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회사로 전환하는 ‘구찌·샤넬’
회사 경영정보 차단…외부감사 피하려고?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구찌, 샤넬, 루이비통 등 해외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잇따라 유한회사로 전환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유한회사는 경영 내역을 공개하거나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없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공개되는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잘나가는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경영 정보를 감추고, 외부 감사를 피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브랜드들은 최근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확장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어 유한회사 전환 의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부금 등 논란거리 원천봉쇄 의혹
구찌그룹코리아(이하 구찌)는 지난해 12월 유한회사로 법인 형태를 바꿨다. 1998년 주식회사로 영업을 시작한 지 17년 만이다. 이로써 구찌는 샤넬코리아(이하 샤넬), 루이비통코리아(이하 루이비통)에 이어 법인형태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명품 브랜드 회사 대열에 합류했다.
샤넬 역시 주식회사로 등록했지만 1997년 말 유한회사로 변경했으며, 루이비통은 2012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법인형태를 바꿨다.
유한회사는 현행 외감법상 외부감사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에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이 드러나는 감사보고서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공식적으로 경영정보를 감출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소규모 기업에 적합한 유한회사를 고집하는 것은 경영정보를 감추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유한회사로 변경한 해외 명품 브랜드 회사들의 연간수익은 수천억 원이 넘는다. 그동안 알려진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매출 규모로 봤을 때, 큰돈을 벌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만 순이익 규모가 최대 100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성장했다. 2010년 이후에도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구찌 매출은 각 백화점별로 6%에서 최대 17%가량 급증했다. 올해 1~4월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3%에서 최대 18%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구찌보다 앞서 유한회사로 변경한 루이비통, 샤넬 역시 상당한 매출을 올린 것으로 짐작되지만 유한회사 특성 상 정확한 경영정보를 알기 어렵다.
늘어난 매출만큼 이들 브랜드들은 해마다 배당금도 수백억 원씩 챙긴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이 이들 브랜드는 이 같은 영업이익과 배당금에도 불구하고 인색한 기부금으로 여러 차례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때문에 이 같은 구설이 나올 수 있는 경영정보를 차단하고자 유한회사로 법인형태를 변경시켰다는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
재벌닷컴이 지난해 발표한 국내 매출 상위 14개 해외브랜드 국내법인의 5년간(2009 ~2013년) 국내 기부금은 15억9000만 원이다. 이들의 경영 실적이 매출 9조7257억 원, 순이익 8864억 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전체 순이익의 0.18% 수준의 기부금이다. 특히 샤넬과 페라가모코리아, 불가리코리아, 스와치그룹, 시슬리 등은 조사 대상 기간 동안 기부한 금액이 0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칼 빼든 금융위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경영정보 감추기 의혹을 받는 가운데, 최근 국내 시장 확대에는 공을 들이고 있어 꼼수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매출, 영업이익 등을 감추고 기부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지만 한국 시장 공략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샤넬은 지난달 4일 국내 최초 대규모 컬렉션 쇼를 서울에서 진행했다. 싱가포르, 두바이에 이어 세 번째로 아시아에서 진행된 크루즈 쇼였지만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방한한 것이 처음이어서 전 세계적 관심은 서울에 몰렸다.
게다가 절반에 가까운 작품들이 한복을 연상하게 하는 의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모델들은 가체를 올리고 색동 재킷, 누빔한복 드레스 등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샤넬뿐만 아니라 프랑스 브랜드 ‘고야드’, 독일 브랜드 ‘휴고보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 등도 최근 한국 법인과 지사를 세워 직접 국내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거 판권만 넘기는 간접 진출 방식에서 벗어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이 같은 명품 브랜드들의 변화를 두고 장기적인 수익성이 높고, 시장 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동으로 보고 있다.
이를 두고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과 한국 소비자들에 대한 무시 행동이라는 시선도 많다. 유한회사로의 법인형태 변경, 인색한 기부금액 등 논란이 여전하지만 명품을 선호하는 고정 소비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이용해 이익창출에만 목적을 둔 행동이란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감사보고서에는 매출 외에 영업이익, 배당, 기부금 등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정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담감은 덜고 수익은 그대로 올리고 싶은 속내가 있다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의 불씨를 지핀 구찌 측은 유한회사 전환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구찌의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의 질문에 “담당자가 아니다. 해당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말한 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유한회사에 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유한회사의 외부감사 의무화 법률안을 지난해 10월 입법예고했다. 유한회사라도 일정 규모 이상이면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구찌, 샤넬, 루이비통 등 패션업체 뿐만 아니라 한국피자헛, 한국코카콜라, 구글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계 대기업 대부분 유한회사 형태로 영업하고 있는 것이 배경이 됐다.
다만, 이 법안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에 있어 실제로 입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