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지/금] ‘메르스 나홀로족’
“부모가 00회사 다닌다고… 친구들이 슬슬 피해”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재계에 ‘메르스 나홀로족’이 속출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한 건물에 많은 인원이 밀접한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일수록 혹시 모를 전염이 두려워 가족과 헤어져 생활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으로 파견 나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일부 직원들은 귀국휴가를 미루며 ‘메르스’ 피해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중동 파견 직원 국내복귀 미뤄져…귀국 일정도 불투명
대기업 방역에 ‘총력’…병원근로자 고충 이해 분위기 형성
[사례1] 대형 병원 수간호사로 일하는 A씨는 누구보다 바쁜 일상을 보낸다. 확진자가 입원해 있어 불안해 하면서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집에 못 간 지 4주가 넘었다.
병원에서 못 가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가족에게 문제가 생길까 조심스러워 병원 인근에 숙소를 정해 지내고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다니는 딸 전화에 마음이 아프다. 확진자가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딸 친구들이 “엄마가 oo다녀. 너랑 안 놀아”라고 했다는 것
[사례2] 경기도 부천에 사는 직장인 B씨는 6월 초 부인과 2살배기 아들을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처가댁으로 내려보냈다. 부천지역에 메르스 확장자가 나타나면서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B씨는 “아내가 불안해 하는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이제 막 두살 된 아들이 메르스에 걸릴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B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나홀로족 생활을 하게 됐다.
재계에 메르스 확산 공포가 고조되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감염병에 취약한 노약자, 어린이, 호흡기 질환 보유자 등이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이 같은 현상이 뚜렷하다.
최근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기업에선 집에 들어가지 않고 회사 주변에 숙소를 잡아 생활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일요서울>과 만난 C(38)씨는 “메르스 확진 동료를 탓할 수도 없고 본인도 전염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불안감에 집에 가기는 꺼려진다”며 “한동안 이곳(모텔)에 머물 생각이다”고 전했다.
1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가 14일 발표한 메르스 추가확진자 7명 가운데 한 명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해당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기 전날인 13일부터 같은 부서 직원 등 업무상 접촉이 많은 직원을 대상으로 1차 자택격리 조치를 취한 것은 물론, 확진 판정이 내려진 14일부터는 해당 직원과 접촉 가능성이 있는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자택격리 조치를 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쌍용차도 해당 직원(평택 공장 근무)을 격리조치하고, 추가 감염 피해를 막기 위해 대응 수위를 높였다.
업무특성 상 중동에 파견나간 직원이 있는 회사에선 파견근로자의 국내복귀 시기를 미루며 피해 확산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등 일부 건설사들은 중동 지역에서 근무 중인 파견 직원들에게 “당분간 한국 귀국을 자제해달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동에서 파견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보통 4개월에 한번씩 휴가를 내고 한국에 들어온다. 가장 많이 한국을 찾는 시기는 휴가철인 7~8월이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잠시 귀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휴가를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란에서 근무하는 D씨는 “가족이 보고 싶어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던 동료들이 많았는데 요즘 들어 한국 가지 말자는 얘기가 나온다”며 “오히려 한국에 갔다가 다시 중동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격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현대건설은 중동 건설 현장과 지사에 메르스 예방수칙과 대응지침을 임직원들에게 전파시키고 의심 환자 유무 파악을 지시했다.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건설 현장 인근의 추천 병원 리스트를 만들어 전달하고 의심 환자 발생 시에는 즉시 회사에 보고토록 했다.
2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지역 8개국에 나가 있는 국내 건설업체 직원 수는 총 6972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우디가 32개 건설업체 총 3912명으로 가장 많다. 여름휴가를 앞당겨 쓰는 방식으로 가족 전체가 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내원환자 모른 척?
그런 의사는 없다
병원 근무자 하소연 글이 포털에 등장하면서 이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 병원(삼성병원)이 갑자기 모든 사건의 근원지로 몰리고 있다’는 글에서 작성자는 “해당 병원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어 이 글이 공명정대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병원 한복판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 상당부분 왜곡, 과장되었다는 사실은 꼭 알려야 할 것 같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성자는 “작은 병원에서 진단이 지체되고 위급해지면 사람들은 무작정 큰 병원 응급실로 내원한다”며 “큰 병원 선호 사상 때문에 내원 환자수가 많다보니 입원병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외래를 보다 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가 발생해도 병실이 부족해 응급실로 가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다”는 내부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메르스 1번 환자와 14번, 35번 환자의 내원 경로를 통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1번 환자가 내원했을 때 문진을 했던 2년차 내과 전공의는 바레인 거주 경험을 파악하고, 그걸 본 담당교수는 CT소견과 임상증상, 중동거주력 등을 토대로 작년 북동지역 환경정의 네트워크(NEJN)에 실린 메르스를 기억해냈다.
첫 번째 의심진단명으로 리스트를 작성해 환자를 바로 격리시켰고 확진 판정 후에는 관련 의료진을 격리시키며 조기진화에 나섰다.
문제는 14번 환자와 35번 환자. 14번 환자가 내원했을 당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제시한 메르스 선별검사지에 부합하지 않았고 진료한 의사도 14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었던 병원에 노출됐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응급실에 이틀간이나 무방비로 노출됐다. 이후 응급실과 감염관리실은 대대적 비상 업무에 돌입했고 순식간에 응급실 소독 및 폐쇄, 주변 환자들 일인실로 이동시키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틀의 시간은 꽤 길었던지라 감염자들을 양산하였고 지금 뭇매를 맡는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작성자는 “35번 환자는 저도 아는 의사인데 14번 환자가 응급실 내원 시 평소와 같이 응급실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며 “이후 증상 발생 시 시행한 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오면서 난데없이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게 되어버렸다”며 논란의 중심에 선 것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작성자는 “의사가 내원한 환자를 모른 척해야 할까요” 라는 반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무턱대고 의료진을 욕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병 고치러 갔다가 병 얻고 왔다는 표현을 자제하자”는 글에 공감을 한다는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