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경영…70년 생존 버팀목 ‘100년 기업 향해 뛴다’
해방둥이 기업 열전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1945년 창립해 현재까지 건재한 장수 기업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굴지의 기업들이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사정당국에 조사를 받으며 허덕이는 모습과 달리 창업주 정신과 개척정신을 밑천삼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한 이들 기업의 특징은 주로 식품, 의약품, 물류, 시멘트, 화장품 등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분야를 기반으로 사업을 펼쳤다는 점이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을 함께 한 ‘해방둥이’ 기업들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SPC·한진·아모레퍼시픽…위기 넘고 세계화 앞장
해태제과·동아건설…회사 주인 바뀌었지만 명맥 유지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했던 1945년,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도 뛰어넘고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해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수송물류기업으로 성장한 한진그룹이 대표적인 해방둥이 기업으로 꼽힌다.
한진그룹은 1945년 11월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의미를 담은 ‘한진상사’ 창업을 모태로 한다. 70년 동안 수송 외길을 걸어온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한진해운, 한진을 주축으로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진그룹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1967년 7월에는 자본금 2억 원으로 해운업 진출을 위해 대진해운을 세우고, 같은 해 9월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를 인수했다. 1968년 2월에는 한국공항, 8월에는 한일개발을 설립하고, 9월에는 인하공대를 인수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명실상부한 기업이 됐다.
그 결과 재계 순위 10위 한진은 ‘수송을 통해 국가, 사회,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창업주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창업정신에 입각해 창의와 신념, 성의와 실천, 책임과 봉사를 그룹 사훈으로 삼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만 최근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으로 불명예를 안았지만 털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재계에 만연하다.
매출 4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둔 아모레퍼시픽도 대표적 해방둥이 기업이다.
1964년, 최초로 화장품 수출을 시작했고, 제품력과 한류 열풍을 바탕으로 중국시장 개척에 성공하며 지난해 사상 첫 화장품 무역수지 흑자를 이끌었다.
금융업에까지 진출했다가 1990년대 초반 최대 위기를 맞은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에 올인하라”는 창업회장의 유지로 돌아간 덕분에 오늘날 한류를 이끄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는 수출과 관광객 대상 쇼핑 모두 호조를 보이며 두 자릿수의 고성장을 이어갔고 주가는 1년 사이 두 배 넘게 뛰어 200만 원도 훌쩍 넘기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올해 한중 FTA가 발효되면 중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삼아 글로벌 화장품 회사가 되겠다는 꿈은 현실에 더욱 가까워질 전망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했던 그 시절 황해도의 작은 빵집에서 출발한 삼립식품은 현재 종합식품회사 SPC로 탈바꿈해 빵의 본고장 프랑스에까지 진출했다.
특히 1964년 출시한 크림빵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자동화 설비로 만든 양산 빵이다. 제과점에서 제각각으로 만들던 빵을 산업화한 첫 제품이다. 설탕이 귀한 시절 달콤한 크림이 들어 있는 크림빵은 출시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1971년 나온 호빵은 ‘겨울은 제빵업계의 비수기’라는 공식을 깬 제품이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쪄먹는 용도로 나왔지만 1972년부터는 호빵 판매용 찜통을 슈퍼마켓에 보급하며 즉석에서 먹는 간식으로 재탄생했다.
SPC의 또다른 사업단 파리바게뜨는 국내 케이크시장 트렌드를 완전히 바꿨다.
자본주의 마중물 역할
이외에도 JW중외그룹, 대웅제약, 노루페인트, 해태제과 등도 광복과 함께 역사가 시작됐다.
링거라고 알려진 수액제 등 지난 70년 동안 필수의약품을 중심으로 국민 건강을 지켜온 JW중외그룹의 올해 창립기념일 행사는 뜻 깊었다. 참석한 직원들의 감회도 남달랐다. 행사에 참석한 한 직원은 “무대 한 켠에 자리잡은 ‘70’이라는 숫자에 장수기업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제약업계의 또 다른 해방둥이는 대웅제약이다. 전신은 조선간유제약공업사다. 중외제약보다 일주일 늦게 출발했다.
1961년 대한비타민에서 현재 대웅제약의 간판 제품인 우루사를 선보였다. 그러나 대한비타민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경영난을 겪으면서 1966년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에게 회사가 팔렸고, 이때부터 회사를 경영한 윤 회장이 대웅제약의 실질적인 창업자로 불린다.
1978년 대웅제약으로 이름표를 바꿔 단 뒤에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해왔다. 우루사와 베아제를 앞세워 1973년 상장 이후 지금까지 매년 흑자 배당의 전통을 이어왔고 지난해 7458억 원의 매출로 업계 4위권에 올라섰다. 2001년 국내 바이오 신약 1호인 ‘이지에프’로 바이오 신약의 포문을 열었다. 5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보톡스 대체 의약품으로 개발한 ‘나보타(NABOTA)’는 현재 60여개국에서 약 7000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동물이름 브랜드로 장수하는 노루페인트, 건설화학공업(제비표)의 생존의 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장수 제과업체였던 해태제과는 외환위기 당시 부도로, 지금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명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해태제과를 인수한 크라운해태제과는 출시 4개월 만에 매출 200억 원을 기록한 허니버터칩의 열풍을 이어간다는 전략을 세우고 허니맛 시리즈를 잇달아 출시할 계획이다.
‘중동 특수’에 힘입어 90년대 도급순위 2위까지 올랐던 동아건설 역시 현재는 힘든 나날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해방둥이로서 우리나라 경제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들 기업은 우리나라 자본주위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한국 경제의 산증인으로 이제는 100년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국내 57만여 개 기업 가운데 해방둥이는 30여 곳 남짓”이라며 장수기업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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