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특집] ‘현역 프리미엄’ 안고 지역구 찾아 헤매는 비례대표
‘마음은 이미 콩밭에…’ 재선이 급선무!
손인춘·양창영 ‘총선 불출마’…나머지는 출마 가능성 대두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지금 여의도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제도’에 대한 ‘밥그릇 싸움’에 한창이다.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 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새누리당은 늘릴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 의원들은 현역 프리미엄을 안고 지역구 출마를 노리고 있다. 이를 두고 비례대표제가 지역구 선거 도전을 위한 관문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들은 내년 총선을 위해 지역구 선정 및 지역다지기에 돌입한 상태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비례대표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지역구 출마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4년마다 여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출신 의원 중 일부는 지역구에 뿌리를 내린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비례대표들은 지역구를 선정하는 데 출신배경보다는 당선 가능성을 우선시하며, 동료의원들과의 맞대결도 피해야 한다. 게다가 인지도 역시 쌓아야 한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지역을 찾더라도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역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출신 의원이 지역구에 뿌리를 내린 경우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실제 18대 국회의 경우 비례대표 54명 중 지역구에 뿌리를 내린 의원은 6명에 그쳤다. 그만큼 지역구에 뿌리를 내리고 공천을 받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출마 결심, 지역은 글쎄…
현재 비례대표 의원 52명 중 20대 총선에 지역구로 출마하거나 출마를 검토 중인 의원만 4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과 양창영 의원 정도만 내년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상태다.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되어 의원직을 사퇴한 김현숙 의원도 사실상 불출마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용익, 한명숙 의원 정도만 불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뿐 확정 단계는 아니다. 사실상 대다수가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출마를 고려하는 비례대표의원들은 지역구 선정을 위해 지역위원장에 도전한다. 지역 내 조직관리를 하기 때문에 내년 총선 공천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조직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비례대표는 12명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에선 김정록(서울 강서갑), 민병주(대전 유성), 방창식(경기 구리), 이상일(경기 용인을), 이재영(서울 강동을), 조명철(인천 계양을), 주영순(전남 무안·신안) 의원 등이다. 새정치연합에선 김기준(서울 양천갑), 백군기(경기 용인갑), 진성준(서울 강서을), 홍희락(대구 북을) 의원이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반해 지역위원장 자리를 꿰차지 못한 이들도 많다. 현역프리미엄을 가졌더라도 조직을 탄탄히 구축하고 있는 원외위원장들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상민, 강은희, 이에리사 의원, 새정치연합 남인순, 은수미 의원 등이 고배를 마신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비록 조직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했더라도 재도전할 계획이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대구 수성갑 조직위원장으로 내정돼 고배를 마신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은 “조직위원장이 못 됐을 뿐이다. 내년 총선 공천 경선까지 수성갑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지사의 대중성을 하루아침에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었다”며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은 분구를 기대하고 있는 고향 경기 수원갑(장안구)에 사무실을 열어 활동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남인순 의원은 지난 5월 서울 송파병에 사무소를 개소했다. 여름휴가도 반납한 채 지역 상가, 시장 등을 돌며 주민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성남 중원 지역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한 은수미 의원 역시 지역사무소를 개소, 지역다지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위원장에 도전하지 않았지만 지역구를 노리는 의원들 역시 상당수다.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은 인천 연수구로부터 분구가 예상되는 송도를 낙점한 상황이다. 송도로 이사할 예정인 민 의원은 주 3회 이상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또 윤명희 의원은 경기 이천, 이운룡 의원은 경기 일산 동구, 최봉홍 의원은 부산 사하을, 황인자 의원은 서울 마포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에선 김광진 의원이 지난해 10월 전남 순천에 사무소를 마련했다. 주말마다 지역구를 방문, 지역민들을 만나고 있다. 김현 의원은 안산 단원갑, 배재정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부산 사상구, 장하나 의원은 서울 노원갑, 진선미 의원은 서울 강동갑, 최동익 의원은 서울 동작을, 한정애 의원은 서울 강서을을 노리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들도 출마할 지역구를 낙점했다. 정진후 의원은 경기안양동안을, 김제남 의원은 서울 은평을, 박원석 의원은 경기 수원정, 서기호 의원은 전남 목포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지역구 출마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지역구를 낙점하지 못한 의원들도 수두룩하다.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서울 강남), 송영근 의원(경기 용인), 이만우 의원(부산 해운대) 등은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을 노리고 있다. 이 외에 박윤옥 의원은 대전·서울, 신의진 의원은 수도권과 서울 양천갑, 윤명희 의원은 부산·수도권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에선 최민희 의원이 경기 남양주 분구 지역을 검토하고 있고, 김기식·임수경·전순옥·홍종학 의원 등은 출마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지역구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재선 가는 지름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례대표의 기본 취지인 전문성 강화라는 본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오히려 지역구가 재선으로 가는 지름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 비례대표 의원들의 경우 국회에 입문한 이후부터 지역구를 찾으러 다닌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역 정치 신인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줄이고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지난 7월 2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비례대표와 전체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대 응답이 57.6%(찬성 응답:27.3%)에 달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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