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범죄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몸은 어른, 속은 어린 아이들의 끔찍한 범죄 세계
2010-12-21 이지영 기자
지난 10월 서울 잠실동 한강시민공원. 김모(21)씨 형제는 오토바이를 탄 임모(17)군이 자신들 앞으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 형제는 각목과 쇠파이프를 손에 쥐고 앞을 지나가던 윤군을 에워싸고 협박했다. 임군은 속수무책으로 오토바이를 빼앗겼다. 또한 무면허였기에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턱과 코 밑에 난 거뭇한 수염, 덥수룩한 머리, 육중한 체격을 가진 그들은 2008년부터 강남권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이른바 ‘산적파’ 일당이었다. 이들의 범행은 이미 10대 때부터 시작됐으며 또 검거 당시에도 10대 청소년들을 규합해 폭력조직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청소년 비행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청소년의 일탈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일탈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선생님들은 날이 갈수록 잔혹해지고 지능적인 범죄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게다가 비행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쉼터와 이들을 이끌 전문 상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무관심과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비행 청소년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사회적 관심 부족과 치열한 입시, 부모나 교사 등과의 대화 및 소통의 부재가 아이들을 점점 위기로 내몰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청소년 일탈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난 8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권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야쿠자 문신을 보여주면서 쇠파이프, 각목 등으로 폭행 협박하고, 오토바이 20여대를 상습적으로 강취해 인터넷 사이트에 처분한 일당을 검거했다.
이들은 기존 조폭을 동경하는 일명 ‘산적’패거리(일명 산적파)라는 잠실지역의 토착 폭력배들로 2009년 2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송파 잠실 한강공원 등에서 총 5회에 걸쳐 오토바이 4대(시가 520만 원)를 강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10대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조폭 등장
“우리 문신 멋지지? 야쿠자들이 하는거야. 근데 너, ‘산적’이라고 들어봤지?”
산적파의 주 타깃 대상은 오토바이를 타는 학생들로 이들이 지날 때마다 쇠파이프나 각목 등으로 위협하며 검문을 했다. 구입 경로나 면허증 소지 여부를 물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오토바이를 빼앗았다. 이들이 타는 오토바이들 대부분이 무면허나 장물일 가능성이 높아 신고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들 조직은 대포차량에 쇠파이프 등을 싣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청소년들을 위협해 금품을 빼앗기도 했다. 심지어 강탈한 오토바이를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올려 처분하고, 반대로 오토바이를 팔겠다는 피해자를 유인해 감금한 뒤 때리고 이를 빼앗기까지 했다.
이들은 인근 학교 불량 청소년 40~50명을 추종 세력으로 거느리며 점점 세를 불려 나갔다. 송파구 잠실동 소재 커피숍을 주요 접선지로 삼고 강남, 대치, 송파, 잠실지역 불량청소년들을 규합, ‘비밀과 의리를 지키자’는 행동강령까지 만들었다. 조직원들끼리 서로 뒤를 봐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전문조직폭력배의 행동을 모방하는 등 조직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멈춰지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비행은 지난 10월 끝이 났다. 개포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자신들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세력과 시비가 붙은 것을 목격한 인근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경찰에 꼬리가 잡힌것. 경찰은 “1~2년만 더 있었으면 전문 조직 폭력배로 발전할 정도로 이미 강취 수법이나 조직 관리 등은 범죄단체 성격을 갖춘 상태라 더 진화하기 전에 검거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사건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청소년들의 비행이 단순 절도나 싸움에 그쳤다면 지금은 점점 더 지능적이고 잔혹하다. 지난 7일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는 수법으로 또래 학생을 집단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청소년 강도 31%, 살인 21%, 절도 20.8%나 증가
부산 금정경찰서는 지난 7일 길 가던 중학생을 야산으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고, 이 학생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를 빼앗은 혐의(특수강도)로 김모(17)군 등 3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 등은 지난 6일 밤 10시께 금정구 서동의 한 골목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이모(15)군을 불러 세워 “면허증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되겠느냐, 조용히 따라오라”며 협박해 인근 회동동의 야산까지 4km가량을 끌고 갔다. 김군 등은 돈을 빼앗으려 했으나 이군이 가진 돈이 없자 “오토바이로 날치기를 해서 100만 원을 만들어 오면 살려주겠다”, “내 소변을 받아 먹으면 살려주겠다”는 등 거친 말로 협박하면서 마구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은 컴컴한 야산에서 30여 분 동안 땅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는 등 조폭 못지않은 수법으로 협박해 이 군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이들은 이군을 한 시간 가량 괴롭힌 뒤 달아났으나, 풀려난 이군이 즉시 경찰에 신고해 일행 중 2명이 붙잡혔다. 도망간 나머지 1명은 소식을 접한 부모의 설득에 의해 자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3일에는 부산에서 배모(16)군 등 폭주족 2명이 휴일이라 심심하다며 12일 오전 2시30분께 일당 30여명과 함께 부산 사상구 주례삼거리에서 부신진구 개금삼거리까지 떼 지어 다니며 경찰의 단속을 피해 차량을 위협, 1시간 동안 교통을 방해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일도 있었다.
또 이보다 앞선 9일에는 경기도 안양 소재 중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이 호기심에 구입한 칼을 여학생 4명 등 동급생 5명에게 휘두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청소년의 범죄는 날이 갈수록 대담하고 즉흥적이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서울특별시 청소년 위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과 대중매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폭력성은 해가 지날수록 증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비행청소년 뿐 아니라 서울시 초·중·고에 재학 중인 1만2949명 중 음주경험(11.6%), 흡연경험(7.7%), 가출경험(5.8%), 친구를 따돌린 경험(10.5%), 친구를 괴롭힌 경험(9.9%), 타인의 돈이나 물건을 훔쳐본 경험(6.7%)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 전반적으로 비행 불안요소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방화·절도)는 2008년과 비교해 2009년에 강도 31%, 살인 21%, 절도 20.8%나 증가했으며, 대검찰청 ‘2010년도 범죄분석’에 따르면 15세와 16세의 범죄가 전체 범죄의 각 14.9%, 13.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범죄는 연령이 낮다는 이유로 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미뤄볼 때 실제 범행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 범죄도 증가
이처럼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청소년 비행 실태에 대안은 없는 것일까. 정부에서는 2005년도에 국가청소년위원회를 신설, 청소년 문제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위기(가능)청소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것도 이때부터다. 위기(가능)청소년이란 청소년 개인과 청소년을 둘러싼 가족·학교·또래·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수준의 문제가 존재하고, 이러한 문제가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발달되거나 완화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청소년을 지칭하였다.
서울특별시 청소년지원상담센터 이윤조 상담팀장은 “청소년 비행에 정의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며 “꼭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뿐만 아니라 범죄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도 비행 청소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 비행에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팀장은 “청소년 비행에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어서 볼 것이 아니라”며 “청소년 인성 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전반적인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급증하는 비행청소년의 추세가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 대도시화 되면서 개인 중심의 문화가 되었고, 그 결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비행청소년은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무리를 만들고 그 안에 소속되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며 “비행청소년들 중에서는 오히려 소심하고 과묵한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또래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거고, 같은 처지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비행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라며 결국은 어울릴 곳이 없어서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셈이니 오히려 비행청소년을 따뜻하게 바라봐 줄 것을 요청했다.
적절한 상담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비행청소년은 만들어 지지 않을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처벌과 징계보다는 따뜻한 이해심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최근 비행청소년을 교화시키는 상담센터와 쉼터가 많이 생겼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1318’도 넘쳐나는 비행청소년들을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의 경우 소년원으로 송치되지 않고 가정법원에서 상담명령을 받지만, 이를 처리하기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이 팀장은 “정말 안타깝게도 저희가 모든 학생들을 상담할 수 없다”며 “집단으로 상담하면 괜찮지 않냐고 하시지만, 오히려 집단 상담은 또 다른 비행 청소년들과 만날 수 있는 비행의 장이 된다며 개별 상담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