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人의 잠룡들 차기 경쟁 후끈
차별화된 대권플랜 대해부
김무성=보수의 아이콘, 김문수·유승민=TK의 희망 경쟁
문재인=총선 올인, 안철수=존재감 부각, 박원순=이벤트 정치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2017년 대통령선거를 2년 4개월가량 앞두고 잠룡들의 대권 플랜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시점(8월 25일)에 맞춰 각자 ‘나만의 대권 시나리오’를 짜고 올인 하는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간주해 조사 대상으로 올리고 있는 10명의 대권 플랜을 들여다봤다.
여권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유승민 전 원내대표, 김태호 최고위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잠룡으로 꼽힌다. 야권에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대표, 김부겸 전 의원이 대권주자다. 이들의 대권 시나리오는 모두 차별화 돼 있다. ‘10인 10색’이다.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프렌들리’에 집중하면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려는 시도를 했지만 지금은 저자세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한 측근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스타일은 다르다.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서는 대권행보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기정치를 하지 말라’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내치는 과정에서 확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통령 프렌들리에 집중
박 대통령이 4대 개혁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6일 오전. 김 대표는 국회 당 대표실에서 황진하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자들과 TV를 통해 담화를 들었다. 미리 배포된 담화문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25분가량 담화문을 읽는 동안 파란 펜으로 12개의 별표를 쳐가며 경청했다. 곳곳에 동그라미도 쳤다.
김 대표는 담화문 발표를 본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담화문은 평소 제가 말하던 것과 비슷하다. 세계적 무한 경쟁시대에서 생존을 위해 선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일도 김무성 대권플랜의 일환이다. 미국 방문 중에 한국전 참전용사와 한국전에서 전사한 워크 중장의 묘역에 큰 절을 하고, “역시 중국보다는 미국”이라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비판여론도 없지 않지만 측근들에게 “마음이 내켜서 한 행동과 말이니 개의치 말라”고 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정치적으론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 도입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당 지도부가 가진 공천권을 내려놓고 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공천학살 위기감을 느끼는 친박계를 다독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빅딜’하자고 제안했지만 “공천혁명은 정치개혁의 원칙으로 다른 제도와 맞바꿀 수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거부하는 속셈은 따로 있다. 선관위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19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했을 때 여당이 절대 불리하다. 특히 이 경우 야당은 영남에서 19석을 더 건지지만, 여당은 호남에서 4석을 얻는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는 대권플랜 차권에서 야당이 영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셈이다.
김 대표는 현재 ‘TK(대구·경북) 공략’에 애를 먹고 있다. 대권을 거머쥐려면 영남권 전체의 단합이 필수적이지만 TK 여론은 PK(부산·경남) 출신인 김 대표에게 부정적인 기류가 있다. 전통적으로 TK와 PK의 경쟁심리가 작용하는 까닭이다. 아울러 오래전부터 남부권 신공항 입지를 놓고 양 지역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의 틈새를 TK 출신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파고들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6일 대구 수성갑 당원협의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내년 총선 공천에 한 발 다가선 셈이다. 그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주자로 나설 김부겸 전 의원에게 승리를 거둔다면 대권주자 반열에 합류하게 된다.
‘유승민 파동’ 이후 유 전 원내대표의 몸값도 치솟았다. ‘박근혜 마니아’들로부터는 배척을 받고 있지만 ‘신(新)보수’를 기치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 잡았다. 당내에선 이미 ‘유승민 계보’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김 전 지사가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유 전 원내대표와 TK의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두 사람은 경북고 선후배 사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지난 3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계은퇴는 아니다. 최고위원 직은 유지하고 있다. 그는 불출마 발표 하루 뒤에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지역구인 경남 김해을 당원협의회 당직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초기 러시아 푸틴 총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40대 대통령이 없을까’라는 의문과 부러움을 함께 가지며 소중한 꿈을 간직해왔다”고 했다. 올해 53세인 그는 40대 시절인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돼 ‘박근혜 대항마’로 떠올랐으나 인사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바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김 최고위원과 함께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는 친박계의 ‘대안’으로 간주된다. 그는 시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이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 했지만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을 승리를 적극 도우며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2007년 대선 국면에서 한때 ‘오-박(오세훈-박근혜) 연대설’이 나돌았을 만큼 박 대통령의 신임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오 전 시장이 내년 총선 때 서울의 한 선거구에서 출마해 당선된다면 단번에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
“단언컨대 분당은 없다”
야권에선 문재인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선두를 다투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책임론에 휩싸여 분당 위기에 몰려 있지만 충성심 강한 친노계의 지지를 독차지하고 있다.
문 대표는 최근 “저의 정치생명은 총선 성적에 달렸다”고 선언했다. 또 “단언컨대 분당은 없다. 통합만이 있을 뿐”이라고도 했다. 내년 총선에 올인해 승리를 거둔 뒤 대권가도를 본격적으로 달리겠다는 의미다. 특히 호남 선거 결과는 ‘문재인 대권플랜’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된다. 총선에 앞서 새로운 ‘호남신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문 대표는 당명 변경과 당사 이전 등으로 분위기를 쇄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여의도 당사의 터가 좋지 않아 당내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최근 경남 양산에서의 여름휴가를 겸한 정국구상을 마친 뒤 김무성 대표에게 ‘빅딜’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스타일을 구기기도 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국정원 해킹 의혹 정국에서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컴퓨터 전문가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소기의 성과를 얻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대신 그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차기 대권 도전과 관련,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끝까지 갈 것이다. 실력으로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위권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새정치’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메르스 정국’에서 주가를 올리는 데 성공한 박원순 시장은 중국 관광객 유치에 직접 뛰어들어 ‘일하는 리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최근 베이징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에서 붉은색 바지를 입고 한류스타 강타 등과 함께 서울관광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박 시장이 주력하고 있는 이벤트 정치의 일환이다.
손학규 전 대표는 전남 강진 토담집에 머물면서도 수시로 서울을 찾고 있다. 정치인들이나 측근들의 경조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을 두고 ‘사실상의 정치 재개’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강진 토담집은 ‘다산 초당’ 인근에 있어 그가 조선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이미지를 마케팅 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야권의 지형변화에 따라 언제든 일선 정치에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부겸 전 의원은 새정치연합의 적진이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대권 꿈을 키워가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무리한 출마를 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내년 총선의 최대 빅 매치가 될 수성갑 선거에서 김문수 전 지사를 꺾을 경우 그는 단숨에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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