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대규모 사정한파 몰아친다
2004-08-18 이목희 언론인
장마 뒤 무더위로 검찰이 더위를 먹은 듯 맥을 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겉과 속은 판이하게 다른 법. 검찰 내부의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마치 국지성강우처럼 특정 지역에 엄청난 비를 뿌릴 태세다. 검찰이 준비중인 ‘국지성강우’는 다름아닌 대대적인 사정이다. 사정이 몰아칠 분야는 극히 한정적이다.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이 그 대상이다. 이미 검찰은 대사정을 위해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내사를 통해 당장 큰 비를 몰고 올 비구름을 형성해 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비를 뿌리는 일이다. 검찰이 준비중인 ‘국지성강우형’ 사정 대상은 언론과 공사, 그리고 군이다. 앞서 말한대로 검찰은 사정 대상기관에 대한 면밀한 내사를 진행 중이란 게 검찰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같은 검찰의 움직임에 대해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도 “사회 주요 기관에 대한 사정예고는 이미 각 루트를 통해 전해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관계자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사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같은 대사정은 집권당의 개혁 프로젝트와 맥을 같이 한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뿐 아니라 청와대도 사회 각 분야의 개혁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 청와대에선 이미 공사부분의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고, 열린우리당에선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완결할 사정바람이 사회전체에 몰아칠 것이라고 예상한다.현재 진행중인 사정 프로젝트의 시기는 9월말 경이다. 추석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 대한 사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다는 의지다.
물론 이같은 사정시기는 정국에 별다른 변수가 나타나지 않아야 가능하다. 중대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사정시기는 적절히 조절될 수 있다는 게 정통한 관계자의 말이다. 사정 프로젝트는 크게 세분야에서 진행된다. 1단계는 공사에 대한 사정이고, 2단계는 언론 및 법조비리 사정이다. 마지막 3단계는 군비리 청산과 문민화 작업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중인 사정 프로젝트는 공사비리 사정, 언론 및 법조비리 사정, 군비리 청산 및 문민화 작업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발이 적을 곳으로부터 사정을 시작해서 최후엔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는 곳으로 사정의 포인트를 옮기겠다는 전략이다. 공사 사정과 관련, 이미 검찰이 광범위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주변에서는 “송광수 검찰총장이 공기업이란 말을 하지 않고 공공기업이라고 말하는 점으로 미뤄볼 때 사정의 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청와대 정찬용 대통령 인사수석은 지난 5월 말 “어지간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했다. 사실상 국정쇄신 차원에서 공기업·산하기관장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민·형사상 별 문제가 없으면 임기를 보장해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이 바꾸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이 때부터 공사에 대한 사정 가능성은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때마침 검찰도 공사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2단계 사정의 핵심은 언론과 법조비리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사안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언론개혁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사의 반발을 살 수 있고, 법조비리 또한 사정기관 내부의 반발이 우려돼 그야말로 전투적인 자세로 사정작업에 착수해야만 한다. 언론개혁은 강제성을 띤 광고압력, 사이비 기자 척결, 법 테두리를 벗어난 경품제공 등이 사정의 포인트다.
특히 경기침체에 따른 광고시장의 악화로 각 언론사들이 사활을 걸고 강제성 광고를 유치하는데 혈안이어서 사정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일부 언론사들은 사정한파와 더불어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또한 공중파 방송 한곳과 케이블 방송사 3곳이 내사를 통해 걸렸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법조비리 수사도 사정의 핵심이다. 그동안 검찰 주변에 줄기차게 나돌았던 법조비리가 실제 사정의 주요 부분으로 다뤄질 경우, 검찰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어서 더욱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법조비리 사정과 관련,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퇴진문제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강 전장관의 ‘경질’은 ‘예외’였다. 사실 강 전장관의 교체를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관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았고, 업무에서도 별 탈 없이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의 전격 교체는 ‘충격’ 그 자체였다.
강 전장관의 전격 교체문제를 법무비리 사정과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 장악에 문제를 노출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으로 법조비리를 사정하는데 한계를 느껴 교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검찰을 장악하고 법조비리 사정을 지휘할 사람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분석이다. 3단계인 군비리 척결과 군의 문민화 작업도 관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군 문민화는 김영삼 전대통령 때부터 추진했던 사안이다. 김 전대통령은 ‘하나회’ 척결이란 명분 아래 사정의 칼을 휘둘렀지만,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군의 반발을 예상, ‘하나회’ 척결에 만족하고 진정한 군의 문민화는 뒤로 미뤘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소수정권의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군 개혁은 손도 대지 못했다.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군의 문민화를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란 게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군 비리 척결을 계기로 진정한 군의 문민화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7·14 서해 NLL사건’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군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군 관계자들의 반발이 하도 거세 국방부 장관만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는 것이다. 군 문민화 작업의 첫 단추는 국방부 장관 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의 귀띔이다. 육군 출신이 아닌 해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 임명된 데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신임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해군사관학교 20기 출신이다. 해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 된 것은 국방부 역사상 처음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육군 출신이 아닌 해군 출신 국방부 장관 임명은 결국 민간인 출신 장관을 임명하기 위한 신호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