈세만 낭비한 대표적인 실패 사업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향후에도 45조 이상 더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자 처벌 논란이 거세었다. 이에 여야는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조특위를 올해 1월 띄워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검찰 역시 자원외교 관련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포스코뿐만 아니라 석유·광물·가스공사 등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마당발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전 정권 인사들의 개입 의혹을 풀 핵심인사였다. 게다가 검찰은 19대초반까지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성 전 회장이 해외석유개발사업 등의 명목으로 정부에서 빌린 330억여 원과 일반융자 130억여 원에 가운데 수십억 원이 성 전 회장의 가족 계좌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하고 있었다.
성회장 자살 MB정권 핵심인사 살아
그러던 차에 성 전 회장은 4월8일 갑작스런 기자회견을 갖고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튿날 오후 서울 북한산 형제봉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자살하기 전 일간지와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고 여야 유력한 정치권 인사에게 ‘구명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무엇보다 주머니에서 나온 ‘금품제공 리스트’에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이 있어 삽시간에 자원외교 비리는 사라지고 로비 의혹 사건으로 변질됐다.
그렇다고 검찰이 ‘로비의혹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는 평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 리스트 8인가운데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만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또한 MB자원외교 수사에도 차질을 빚었다. 갑작스런 성 전 회장의 자살로 인해 검찰은 포스코 등의 기업보다는 공기업에 수사가 맞춰졌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과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 구속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자살로 인해 강 전 사장에 대한 수사가 진척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MB정권 시절 MB맨으로 자원외교를 주도했던 김 전 사장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되면서 사실상 빈손으로 마무리했다.
야당 역시 해외자원개발국조특위를 어렵사리 만들었지만 MB 자원외교 핵심 인사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차관, 최경환 기재부 장관과 차관을 증인채택 요청을 했지만 여당에서 반발하면서 유야무야 됐다. 결국 국조특위 역시 성 전 회장의 죽음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청문회 개최도 못하고 시한을 넘기면서 유야무야됐다. 성 전 회장의 자살하지 않았다면 유무죄도 불투명한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대신해 전 정권 핵심인사들이 철창행으로 이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검찰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청와대 비선실세 파문어김없이…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과 권력 핵심 인사들 관련 수사에 결정적인 인사들의 자살은 청와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했다. 지난 연말 청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사건이 터졌을 때다. 박근혜 대통령의 ‘밀실 인사’, ‘수첩 인사’에 대한 정치권의 질타가 이어질 무렵 터진 이 문건 사건으로 ‘문고리 3인방’에 ‘7인회’ 그리고 정윤회 전 최태민 조카사위와 박지만 EG회장까지 등장하면서 청와대가 비선 실세 권력 다툼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에 박 대통령은 서둘러 ‘찌라시 수준’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급기야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관련 인사들을 소환해 진위 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이 문건 유출자로 지목한 최모 경위가 갑작스럽게 자살하면서 수사 자체가 신뢰성을 잃게 됐다.
무엇보다 최 경위는 자살하기 전 ‘억울함’을 호소해 유족들은 청와대의 압박에 부담을 느껴 자살했다고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결국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선 실세 문건 파문’은 검찰수사 결과 ‘실체가 없다’며 유야무야됐고 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밖에도 이명박 정권 초기에 터진 CNK 인터내셔널 주가 조작 의혹 사건 역시 임준호 부회장이 자살하면서 유야무야됐다. CNK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최소 4억2000만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내용의 외교부 보도자료가 나가면서 이 회사의 주가는 폭등했고 주가 조작 의혹이 일었다.
당시 검찰은 김은석 전 외교부 에너지 대사를 비롯해 박영준 전 차관까지 이름이 나오면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번졌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인 임 부회장이 자살했고 오덕균 회장은 아프리카로 도피하면서 검찰 수사는 유야무야됐다. 2013년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카메룬으로 출국한 오 전 회장은 2014년 3월달 귀국해 검찰에 자진 출두했고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또한 김 전 대사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대한민국을 뒤흔들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갑작스런 자살로 진실은 사라지고 의혹만 남는 희한한 행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