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판단 기준…과도한 처벌

논란의 ‘아청법 2조5항’

2015-06-29     조아라 기자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최근 웹툰 ‘1626’이 논란에 휩싸였다. 26세 여자 주인공이 16세 남자 주인공을 성폭행하는 장면이 인터넷 만화사이트 레진코믹스에 게재됐기 때문이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을 제한해 놓았지만 술에 취해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는 장면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창작 작품에 사회 윤리를 접목시키는 것은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의 장면만 놓고는 “19세 관람 제한이라 하더라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저런 장면을 그린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레진코믹스 측은 “남자 주인공은 진짜 16세가 아니라 하이랜더 증후군(성장이 멈추는 희귀병)에 걸린 미성년자로 보이는 성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청법을 둘러싼 논란을 재점화했다. 


합헌 결정…헌재 “명확성 원칙 위반 아니다”
개정안 국회 계류…‘아동·청소년’ 인권보호 뒷전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아청법 2조5항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 합헌 5명 대 위헌 4명의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일반인 입장에서 실제 아동·청소년으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를 의미한다”며 “이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수준의 것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가상의 아청음란물이라도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하는 표현물의 지속적 유포 및 접촉은 아동·청소년의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 태도를 형성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청법 2조5항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표현물이 성적 행위를 하는 영상 등을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배포할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소지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형법임에도 불구
과도한 확대해석 용인
 
그간 이 조항은 ‘인식’이라는 문구가 문제였다. 성인인데 외모 상 미성년자로 보이는 경우에는 판단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가상 표현물에 등장하는 어린 인물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논란거리였다. 또한 형법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확대해석을 용인하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개정된 아청법에 따르면 성인이 교복을 입고 미성년자를 연기한 음란물도 아청법에 위반된다. 실사영상과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등도 포함된다. 처벌대상 유형도 ▲애니, 만화 등 모든 영상이나 화상이 나오는 장르 ▲웹하드, 토렌트 등으로 음란물을 직접 업로드한 경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음란물을 공유한 유형 ▲음란물 공유 카페에 가입한 유형으로 광범위하다.
 
과도한 처벌도 문제로 지적됐다. 아청법 위반으로 적발 시 20년간 신상정보등록 대상이 돼 경찰의 관리를 받는다. 심한 경우 신상정보가 주위에 고지되기도 한다. 또 6개월 마다 경찰관과 면담해 신상정보 변경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국가시험 응시 자격 박탈과 10년간 교육, 의료기관 취업도 제한된다. 
 
‘마사토끼’라는 필명을 쓰는 만화가 양창호는 지난해 11월 P2P사이트를 이용하다 아청법에 적발된 사실을 단편만화로 그려 자신의 블로그에 업데이트했다. 아청법에 대한 단속과 부조리함, 약식기소로 이어지는 과정, 그 이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놔 누리꾼들의 호평을 받았다. 양씨는 범죄를 희화한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스스로 불안감을 발산하기 위해 그렸다”고 설명했다.    
 
모호한 판단기준을 바로잡고자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2013년 2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제2조 제5항의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에서 ‘실존하는 아동·청소년으로’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청법이 성범죄로부터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가상의 아동·청소년 캐릭터가 등장하는 음란물에 대한 가중처벌은 실존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없어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판결로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질 벗어난 법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 
 
아청법은 원래 실제 아동,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만 단속했다. 포르노를 촬영함으로써 침해되는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법익으로 뒀다. 만화, 애니매이션 등 가상의 표현물은 실재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음란물로 처벌됐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엔 실제 아동 포르노와 가상 창작물이 함께 묶여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조항으로 인해 실제 나이와는 관계없이 외관상으로만 연령을 판단하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지적이 크다. 이는 성인이 10대로 보일 여지가 있다면 처벌받을 수 있고, 반대로 청소년이 성인처럼 보일 시 처벌을 피해갈 여지가 될 수 있어 논란이 됐다. 일부에서는 아청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헌재와는 달리 대법원은 지난해 9월 ‘단순히 교복을 입었다고 해서 명백하게 청소년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외관상 의심이 여지없이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때만 아동·청소년 이용음란물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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