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전기공사 입찰비리 ‘막전막후’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전자 입찰 시스템을 관리하는 외주 업체 파견 직원들이 입찰 정보를 알려주고 공사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같은 행위가 10년 동안이나 지속됐는데 한전은 전혀 모르고 있어 관리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입찰비리는 심각한 부실공사로 이어져 국민의 생활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공사 부실·국민 안전 위협…관리시스템 부재
사측 “올초 이상 징후 포착 후 검찰조사 적극 협조”
광주지방검찰청 특수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지난달 21일 ‘한전 전기공사 입찰비리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한전 전자입찰시스템 서버에 접속, 공사 낙찰가를 알아내거나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공사업체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한 뒤 해당 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아 챙겨온 혐의(배임수재 등)로 박모(40)씨 등 한전KDN 파견업체 전·현직 직원 4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공사업체로 수사를 확대해 총 23명을 구속 기소, 3명 불구속 달아난 공사업자 1명을 수배했다.
박씨 등 4명은 2005년 9월께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한전KDN 전산입찰시스템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법 낙찰을 주도, 지난 10년간 공사업자들로부터 134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직원 주씨 등은 같은 기간 불법 낙찰에 참여할 공사업체를 모집하는가 하면 낙찰 대가로 받은 금품을 박씨 등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불법 낙찰공사는 전국에 걸쳐 83개 전기공사업체 총 133건(계약금액 기준 2709억 원, 수금액 1993억 원 상당), 입찰 경쟁률은 최고 5736대1, 개별 계약금액은 최고 77억 원에 달했다.
한전의 전자입찰시스템을 관리하는 협력업체 직원 박씨 등은 서버에 접속해 낙찰 하한가를 알아내거나 조작하는 방법으로 특정업체가 공사를 낙찰 받을 수 있도록 한 뒤 대가로 공사 금액의 1~10%를 받아 챙겼다.
낙찰가를 조작하고 외부에서도 한전 입찰시스템 서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범행에 이용했지만 한전은 이를 알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 등의 범행 수법은 더욱 과감해졌다.
전기공사업체를 인수한 뒤 시스템 조작 등을 통해 직접 공사를 낙찰받기도 했다. 한전KDN에 파견된 기간이 끝나 원래 회사로 복귀하거나 퇴사할 때는 범행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후임자를 물색해 직접 앉히기도 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챙긴 돈으로 박씨 등은 고급 아파트와 외제차를 구입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10년 동안 이들이 구입한 오피스텔만 35채에 달했다.
파견업체 직원 정모(34)씨는 집 대형 금고에 5만 원권 지폐 묶음 100여 개, 4억1000여만 원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직원 이모(39)씨의 사무실에서는 수백 장의 현금 띠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을 붙잡은 검찰조차 현금으로 받아 관리해 온 뒷돈 규모에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들이 거액의 입찰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한전의 허술한 관리시스템 때문이었다.
검찰 한 관계자는 “박씨 등의 범행이 1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한전KDN에 파견된 직원이 퇴사할 경우 전임자의 추천만으로도 후임자가 채용될 수 있는 관리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입찰비리로 인해 기술력이 있고, 성실하게 경영하는 선량한 전기공사업체들은 대거 탈락하고 부당업체들이 낙찰 받아 시공하거나 부실 하청업체들이 공사를 시공하게 됐다.
아울러 입찰조작, 불법 하도급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공사를 시공한 업체들은 공사금액 대비 20~30%를 입찰조작 알선 하도급 대가로 부담했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부실공사로 국민의 생활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선량한 공사업체 직원들은 일거리가 없어 실직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한전은 검찰의 중간발표가 있던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다. 또 재위탁업체 작업자의 시스템 접근을 차단하는 등 현행 전산입찰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손보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수사결과에 따라 한전KDN과 KDN 재위탁업체 등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전은 다만 “입찰시스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KDN 재위탁업체 작업자의 작업 내용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한 당일인 지난 1월 30일 광주지검에 수사의뢰를 했다”며 “이후 전산입찰시스템 삭제 의심 프로그램 복원 등 검찰의 관련 수사에 적극 협조해 왔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 같은 비리를 막기 위해 ‘클린피드백을 통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나선다. 이를 위해 법무부·대검에서 중점 주친하고 있는 ‘클린피드백시스템(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점과 관련 기관에 공유해 부패유발 관행 단절)’을 지역 최초로 도입해 한전·지자체·전기공사협회와 협의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기관별로 시행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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