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퍼진 ‘메르스 괴담’
‘자가격리’A 비서관 “공무원들도 벨 누르고 도망”
76번 환자 발생한 병원 찾은 비서관 결국…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지금 여의도는 메르스 괴담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괴담의 진원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A 의원 보좌진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 같은 괴담으로 인해 국회에서 근무하는 인사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메르스 발생 지역 의원들 역시 스스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다. 여의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메르스 괴담’에 대해 살펴봤다.
메르스 괴담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국회 의원회관이다. 의원회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민원인과 공무원 수천 명이 북적인다. 그렇다고 민원인과의 접촉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좌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는 국회에서 일을 하다 보니 메르스 같은 감염병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메르스 카더라 나돌아
이 가운데 최근 새누리당 A 의원실 비서관이 ‘메르스 모니터 대상자’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A 비서관은 2주간 자가격리 조치를 받았다. 보건당국은 A 비서관이 근무하는 의원실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려줬다고 한다.
A 비서관이 자가격리 조치를 받은 것은 최근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서울 강동 경희대 병원을 방문해서였다. A 비서관은 “76번 환자가 지난 5~6일 경희대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을 방문했었다”며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오면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에서 자가격리 대상자로 지목돼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호물품 등을 전달받을 때 공무원들이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형국”이라며 “자가격리 대상자에서 해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조심해야 할 판이다. 소문 많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메르스 모니터 대상자’로 분류됐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저런 소문이 나돌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메르스 모니터 대상자가 A 비서관 이외에도 여럿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4시쯤 경상도에 지역구를 둔 B 의원실 비서관이 메르스 증상을 보여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문이 급속도록 퍼졌다.
특히 “B 비서관이 메르스 증상인 고열과 복통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B 비서관이 근무하고 있는 의원회관 9층 전체에 긴급 대피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등의 내용도 카카오톡을 통해 전파됐다.
문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메르스 괴담’으로 인해 오히려 해당 의원실에 ‘확인전화’가 빗발쳤던 점이다. B 비서관은 단순 복통에 불과했는데도 ‘메르스 의심’ 소문으로 곤욕을 치렀다. 급기야 해당 비서관은 국회 보좌진과 국회 출입기자에게 해명성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금일 국회의원회관에 앰뷸런스가 출동해 메르스 괴담이 돌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제가 극심한 복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CT상 아무런 이상 소견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도 ‘메르스 괴담’ 피해자가 됐다.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말이 나돌았던 것이다. 유 의원은 지난달 29일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시민을 국가격리병동으로 이송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메르스 치료 병원인 평택성모병원을 방문했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평택성모병원을 공개하면서 지난달 15~29일 내원한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유 의원도 메르스 환자로 오해를 사게 됐던 것이다. 심지어 유 의원이 ‘메르스 자가격리 대상자로 분류됐음에도 오전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 약 30명이 참석한 당 회의에 들어갔다'는 내용의 소문도 돌았다.
이에 유 의원은 메르스 관련 신고 대상자임을 알고 자발적으로 전화를 걸어 ‘자가격리 대상자’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능동감시대상자’로 분류돼 격리조치 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과 하루 두 차례 전화 확인을 통해 문진을 받으면 되는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는 메르스를 진단하기 위한 열감지기를 설치했다. 이 역시 ‘메르스 괴담’으로 번지고 말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장더장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11일 방한하는 것과 연결시켜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장더장이 메르스를 걱정해 설치를 요구했다”는 게 소문의 주된 골자.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방역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지만 갖가지 ‘카더라식 소문’이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기피 대상’ 의원까지 등장
그래서일까. 여러 사람과 대면 접촉, 악수 등을 하고 난 뒤에는 손 소독제로 손을 씻는다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차 내부나 주머니에 손 소독제를 구비하고 다니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는 메르스 발생 지역구 의원들과 접촉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거나 ‘기피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의원들은 지역구를 내려가더라도 신체접촉을 피하려 하고 있다. 일례로 전남 순천·곡성이 지역구인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막 서울에서 (메르스)청정 지역구로 내려왔는데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인다”며 “악수를 청해 오면 양해를 구하고 눈인사로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때문이다.
메르스 공포가 갈수록 확산되면서 국회 내 행사도 대부분 취소되고 있다, 지난 8일 새정치연합 신기남 의원은 ‘기본권 개헌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취소했다. 여야 대표가 메르스 대응에 초당적 협력을 합의했고, 당분간은 대규모 행사 자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행사 취소를 결정했다는 게 신 의원의 설명이다.
새정치연합 김기준 의원은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산다는 것’,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도 ‘고위 공직자의 재산형성 과정 검증, 필요성과 방향’ 등의 행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취소했다.
이 외에도 지난 4~5일 강원도 홍천에서 1박2일로 열릴 예정이었던 새정치연합 전국여성위원회 발대식 겸 워크숍도 메르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잠정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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