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6주기] 폭탄 던진 노건호
친노-친문 ‘운명’을 걸다
노건호씨 발언 후폭풍…친노 원외 움직임 심상찮다
호남-동교동계 물갈이 통해 문재인 대선 후보 만들기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계파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노건호씨의 발언이 친노와 비노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심지어 친노 지지자들이 비노계 인사들을 향해 맹비난했다.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비노계에선 ‘친노 핵심 작품’으로, ‘문재인 대표, 이해찬 의원과의 교감 속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친노 진영에서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씨의 발언을 기점으로 친노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종의 ‘친노 부활’에 운명을 걸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3일 정치권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의 발언이 단연 ‘톱뉴스’였다. 노씨는 추도식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반성도 안 했다”며 “국가의 최고 기밀인 정상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 뿌리고, 국가 권력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세우면서,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가의 기본 질서를 흔든다”고도 했다.
친노 지지자
“노무현 정신”
정치권에선 노씨의 발언 이후 친노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당시 현장에서 야당 일부 인사들은 물론 친노 지지자들도 “이것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라고 말했다. 또 전해철 의원은 지난달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노씨 발언은 전직 대통령이 권력으로 억압당했던 상황에서 있지도 않은 NLL 포기발언 등으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대선에 악용한 분이 어떠한 반성, 사과 없이 추도식에 참석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노씨 발언을 두고 친노 인사들이 노씨를 옹호하면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친노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문재인 대표 체제로 대선에서 재도전해서 승리하겠다는 의도가 짙다고 날선 답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친노 진영에서도 친노 대 비노 프레임을 개혁 대 비개혁 프레임으로 바꾸는 차원에서 ‘희망 스크럼’ 같은 모임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전 의원 등 개혁적인 인사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또 호남과 동교동계 인사들을 비개혁적인 인물로 몰아 호남 물갈이 및 동교동계 물갈이를 시도,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원외 친노 인사들의 외곽 지원사격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인터넷 정치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의 주축인 문성근, 명계남씨가 노씨를 옹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문씨는 “유족이 이런 비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건호에게 미안하고 노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저 포함 야권이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노건호가 김무성에게 ‘불쑥 나타났다’ 한 것은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뜻”이라며 “‘여당대표’가 추도식에 처음 참석한다면 ‘의전준비’를 위해 협의가 필요한데 통보조차 없이 언론에만 알리고 게다가 경찰병력을 증파했으니 예의에 어긋난 짓을 벌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씨 또한 “사전협의도 없이 언론에 먼저 흘리고 경찰병력 450명과 함께 쳐들어오는 행위에 대한 불편함 표현”이라고 말했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노씨에 대한 긍정적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노사모가 결성됐던 것과 비슷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그간 물밑에서 숨쉬고 있던 친노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교롭게도 문씨가 ‘6월 중 온라인 시민 플랫폼을 출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시민 플랫폼은 2010년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과 같이 친노 외곽 진영의 결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친노 외곽 진영이 결집할 것으로 보이자 ‘제2의 노사모’가 부활, 2002년 대선 승리를 재현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 재단에서 노사모까지 관리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 재단 측에서는 “노사모에서 행사 관련해서 문의 요청을 할 때 지원을 하고 있다”며 “노사모까지 관리한다는 것은 낭설”이라고 손사래 쳤다. 다만 교감이 있는 것보다 지향하는 정치적 입장이 비슷하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사모와 시민 플랫폼 등 친노 외곽 진영에서 문 대표를 차기 대권 후보로 내세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친노, 위기 때마다 ‘결집’
뿐만 아니라 위기에 놓은 친노계가 노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결집하고 있는 분위기다. 친노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되면서 친노들의 결집이 본격화됐다. 2002년 3월 광주경선에서 1위를 차지, 노풍을 일으켰다. 그해 최종 대선후보가 됐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같은해 10월 지지율이 15%로 주저앉으면서 비노계를 중심으로 ‘후보단일화추진협의’가 결정돼 민주당을 내홍의 극한으로 몰고 갔지만 후단협에 반발한 의원들과 친노 세력이 노무현 캠프로 몰려들면서 ‘친노’가 결집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대선 때 친노는 분열했다. 2007년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전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친노는 해체되다시피 했다.
이도 잠시. 몰락의 길을 걷던 친노는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측근 비리로 검찰 조사 도중 서거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대 총선에서는 친노 세력이 다시 결집하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친노가 중심이 됐다.
대선 패배 이후 친노 구심점이 없었지만 친노가 아닌 친문(문재인)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그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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