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유승민 13일간 전쟁 풀스토리
각본대로 끝난 내부 전쟁...외부선 유승민 지지도 상승
박 대통령, ‘배신의 정치’ 거론하며 노골적 갈등 표출
친박계 움직임에 한 몸처럼 여겨졌던 ‘K-Y라인’ 무너져
친박 몰락… 신보수 VS 구보수
입법부 독립 스스로 버려
[일요서울 ㅣ 박형남 기자]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였다. 감독은 박근혜 대통령, 주연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조연은 친박, 비박계 의원들이었다. 드라마 내용이 아주 색다르다. 반전의 연속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뒤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심판해달라”며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자, 친박계는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론에 불을 지피는 것을 시작으로 드라마는 첨예한 갈등으로 치달았다. 여기저기서 유승민 거취를 놓고 공방전이 가열됐고, 유 전 원내대표는 버텼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한 몸처럼 여겨졌던 ‘K-Y(김무성-유승민)라인’도 무너졌다. 결국 유 전 원내대표는 감독의 각본대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흔히 볼 수 없는 여권 내 파워게임. [일요서울]은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박근혜-유승민 13일간의 드라마를 되돌아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시사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현재권력과 원내대표 간의 충돌 사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물밑조율을 하면서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을 폐기하면 당청 갈등이 봉합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대표도 유 전 원내대표를 감싸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비판→사과→묵살
여권 내홍으로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린 채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며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여당 원내대표 사령탑의 비협조를 정면 비판했다. ‘배신의 정치’까지 거론하며 새누리당을 코너에 몰아넣었다.
이를 기점으로 친박계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유승민 사퇴론’이 불거졌다. 이에 유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일각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친박계 등의 약속 하에 ‘사과’를 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후 청와대와 친박계는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반면 비박계 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유승민 축출’에 반발하는 그룹이 생기기도 했다. 급속도로 당은 혼란에 빠졌다.
급기야 지난달 29일 유 전 원내대표 거취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 최고위원회가 소집돼 다수 최고위원들이 사퇴를 권유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버텼다. “사퇴할 이유를 못 찾겠다”, “사퇴할 경우 있지도 않은 전례를 남긴다”는 이유에서다.
친박계는 의원총회를 소집하겠다고 서명했고, 비박계도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사퇴를 위한 시간과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며 소강국면으로 접어드는가 했지만 친박의원들이 국회법 개정안이 재의에 부쳐지는 시점을 사퇴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김 대표도 결국 ‘현재권력과 싸워 이길 수 없다’며 사퇴쪽으로 선회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와 단둘이 만나 자진사퇴를 권고했지만 유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내 목을 쳐달라’며 완강하게 버텼다.
결국 최고위원들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으로 6일 밤 긴급회동을 갖고 의총에서 유 전 원내대표의 신임을 묻기로 결론짓고, 7일 오전 긴급 최고위를 소집해 의총에서 신임 여부를 묻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비박계 의원들이 ‘재신임 표결’ ‘사퇴 반대’ 의견을 냈지만 ‘사퇴 권고’라는 결론을 바꾸진 못했다.
결국 유 전 원내대표는 자진사퇴 형식으로 원내대표직을 내놔야 했다. 대신 그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를 거론했다. 또 “제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청와대와 권력 핵심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간 자신에 대한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사퇴 압박을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생각하며 정치를 했다고 반박하는 뉘앙스였다.
갈등으로 남긴 오점들
친박, 표결 반대 왜?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난 큰 특징은 실질적으로 친박계가 몰락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원총회 과정에서 친박계는 신임여부에 대한 투표를 반대했고, 비박계 등 일부에서는 투표를 통해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박계 등에서 표 대결 시 유 전 원내대표가 유임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표 대결 ‘불가론’을 설파했다.
단적인 예로 친박계는 유승민 사태를 위해 지도부 사퇴를 거론하며 김 대표를 압박했다. 결국 전방위 압박에 손을 든 김 대표는 친박계, 중립성향 의원들과 연합해 유 전 원내대표 사퇴 권고안을 의결시켰다.
그 이면에는 내년 총선을 대비, 현재 권력과 맞서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론이 대두됐다. 여기에 김 대표까지 합류하면서 중립성향의 의원들은 어쩔수 없이 ‘유승민 사퇴’에 힘을 실었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스탠스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중립성향의 의원들이 친박으로 탈바꿈했지만 김 대표의 움직임에 따라 언제든지 비박계로 갈아탈 수 있다는 말이 당내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또 정당 민주주의와 3권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박 대통령 발언 이후 ‘유승민 사퇴’를 요구하는 등 친박계 의원들이 단체행동에 돌입, ‘명령 하달-이행’식의 당청 관계가 되풀이 됐다. 김 대표가 강조했던 ‘대등하고 수평적 당청관계’가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그 이면에는 당청화합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 내부에서도 “스스로가 입법부 독립성을 버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신보수와 구보수의 노선 대결로 이어질 것이라는 평이 많다. 실제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유 전 대표의 사퇴의 변에 대해 “친박과 비박이 무너지고, 구보수와 신보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다”며 “유 전 원내대표에 의하면 신보수란 따뜻한 보수다, 정의의 보수다, 진영을 넘어서 합의를 추구하는 보수”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국민이 그동안 여권에 실망했던 모습을 벗어나 크게 화두를 던졌다”며 “유 전 워내대표의 사퇴의 변을 들어보니, 사퇴의 변이 아니라 출전의 변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서 소위 친박이라고 하는 분들의 입장이 상당히 궁색해졌다, 이것으로써 끝이다, 몰락”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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