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독주 끝장낸다
손학규ㆍ안철수ㆍ김부겸 3각편대 띄워
당내 세력 없는 3인 개별접촉…先합작, 後경쟁 구도
안철수의 문재인과 거리 두기는 제3의 길 찾는 중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문재인의 독주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 같다. 그건 너무나 순진한 ‘문재인스러운 환상’이다. 야당 정치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당직자는 ‘문재인 한계론’을 제기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한 대단한 정치이력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정치 초년병’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쓴소리다. 그는 문재인 대표가 야심차게 출범시킨 ‘김상곤 위원장 체제’ 혁신위원회의 위원 인선 문제를 꼬집었다.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계파를 초월한 혁신위를 구성한다고 해 놓고 실제론 ‘위장된 친노’들로 채웠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 최인호 부산 사하갑 지역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조 교수가 친노라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최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비서관이었고,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부대변인, 국내언론비서관을 지냈다. 나머지 위원들도 노무현정신 신봉자가 대부분이다. 당을 혁신하겠다는 게 아니라 ‘비노’를 혁신하겠다는 것처럼 비친다.”
친노 프레임에 갇힌 文대표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는 문 대표에 대한 비노계의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박지원 의원은 “야권에 문재인만 있는 건 아니다. 차기 대권에 도전할 대안은 무궁무진하다. 인재가 많다”고 일갈했다. 박주선 의원은 “혁신위가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어려운 단어까지 썼는데, 당의 가장 썩고 곪아터진 부분은 친노패권”이라며 “문 대표의 사퇴만이 육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이 언급한 ‘대안’ ‘인재’는 누구일까. 최근 당에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안철수 의원, 김부겸 전 의원에 주목한다.
손 전 지사는 지난 해 7·30 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에서 칩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계복귀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많다. 지난번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한 이후 문재인 대표체제가 흔들리자 ‘손학규 등장론’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손 전 지사는 복귀설이 가라앉지 않자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했다. 앞서 지인의 상가에 들러서는 “정치욕심이 곰팡이처럼 피어오른다. 산(山) 생활로 닦아내고 있다”고도 했다. 정가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산생활’ 보다는 ‘곰팡이론’에 더 무게를 두고 손 전 지사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문재인 대표 체제가 흔들리는 시점에 맞춰 외부 노출 빈도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안철수 의원의 ‘홀로서기’도 예사롭지 않다. 의사 출신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에 소속돼 있는 안 의원은 ‘메르스 정국’에서 부쩍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부실한 메르스 대책을 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공격수’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는 “과연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거나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한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또 재연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다른 야당 의원들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집중 공격하는데 비해 안 의원은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함으로써 자신을 대통령과 동격의 위치에 스스로 올리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최근 전국적인 인물로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그가 새로 선택한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여권의 차기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도전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보수의 본향인 대구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출마해도 (내가)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당선된다면 지역주의를 뛰어넘자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고, 김 전 지사가 당선된다면 TK 출신 대권후보를 선택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를 ‘대권후보’로 평가하면서 그에 맞설 자신 역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승부사 기질이 묻어난 말이다.
김부겸-김문수 맞대결 관심
이처럼 손학규·안철수·김부겸 세 사람은 정가에서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힐 뿐 아니라 본인들도 그런 가능성을 대놓고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3인 모두 한계가 있다. 야당의 거대 계파인 친노계를 이끌고 있는 문 대표에 비해서 당내 세력이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3각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길 밖에 없다. 당내 비노계를 규합해 친노 세력에 맞서야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비노계의 뜻있는 인사들은 ‘문재인 대세론’에 대항하기 위해선 안티 문재인 세력의 각자도생으론 승산이 없다고 본다. ‘비노 연합 세력’이 필요하며, 그 중에서도 특정 계층, 지역에서 지분을 갖고 있는 당내 유력 비노계가 힘을 합쳐야 대응력이 생긴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음은 황태순 정치평론가가 예상하는 ‘손학규·안철수·김부겸 3각 편대 구축설’이다.
“이번 혁신위 인선을 바라보는 비노 진영의 시각은 싸늘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냉소가 주류를 이룬다. 독선과 폐쇄성 그리고 막연한 우월의식과 뻔뻔함의 ‘친노 본색’이 어디 가겠느냐는 생각들이다. 친노와 비노는 결국 각자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와 같은 로드맵의 현실화를 가정할 때 비노 진영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스타군단’이다. 호남정당의 틀을 뛰어넘는 전국정당의 면모, 그리고 야권지지층에겐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는 대선주자들이 필요하다. 손학규(수도권·온건중도)-안철수(PK·청년멘토)-김부겸(TK·원조 운동권)의 3각편대는 그런 두 가지 필요성을 상당 부분 충족시킬 수 있는 유력한 카드다.”
실제로 손·안·김 3각 연대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손 전 지사는 지난 2일 대구 수성구에서 열린 한국서화평생교육연구원 개원식에 참석해 김 전 의원과 조우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정치학과 선후배 사이일 뿐 아니라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손 전 지사가 후보로 나섰을 때 김 전 의원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강진 토굴에서 생활하고 있는 손 전 지사는 “한국서화평생연구원 원장과의 개인 인연으로 행사에 갔다”고 했지만,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고도 볼 수 있는 행보였다. 이 자리서 손 전 지사는 축사도 했다. 그는 “정치도 안하고 있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으니 어색하다. 정계은퇴 선언 후 공식행사는 두 번째 참석인데,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부겸 전 의원 등 여러분이 참석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 등이 참석해서 깜짝 놀랐다면 바로 강진 토굴로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주요 참석자들과 저녁을 같이 했다. 김 전 의원은 “오늘 손 전 대표가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행사장을 찾았을 뿐, 정치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며 “격려의 말씀을 전하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자리서 손 전 지사는 김 전 의원에게 “어려운 곳에서 고생이 많다. 멀리서나마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손 전 지사의 강진 토굴에는 요즘 야권 인사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안 의원이나 김 전 의원이 찾아갔다는 소식은 없지만 야권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인사들이 꾸준히 토굴을 찾아 ‘안티 문재인 연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야권의 한 인사는 “야당 사람들이 손 전 지사를 찾아가 하는 말은 뻔한 것 아니냐. 지금의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정권탈환이 어려우니 비문(非文)이 연합해 국민들에게 새 희망을 주자는 얘기들을 나눌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안 의원과 김 전 의원은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정국과 관련해 긴밀한 의견을 교환하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연말 안철수-김부겸-노회찬 3각 비밀모임이 있었다는 말도 나왔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세 사람이 함께 만난 적은 없지만 개별적으로 접촉한 사실은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정가에선 문 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문재인 체제’가 더욱 굳건해질 경우 손학규-안철수-김부겸 3각 편대에 참여해 4각 편대를 구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4인 모두 차기 대권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선(先)연대 후(後)경쟁’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17년 야권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들이 연합군을 형성해 문재인 대표에 대항한 뒤 문 대표가 지쳐 제 풀에 나가떨어지면 4인 사이의 새로운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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