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 실존 인물 누군지 모르는 사람 태반

광복 70주년, 한국인의 역사의식

2015-08-17     김현지 기자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역사영화 <암살>의 인기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돋보여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웰메이드 영화 덕에 역사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은 실존인물과 혼동을 일으키는 등 역사적 사실에 어두운 면을 보이고 있다.


역사교육 시장 지속적 증가에도 교육적 효과는 글쎄…
역사의식 부재는 여전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다다랐던 1933년이 시대 배경인 영화 <암살>. 일제의 억압과 조선인의 친일 행각이 짙어진 시대에 항일운동을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실존인물 김구와 김원봉을 중심으로 허구적 인물들의 항일투쟁과 삶, 그리고 그들 간의 배신을 그렸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세 명의 주인공들은 허구의 인물이다. 이들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무섭게 많은 관객들은 스마트폰으로 관련 검색을 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A씨(남·52)는 최근 이슈인 이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봤다. 학생인 두 딸을 데리고 아내와 영화관을 찾았다는 A씨는, 영화가 끝난 후 아이들의 대화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구의 옷차림 그대로 재현한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인지를 몰랐다는 것. 항일운동단체인 의열단을 이끌며 일제에 반해 주도적으로 투쟁했던 인물 김원봉 역시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A씨는 “투쟁가였던 김원봉이야 모를 수 있다고 해도, 백범 김구 선생을 모르는 아이들을 보고 정말 놀랐다”며 “역사의식이 이렇게 없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본지와의 거리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씨(여·38)는 “실존인물이 헷갈리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건 항일운동가들을 배신한 주인공, 그리고 그와 비슷한 친일 인사들의 악행이 ‘왜 나쁜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을 둔 B씨는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본 뒤 딸의 질문에 놀랐다며 이 같이 언급했다. “역사 공부를 많이 한 게 아니라고 해도 친일 행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자체가 요즘 아이들은 부족한 것 같다”며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덧붙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최근 한 시민단체에서 학생들의 역사의식에 관한 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했다. 서울시내 초·중학생 920명을 대상으로 ‘국경일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초등학생은 41%, 중학생은 33%가 모른다고 답했다. 또 많은 학생들이 광복절과 3·1절을 단순히 ‘나라의 생일’로 치부하는 등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결과를 두고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의식 정립을 위해 역사교육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성인들의 역사의식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갤럽이 올 2월에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5명을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3·1운동과 광복이 일어난 해를 정확히 아는 비율은 각각 32%와 58%를 차지했다. 3·1운동이 일어난 해를 아는 성인 남녀의 비율이 절반도 되지 않는 셈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조사 결과도 한국갤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사에 따르면 태극기 문양을 정확히 모르는 비율이 41.4%, 광복년도를 모르는 비율이 26.0%를 차지했다.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정부에선 한국사를 2017년부터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에 가산점을 주는 공기업·단체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문제는 역사의식 고취를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반강제적인 역사교육은 오히려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를 낮춘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며 “실제로 역사교육을 학교 혹은 사교육 시장에서 받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보면 여전히 역사를 잘 모른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또 역사의식이 여전히 미흡한 현실에 대해 “영화 <암살>의 흥행처럼 역사의식을 영화·연극 등 문화 측면에서 채울 수 있다”며 “사람들이 역사에 흥미를 일으킬 만한 요소를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고 언급했다.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