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분석] 박근혜-유승민 ‘맞짱’ 시름깊은 대구민심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대구 아가씨’ 박근혜 대통령과 ‘대구 남자’ 유승민 전 원내대표 간 맞짱은 예상대로 박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6월25일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콕’집어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을 찍은 이후 13일 만에 유승민 사퇴 파문은 종료됐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당대로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그리고 두 인사의 지역구인 대구까지 여론이 둘로 갈라져 깊은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대구민심은 복잡하다. 한 명은 현직 대통령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차기 대통령감으로 애지중지하던 인사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성지이자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유승민 사퇴 파문으로 변화를 넘어 진화를 꿈꾸는 대구민심을 알아봤다.
- 권영진 > 김부겸 > 유승민 뜨거워지는 달구벌
- 미래권력 vs 현재권력 사이 춤추는 TK 지지도
특히 대구 동구을의 경우에는 현수막 전쟁까지 벌어졌다. 유 전 원내대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동구주민이 선택했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님 힘내세요”라고 걸었고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은혜를 모르는 유승민! 즉각 사퇴하라!”는 현수막으로 맞불을 놓았다. 보수의 성지이자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가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순간이었다.
대통령·당·유승민 엇갈린 시각
실제로 6월 25일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 민심은 확연하게 갈렸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조원씨앤아이에서 같은 달 27부터 28일까지 ‘유승민 거취’관련 찬반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대구 경북에서 ‘원내대표 유지’ 답변이 47.3%, ‘사퇴’ 답변은 47.3%로 동률을 보이며 팽팽한 대구 민심을 엿볼 수 있었다. 연령대 응답률을 보면 30, 40대는 각각 67.0%, 60.7%로 ‘원내대표직 유지’ 응답이 높은 반면 60대 이상에서는 53.1%로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유승민 버티기’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대구 경북 여론은 박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갤럽에서 6월 30일부터 7월2일까지 3일간 벌인 전국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 응답의 경우 유승민 거취관련 ‘사퇴’가 46%, ‘반대’가 28%로 사퇴하라는 의견이 무려 18%p이나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버티기’ 10일이 넘어가면서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친박의 전방위 사퇴 압박이 극에 달하고 동시에 동정론이 일면서 대구 경북 지역 사퇴 찬성 응답률이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서 7월6일 조사한 유승민 사퇴여부 관련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사퇴 반대’가 49.4%, ‘찬성’이 35.7%로 13.7%p 반대 여론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대구/경북의 경우를 보면 유 전 원내대표의 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6.6%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40.8%로 4.2%p 차를 보여 근소하게나마 사퇴 쪽 의견이 높게 조사됐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민심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응답자의 찬반여론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사퇴반대’ 응답은 22.8%이고 ‘사퇴찬성’이 62.0%으로 압도적으로 찬성이 높았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90%이상 나오는 대구/경북에서 ‘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36.6%라는 점은 새누리당 지지층 결과와 비교해 상당히 의미있는 결과로 볼 수 있다. 대구/경북의 민심이 당이나 박 대통령 지지도와는 별개로 유 전 원내대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여권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번달 8일 리얼미터가 조사한 ‘여권부문 차기대선 주자 지지도’조사에서다. 전국 19세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위를 차지한 김무성 대표가 19.1%인데, 2위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16.8%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 대표 이후 여권주자 중 1위 자리를 차지해온 김 대표와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다. 유 전 원내대표 다음으로 TK 맹주를 노리고 대구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6.0% 지지를 받아 유 전 원내대표가 무려 10%p이상 앞서고 있다.
박근혜, 유승민 ‘닮아도 너무 닮아~’
대구/경북 민심 역시 전국 민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2.2%를 받은 김 대표가 1위를 차지했지만 유 전 원내대표 역시 21.1%를 받아 1.1%p 차이밖에 나지 않고 있다. 이는 김 대표가 부산경남에서 22.4%를, 유 전 원내대표가 12.8%를 얻은 것과 비교해 차기 TK 맹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결과로는 충청도에서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차기 리더로서 기대감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김 대표가 충청권에서 12.4%를 받은 반면 유 전 원내대표의 경우 36.0%를 받아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이런 결과는 지난 대선에서 충청도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박 대통령과 비슷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급기야 9일날 조사한 여권 차기후보 선호도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김무성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유 전 원내대표가 6월 조사 대비 13.8%p 급등한 19.2%로 김무성 대표에 0.4%p 앞서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대구/경북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구 출신 대통령과 전면전을 하지 말고 같은 지역출신으로 차기 지도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가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사실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의 정치 인생은 대구라는 지역적 동질성 외에도 많이 닮아 있다. 심지어 여권 내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를 ‘여자 박근혜’라고까지 하고 있다.
일단 두 인사는 아버지가 정치인으로 어릴 때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정치적 기반도 같다. 또한 자기 사람을 확실하게 챙기는 보스 기질도 비슷하다. 이번 원내대표 사퇴기자회견문에서 밝혔듯이 ‘원칙주의자’라는 점도 박 대통령을 쏙 빼닮았다. 두 인사 모두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좀처럼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또한 박 대통령의 ‘도덕적 결벽증’ 역시 유 전 원내대표가 닮았다 한 예로 2013년 자신의 보좌관에게 금품 제공 의혹이 일 당시 바로 사직서를 수리하고 직접 사과문을 돌릴 정도로 도덕적 결벽증을 갖고 있다. 특히 2년동안 보좌관 채용도 하지 않다가 최근 채용한 배경에도 이런 경향이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이 밖에도 직접 모든 일을 일일이 챙긴다는 점에서 ‘만기친람’스타일도 비슷하다.
이처럼 현재 권력과 미래권력이 다투는 것을 바라보는 대구/경북의 민심은 착잡하다. 떠나는 현재권력을 성공시켜야 하는 책무와 함께 미래권력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감으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대구에서는 현재 권력에서 미래 권력으로 옮겨가기 위한 대비를 치밀하게 해왔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 6.4 지방선거 대구시장 후보 경선 때였다. 당시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원조 친박격인 서상기, 조원진 의원중 한명이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게 당내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비박에다 정치경력을 서울에서 쌓아온 권영진 후보가 경선에서 후보로 당선돼 대구시장이 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런 저런 해석이 나왔지만 역시 변화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갈망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었다.
또 다른 대구시민들의 변화는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에 대한 지지도에서 나타났다. 2012년 대구 정치 1번지라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4%를 얻는 기염을 토했고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와 대결에서도 40.3%라는 득표율을 받았다. 40%가 넘는 김 전 의원의 득표율은 야권 후보로서 30년 만의 사건이고 야당의 이름을 걸고 출마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장선거에서 주목할 대구 민심의 변화는 20대 총선 출마지역인 수성갑에서 나타났는데 김 전 의원이 51%를 받아 권 시장을 근소하게나마 이겼다는 점이다.
총선 ‘과거’와 ‘미래’ 대구 선택의 기로
대구는 이제 정치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대구 출신 의원의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특히 20대 총선에서 대구는 다시 한번 변화의 정점에 서 있을 공산이 높다. 여당 내 잠룡으로 간주되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대구 민심은 재차 박 대통령이냐 유승민이냐의 선택과 함께 차기 지도자감으로 키울 인물로 야당의 김부겸이냐 여당의 김문수냐를 두고 또 선택해야 할 운명이다. 대구의 선택은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대구 민심의 선택을 보면 과거보다는 미래, 정체보다는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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