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버린 무정한 父 늘어가는 국제 사생아

무책임한 한국인 아버지?

2015-06-22     조아라 기자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최근 법원은 코피노(코리안+필리피노)에 대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놓았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8일 필리핀 여성 A씨가 한국남성 B씨를 상대로 낸 친자 확인 및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아이가 친자가 맞다”며 “성년이 될 때까지 월 3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결에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는 여론이 줄을 이었다. 자신의 핏줄을 버린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지탄이 쏟아졌다.  

코피노·라이따이한·라이한궉…명칭도 다양   
사생아 근본 해결책…“성매매·착취 근절”
 
코피노는 대표적인 한국인 관련 사생아다. 대략 1만~3만 명 사이로 추산된다. 코피노는 1990년대부터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과 사업, 유학 등으로 필리핀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이 현지 여성과 무책임하게 성관계를 맺으면서 생겨났다. 법으로 성매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해도 되는 일로 치부하는 안일함, 소위 ‘영계문화’라며 어린 여성을 찾는 문화 등이 코피노 확산의 원인이다. 
 
더불어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특성상 낙태 금지, 낙후된 성관념과 성상품화, 피임약과 피임도구의 저조한 판매 등이 맞물리면서 코피노 수가 늘어났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성매매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국, 미국, 일본인들이 아이를 낳아 필리핀에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미국, 일본에서는 경제적인 책임이라도 지려는 것에 비해 한국 남성들은 그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필리핀 여성과의 교제 시 본인의 인적사항을 감추거나 거짓정보를 알려주는 한국 남성들로 인해 소송이나 친부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든 게 현실이다. 빈곤 가정에서 태어난 코피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한 경우 미성년자 코피노가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례도 있다. 
 
베트남에도 한국인 사생아가 있다. 베트남전 당시 파월 한국군 혹은 한국인 노무자와 현지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이다. 라이따이한 1세대는 베트남 현지에 5000여명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정상화되고, 베트남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신(新) 라이따이한도 등장했다. 1990년대부터 한국남성이 현지 여성과 동거, 성매매 관광 등으로 사생아를 낳으면서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신 라이따이한이 베트남 현지에 얼마나 있는지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도 한국인 사생아가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1984년 라이베리아 몬로비아 도시 기반 공사를 위해 아프리카로 진출했다. 이후 현지 여성에게서 한국인 사생아가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 남성들은 생모의 임신사실을 알고 대부분 한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1달러 정도에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도 드물지 않았다. 5~6년 전 이들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이후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최근엔 한국산 라이한궉도 등장했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이주여성들이 가난, 남편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자식을 친정으로 보내는 경우다. 베트남에서 한국인 사생아로 자라는 아이들은 정규 교육 같은 기본적인 혜택도 못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경제력 없는 생모
친부 찾기 어려워
 
대다수 한국인 사생아들은 경제력 없는 생모로 인해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친부를 찾아 양육비를 지원받으려 해도 어려움은 산적해 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미미하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들도 사생아 친부 찾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친자 확인 소송 승소, 코피노 양육비 지원 등 긍정적인 판결을 받을 수 있던 것도 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남성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생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코피노 생부 찾기 캠페인을 벌인 ECPAT Korea 이현숙 공동대표는 “영문자 이름과 정확하지 않은 주소로도 필리핀에서는 혼인신고를 할 수 있어 아이 아빠를 찾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은 약 20년 전부터 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피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왔다. 필리핀 내 자피노는 약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아버지 찾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양육비를 지원했다. 또 출입국 관리법을 개정해 해외 혼혈아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관문도 낮췄다. 국적법을 개정해 부모 중 한 명의 확인으로도 일본 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정부는 2006년 라이따이한 및 코피노 등이 한국 국적 취득을 원할 경우, 한국인 아버지가 친자관계 확인을 거부하더라도 사진 등 객관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있으면 국적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검토 단계에만 머물 뿐 이들을 위한 정부 지원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현숙 대표는 법원의 긍정적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히며 “이런 사례가 자꾸 생기면 해외에 나가서 좀 더 신중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인 사생아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성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을 도구로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성매매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이고, 성적 착취는 근절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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