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입장에선 김문수의 등장이 오히려 기회”
대구 수성갑 전투가 벌어지면…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지난 5월 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긴급 면담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지난 해 ‘야인’(野人) 생활을 하던 김 전 지사에게 당의 보수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겨 다시 정치권으로 이끌어준 바 있다. 면담 자리에서 김 전 지사는 마치 통보하듯이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일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정색을 했다. 그냥 “열심히 하세요”라고만 말했다. 김 전 지사가 돌아간 뒤 김 대표는 한 측근에게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토로했다고 한다. 이 측근은 필자에게 “김 대표는 당의 소중한 자원들인 김문수, 오세훈, 정몽준 등을 내년 총선 때 수도권의 어려운 지역에 투입해 승부수를 던지려고 했다. 그런데 김문수가 여당의 안방인 대구로 가겠다고 하니 무척 속이 상한 것 같더라”고 귀띔했다.
김 전 지사는 김 대표가 인사치레로 “열심히 하시라”고 한 말을 수성갑 출마에 OK 사인을 준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대구 정치권 인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출마 뜻을 전했다. 5월 29일엔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의 새누리당 당원협의회를 찾아 당직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김 전 지사의 돌발 출마선언에 대구 정치권의 리더인 유 원내대표도 당황해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한 측근은 “수성갑의 이한구 의원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은 나름대로 ‘김부겸 대항마’를 찾고 있었다. 기성 정치인이 아닌 참신한 인물을 찾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김문수가 셀프 등장하는 바람에 난감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대구 수성갑은 내년 총선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모을 지역이다. 새누리당의 안방인 TK(대구·경북)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바로 김부겸 전 의원이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 의원을 지낸 뒤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고향인 대구로 지역구를 옮긴 김 전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 때 야당 간판으로 수성갑에 출마, 40.4%의 고득점을 했다. 승리는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의 몫이었지만 지역 여당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대구시장선거에도 출마, 또다시 40.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수성갑 지역구 유권자들은 50% 가까운 표를 몰아줬다.
만일 김 전 의원이 대구에서 유일한 야당 국회의원이 되면 단번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문재인-안철수-박원순의 3룡 구도가 4룡 구도로 바뀌게 된다.
김 전 의원 입장에선 ‘김문수’의 등장이 오히려 기회다. 새누리당의 다른 수성갑 공천 희망자들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비중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기면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
반면, 여권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김 전 지사를 꺾으면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문수 전 지사는 왜 김부겸이 버티고 있는 수성갑을 택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지역적 기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전 지사는 경북 영천이 고향으로 대구 경북고를 나왔지만 정치는 줄곧 경기도에서 했다.
그렇다고 경기도를 지역적 기반으로 삼기엔 도민들의 결집력이 영남이나 호남, 충청보다 약하다. 이인제·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도 대권도전에 나섰지만 지역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패한 바 있다.
결국 김 전 지사는 지난해 도지사직을 마친 뒤 대구에서 택시운전을 하며 민심탐방을 하는 등 ‘친 TK’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귀향 정치가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1차 관문은 새누리당 공천이다. 현재 수성갑에선 강은희 의원(비례대표), 정순천 대구시의회 부의장, 이덕영 하양중앙내과 대표원장, 임재화 법무법인 반석 대표변호사 등이 뛰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김 전 지사의 ‘낙하산’ 이미지가 타격이 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더라도 막강한 상대인 김부겸 전 의원이 기다리고 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막판에 결집하면 김 전 지사가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광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여당의 텃밭에서 당선되는 건 당연한 결과라는 여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김 전 지사는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보다는 단순히 의원 배지를 한 번 더 다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