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고발] 급성장한 렌털시장
따져보면 할부와 다름없어…계약 해지 땐 ‘거액’ 위약금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렌털시장이 급성장과 함께 전성시대를 맞았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적은 비용으로 편안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렌털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영향으로 렌털시장은 10년 만에 약 16배 커졌다. 또 롯데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가전업체들도 렌털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렌털 상품이 결국은 할부로 구매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소비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소유권 이전형 상품 대다수…불만 급증
지금까지 렌털제품은 곧 정수기로 통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 비데, 매트리스, 오토바이, 커피머신 등 그 품목이 다양화됐다. 심지어 애완견까지 렌털 대상이 됐다.
렌털시장은 IMF외환위기 직후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2004년 1조 원 규모였던 렌털시장은 10년 만에 12조 원, 연평균 12.5%씩 급성장하고 있다. 자동차 렌털까지 합하면 16조 원으로 16배가량 커졌다.
이 같은 성장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갖고 싶은 상품을 ‘구매’의 방법이 아닌 ‘사용’의 개념으로 찾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소비자들은 소유한다는 것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불황이 지속되면서 적은 돈으로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렌털 물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계 지출을 줄이고, 목돈을 잘 쓰지 않는 추세와 맞아떨어지는 소비가 시작된 것이다.
한 소비자 A씨는 “커피머신 구매를 알아보다 렌털을 선택했다”며 “구매하려면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하는데 렌털로 사용할 경우 한 달에 20만 원만 내면 커피머신을 사용할 수 있어서 부담이 적었다”고 말했다. 또 “렌털상품을 사용한 뒤로 커피를 사먹는 돈이 줄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성장세에 LG전자, 롯데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대기업들도 렌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LG전자는 2009년 4월 국내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롯데그룹은 지난 2월 호텔롯데를 통해 TK렌탈을 인수했다. KT렌탈은 국내 렌터카 업계 1위인 KT금호렌터카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4월 현대홈쇼핑이 600억 원을 출자해 지분 100%를 갖는 ㈜현대렌탈케어를 설립하고 정수기를 비롯해 공기청정기, 비데, 주방용품, 매트리스, 에어컨 케어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또 5년 안에 1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2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중견가전업체들도 렌털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국내 최대 렌탈사업을 하고 있는 코웨이는 기존 주력 상품인 정수기 외에도 스파클링 정수기, 클리닉 비데 등 프리미엄 제품과 연수기, 음식물 처리기, 매트리스 케어렌탈 등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청호나이스, 한경희 생활과학 등도 각각 커피정수기, 탄산수제조기 등 렌털사업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밥솥업체인 쿠첸도 IH전기레인지 렌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품 반납
사실상 불가능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렌털 상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우선 다수의 소비자들이 렌털 상품은 비싼 제품을 싼 값에 빌려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종 지불 금액을 따져보면 결국 제품을 할부로 구매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대다수 제품이 3년 뒤 소유권을 넘겨받는 ‘소유권 이전형’ 상품이어서 물건을 반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 렌털 상품인 침대, 안마 의자, 디지털 피아노, 공기청정기 등 대부분은 소유권 이전형 렌털인 경우가 많다.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해 소비자 입장에선 결국 장기 할부로 구입하는 것과 같다. 위약금은 보통 남은 렌털 기간 전체 요금의 50%에 달하며 등록비를 돌려줘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
계약기간이 끝나 소유권을 확보해도 추가로 돈이 들어갈 수 있다. 정수기와 같이 정기관리가 필요한 제품은 또 다시 매달 지출되는 비용이 발생된다.
더욱이 소유권 이전형인 경우 렌털비로 지출된 금액의 총합이 일시불 구입가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렌털비용 합계가 일시불보다 최대 3배 이상 비싼 경우도 있다.
소비자 B씨는 “안마의자 렌털을 알아보다 그냥 구매하게 됐다”며 “주변을 보니 생각만큼 안마의자 활용도가 높지 않아서 구매보다는 렌털을 알아봤었다. 그런데 가격 비교를 하다보니 렌털 비용에 드는 총합보다 저렴한 금액대의 제품을 구매하는 게 더 이득인 것 같아서 그냥 구매를 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렌털 상품들 중 정확한 제품 가격이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렌털비와 일시불 가격을 함께 알리게 돼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소비자 C씨는 “자취생활을 하고 있어서 물건을 쉽게 덥석 사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사하는 집에 맞춰서 필요한 물건을 렌털하기 위해 가전제품 매장을 방문했는데 물건을 사는 게 더 나은지, 렌털 하는 게 비용적인 부담이 적은지 비교하기가 어려워서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이밖에 렌털비가 3개월 이상 연체됐을 때에는 신용등급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렌털시장의 성장만큼 소비자들의 불만도 증가해가는 가운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소비자들의 렌탈 관련 불만건수는 2010년 6164건, 2011년 9026건, 2012년 8655건, 2013년 1만465건에 이른다. 2014년은 아직 집계가 되지 않았지만 1만2000여 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