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른 미운오리새끼, 우리카드남자배구단의 반전 드라마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여름배구 축제인 ‘2015 청주·코보(KOVO)컵 프로배구대회’가 9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가운데 여자부는 IBK기업은행이 최종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현대카드를 꺾고 2년 만에 왕좌에 올랐다. 남자부는 우리카드가 지난 V-리그 우승팀인 오케이저축은행을 이기고 창단 첫 컵 대회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해체 위기에서 기사회생한 우리카드의 도전기를 만나본다.
해체위기에서 모기업 결단으로 회생…새 감독과 투자로 안정감 되찾아
4년 만에 현장에 돌아온 김상우 감독…우승으로 세대교체 지평을 열다
지난 시즌 팀 해체와 철회를 반복하는 등 배구계의 트러블메이커로 불리며 한국배구연맹(KOVO)의 고민거리였던 우리카드가 코보컵을 통해 반전의 역사를 새로 썼다.
당초 우리카드는 김정환의 상무 입대와 최홍석 등 주축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 박상하 등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개막전 ‘꼴찌 후보’로 분류됐다.
더욱이 지난 시즌 36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3승에 그치며 최하위에 머물렀고 운영 의지가 없었던 구단 탓에 선수들 역시 기운을 차릴 원동력이 없었다. 하지만 모기업인 우리카드가 다시 투자와 관심을 보이면서 뒤숭숭했던 팀 내 분위기를 추스르고 있는 상황에서 극적인 코보컵 우승을 일궈내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코보컵에서 우리카드의 초반기세는 기울어 있었다. 우리카드는 조별예선에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각각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조별예선 탈락이 거의 확실시 됐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서로의 발목을 잡은 B조 순위표는 조별예선 마지막 날까지 안개 속이었고 3차전에서 준결승행 주인공이 결정됐다. 우리카드는 한국전력을 3-1로 꺾으며 가능성을 열었고 점수 득실률에서 현대캐피탈을 앞서며 B조 2위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이뤄냈다.
우리카드의 기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별예선 3전 전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한 KB손해보험을 누르며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고 지난 시즌 V-리그 챔프전 우승팀 오케이저축은행마저 격파하며 창단 첫 리그컵대회 우승이라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 MVP로 뽑힌 최홍석은 “지난 시즌의 우리가 아니다”라며 다가오는 V-리그에서의 필승을 다짐했다.
꼴찌의 반란
애물단지 탈 벗어
극적으로 살아난 우리카드의 반전드라마에는 김상우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김 감독은 “먼저 팀을 이끄셨던 강만수, 양진웅 두 감독님이 팀을 잘 만들어 오셨던 것에 나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고 겸양을 표했다.
그는 리그컵 우승의 원동력으로 달라진 선수단 분위기를 꼽았다. 김 감독은 “요즘 선수들이 ‘배구할 맛이 난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구단이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선수들은 어떻게든 팀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동밖에 할 줄 몰랐던 친구들인데 더는 운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막막하고 불안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감독은 계속 배구를 하려면 다른 구단으로 가야하지만 팀이 많지 않고 인원도 제한적인 국내 상황에서 이적이 쉽지 않다는 현실도 불안감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기업인 우리카드가 한국배구연맹 회원사 탈퇴 선언, 신영석 비밀 트레이드 파동 등으로 비난 여론에 시달린 끝에 리그 탈퇴를 번복하면서 해체수순은 일단락됐다.
물론 아직 구단 운영을 놓고 말을 바꾼 것에 대해 비난이 남아 있지만 선수단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여기에 구단은 공석이던 감독자리에 지난 4월 젊고 참신한 이미지의 김상우 성균관대 감독을 영입했고 인천 청라지구 숙소 마련과 송림체육관을 대관해 전용 훈련장으로 삼는 등 실질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선수들이 구단의 태도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구단이 진짜 운영의 의지를 갖고 선수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을 느끼면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김 감독에게도 우리카드배구단은 명예회복을 노리는 기회가 됐다. 김 감독은 2011년 9월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사령탑에서 계약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는 아픔이 있다.
당시 김 감독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를 믿고 지원해줄 수 있는 팀에서 감독을 해보고 싶다. 혼신의 힘을 다해 보답하겠다”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의 각오는 3년 7개월 만에 프로배구 감독으로 복귀하자마자 리그컵 우승을 일궈내면서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냈다.
절친에서 라이벌로…
흥행카드 등극
김 감독은 앞으로 3년간 우리카드를 이끌며 모기업과 서울 배구 팬층을 응집시키는 중차대한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됐다. 모기업 역시 책임감을 갖고 운영 의지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혀 오는 10월 10일 개막하는 2015-2016 V-리그에서의 우리카드의 변신이 더욱 기대된다.
V-리그를 앞두고 김 감독은 “KOVO컵 우승으로 자신감이 생기긴 했지만 원체 선수층이 얇아 겨울에도 이렇게 해줄 것 같진 않다. 다만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팀의 보완할 점에 대해 체크할 수 있었다. 또 용병 군다스가 8월초 입국할 예정이다. 지난해 뛰었던 오스멜 까메호나 다비드와 달리 세계무대에서 A급으로 통했던 선수다. 물론 1년간 공백이 있긴 하지만 워낙 한 가닥 했던 선수니 본인 기량의 90% 정도만 올라와줘도 이번 겨울 V-리그에서도 해볼 만하다. 기대해 달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이번 대회를 통해 무려 5명의 신임감독이 데뷔전을 치르며 감독들의 세대교체를 확인하는 무대가 됐다. 남자부는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을 비롯해 최태웅(현대캐피탈), 강성형(KB손해보험), 김상우(우리카드) 감독이 새 사령탑을 맡았고 여자부는 이호(경북김천 하이패스) 감독이 데뷔전을 치렀다.
특히 이들은 40대 초중반의 젊은 감독들로 저마다의 지휘력으로 이번 대회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또 선수시절 형성한 라이벌 구도가 이어지면서 팬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점도 V-리그의 새 흥행카드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남자부 결승전에서 맞붙은 김세진 오케이저축은행 감독과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절친으로 유명하다. 두 감독은 국가대표와 삼성화재서 라이트(김세진)와 센터(김상우)로 활약하며 한국 배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두 감독은 첫 대결을 앞두고서부터 끈근한 우정을 과시했다. 김세진 감독은 “김상우 감독과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붙어다녔다”며 “서로 다른 대학을 다녔지만 늘 같이 시간을 보냈다. 오죽하면 대학교 감독님께서 붙어 다니지 말라고 혼을 낼 정도였다”며 웃음으로 반겼다. 김세진 감독은 또 “친구지만 김상우 감독은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우리카드를 어떻게 이끌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결국 절친 맞대결은 김상우 감독의 우승으로 끝났지만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는 김상우 감독을 향해 김세진 감독이 다가와 포옹을 할 정도로 끈끈한 우정을 재확인 했다.
특히 김세진 감독은 김상우 감독에게 “오자마자 우승하느냐”고 농을 건네기도 하는 등 다가오는 V-리그에서 절친 감독들의 맞대결이 배구 팬들의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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