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공주 ‘구지은·박주형’ 엇갈린 근황
내부 벽과는 불통? 소통? ‘기대와 질타 한 몸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금녀의 벽을 깨며 기대를 모았던 두 가문 재벌공주의 엇갈린 근황이 공개됐다. 범 LG가의 유일한 여성 경영인인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사진)은 지난 2일자로 보직해임됐다.
금녀의 벽을 뚫었지만 내부 벽과 마찰이 원인으로 파악된다. 반면 2012년 금호석유화학 주식 지분 보유로 최초의 금호가 여성이 된 박주형씨는 7월 초부터 상무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의 경영진 진퇴 배경을 놓고 여성의 경영참여와 후계구도를 짜고 있는 다른 재벌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해임 vs 첫 선임…경영능력에서는 다른 행보
‘집안 살림’은 옛말…후계구도 나서면서 이목 ‘집중’
범LG가에 속하는 종합식품기업 아워홈 구자학 회장의 딸 구지은 부사장이 보직해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해임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워홈 측은 구 부사장의 보직 해임 이유와 향후 직책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의 일이라 공개할 수 없다”며 “구 부사장이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지난 2일 구매식재사업본부장에서 물러났고 3일부터 회장실로 출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 조치는 구자학 회장이 직접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구 부사장이 올해 초 직접 영입한 김태준 전 대표이사가 4개월만에 이유 없이 그만두는 등 아워홈 내부에서 경영권과 관련한 갈등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구 부사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거취와 관련한 게시물을 올리면서 힘을 더 싣는다.
구 부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부는 인정, 내부는 모략. 변화의 거부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썩게 만든다”는 글을 올려 보직 해임에 대한 불만을 직접 토로했다.
구 부사장은 이어 6일 페이스북에 “그들의 승리. 평소에 일을 모략질만큼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이 7년은 앞서 있었을 거다”라며 자신을 음해한 내부 세력에 직접적인 경고를 남겼다. 내부 인사와의 마찰을 짐작케하는 내용이다.
구 부사장은 범 LG가의 유일한 여성 경영인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구 부사장의 아버지 구자학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으로 범 LG가에 속한다.
반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딸 박주형씨가 7월초부터 금호석유화학 상무로 입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호가는 대부분의 재벌들과 달리 유교적 가풍이 강해 아들만 경영에 참여해왔다. 딸들에게는 계열사 지분 소유도 금했다. 1946년 고 박인천 명예회장 창업 이래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이다. 이런 관례를 깬 이가 주형씨다. 2012년 12월 금호석화 주식을 사들여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최초의 금호가 여성이 됐다.
아직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부친 박찬구 회장, 오빠 박준경 금호석화 상무보에 비해 운신의 폭이 미미하지만 계속해서 금호석화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그만큼 파격이라 할 만하다.
박 상무는 꾸준히 지분을 늘려 금호석유화학 주식 18만2187주(0.54%)를 보유하고 있다. 부친인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지분 6.09%를, 친오빠인 박준경 상무는 6.52%를, 사촌오빠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는 9.10%를 들고 있다.
박 상무는 80년생으로 올해 36세다. 그동안 대우인터내셔널에서 일반 직원으로 근무했고 지난달 말 퇴직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들에 따르면 에너지 및 자원 분야에서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가 3세라는 점을 주위에서 잘 모를 정도로 소탈하고 성실했다는 평이다.
박 상무는 앞서 2012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금호석유화학 보통주 5만6351주(0.18%)를 장내에서 매입, 처음으로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취득했다. 금호가 여성 3세 중 계열사 지분을 취득한 것은 박 상무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먼 친척 중 금호전기의 오너 딸 자녀들이 지분을 매입한 적은 있으나 금호아시아나그룹 직계 자손 중 딸 자녀가 지분을 취득한 것은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금호가의 전통을 깨고 박주형 상무가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한 것은 부친인 박찬구 회장의 평소 지론이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은 평소 능력이 있으면 딸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리벽 넘기 쉽지 않다
그동안 일부 재벌가는 여성의 외부 활동을 제한해왔다. 조용한 내조만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최근 이런 풍속도에 변화가 생겼다. ‘공주’이미지의 재벌가 딸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금녀의 벽'을 허물고 있다. 그 결과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일선에 참여하는 딸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수치상으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80년 42%에서 지난해 49.9%로 증가했다. 반면, 남성은 같은 기간 76%에서 73%로 감소했다. 특히 2010년부터 20대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을 앞지르며 국내 경제에 ‘여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 바람은 대기업의 여성 임원 발탁, 각종 고시에서 여성의 약진,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통령 선출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를 두고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기업 내 남성을 선호하는 사상이 만연하다는 이유에서다.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의 목소리가 큰 기업이 많은 게 사실이다.
또한 재벌가 여성의 경영참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의 경영진 진퇴 배경을 놓고 여성의 경영참여와 후계구도를 짜고 있는 다른 재벌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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