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면, 창창(昌)한 날 오겠지..."

2007-05-09     김대현 
이회창 전총재 수상한 행보추적
이회창 전총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두 차례 대선패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 전총재가 ‘제3의 인물론’을 타고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
그에 대한 관심은 당내 내분사태가 심화될 때마다 고조되고 있다.
4·25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일부 최고위원들이 사퇴하는 등 혼란이 가중됐고, 이는 곧바로 이명박-박근혜 양진영의 신경전으로 번졌다. 강재섭 대표체제가 흔들리면서 누군가 당의 중심을 잡을 필요성이 대두됐다. 물론, 이 전총재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총재는 섣부른 행보를 자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외부 특강과 해외 일정 등을 조용하게 소화하며 보수 원로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당내 캠프 진영에서 영입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상황이 향후 7개월 동안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전총재의 향후 행보를 추적했다.



한나라당 내분 사태가 지난 4일 ‘4자회동’을 통해 일단 봉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내분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전히 당내에 잠재해 있어 ‘미완의 수습’에 지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나라당 기초 조직부터 핵심 당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인사들이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대표 양측으로 나뉘어져 있는 탓이다. 두 후보가 ‘과연 경선을 완주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관측이 계속되는 것도 양진영의 첨예한 대립이 주요 원인이다.

이에 따라, 당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재를 설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회창 전총재의 ‘역할론’은 이러한 기저에서 태동하고 있는 것. 당 내분이 격화되고 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이 전총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인사들과 자주 ‘접촉’
이 전총재 주변에는 아직도 과거 측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흥주, 이종구 특보를 비롯해 ‘함덕회’ 소속 전직 국회의원, 지지모임 ‘창사랑’ 등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전총재는 당내 현역 의원들과도 자주 오찬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당내 중진급인 권철현, 김기춘 의원과도 저녁식사를 하며 정치적 사안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는 후문이다. 일부 진영에서 영입 ‘0순위’로 꼽힐 정도로 이 전총재의 영향력이 유효하기 때문에 ‘러브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전총재가 섣불리 특정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내 대선후보가 확정되면 움직이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관측과 달리 아직까지 기회가 남아 있다고 판단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회창 전총재는 스스로 밝혔듯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만에 하나, 한나라당이 정권을 창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상황이 바뀔 여지는 남아 있다”고 했다.

당내 경선에서 2위에 오른 후보가 경선승복을 하게 되더라도, 여권의 정치적 공세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범여권 일부 정치인들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시장을 향해 “한방이면 끝난다”고 말할 정도다. 네거티브 전략은 올해 대선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낳을 게 자명하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이 직접 ‘막말식’ 폭로를 예고하는 모양새는 오히려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박 전대표도 정수장학회, 사생활 등 논란거리가 남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전총재에 대한 ‘구원투수론’은 이런 맥락에서 본선이 치러지는 12월 중순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전총재는 이른바 ‘호시우행’하고 있다. 얼마전 대전에서 열린 지역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가 하면, 지난달 미국 조야의 거물급 인사들을 접촉하고 귀국한 바 있다.

지난 4월 20일 일주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이 전총재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개최한 정기 세미나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후버연구소는 미국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보수파 싱크탱크의 핵심 조직이다.

이 전총재의 측근에 따르면, 이날 세미나를 전후한 시점에 윌리엄 페리 전국방장관 등과 면담을 하는 등 미국 정치권 인사들과 환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핵심 측근들은 이 전총재의 ‘동선’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전시장 캠프에 속해 있는 한 인사는 “얼마 전에 이회창 전총재 주변 분들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공항 귀국장에 지지자들을 좀 동원할 수 있냐는 말씀을 하시더라”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이 전총재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과거처럼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편적인 움직임만 가지고 이 전총재의 행보를 예상하긴 어렵겠지만, 아직도 (대선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4월 27일 인천공항 귀국장에는 수백명의 환영객이 모였다.

이 전총재는 97년,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1,000만표 이상의 득표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조야 인사들과 ‘친밀감’ 높아
당안팎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정작 이 전총재측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 전총재의 측근은 “무슨 일만 있으면 총재의 이름이 거론되는데, 기본 입장은 이미 밝힌 그대로다”라며 “미국 출장을 다녀오신 것도 개인적인 것이라서 조용히 다녀오셨다”고 말했다.

참모 출신 A씨도 “너무 초라하게 하면 좀 그러니까 주변에서 모양새를 갖추는 정도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전총재가 대선 패배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통찰력을 갖췄다면 그가 바라보는 올해 대선과 자신의 역할론이 얼마만큼 가능할지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