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진
“조선인 피눈물 서린곳…강제 노동 문제 강력 제기”
유산보호 기본정신 위배 … 피해자 6만여 명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역사적 가치 있어”
지난해 1월 일본은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의 야하타 제철소,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조선소(미쓰비시 중공업), 하시마 섬 등 규슈와 야마구치 일대 28곳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해달라고 유네스코에 신청했다. 이 가운데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 7곳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강제 징용시설은 무려 6만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로 끌려가 혹독한 노역을 하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장소들이다. 대표적인 장소는 바로 나가사키 현의 하시마 섬이다.
한번 들어가면 못나오는
‘지옥문’ 하시마섬
일본 나가사키에서 4km떨어진 곳에 있는 섬 하시마. 섬의 모양이 군함처럼 생겨 군함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시마 섬은 1887년부터 1970년대까지 5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석탄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1960년대까지 일본의 근대화를 떠받치는 광업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1974년 폐광되면서 섬의 주민들이 모두 떠나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그러나 하시마 섬은 강제로 끌려가 힘든 노동을 한 조선인들의 피눈물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40년 당시 조선인은 하시마 섬을 ‘지옥섬’이라고 불렀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저 700m에 있는 해저탄광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매일 2교대로 12시간씩 석탄을 캤다. 좁고 어두운 탄광에서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운 채 일을 해야만 했다. 작업 환경뿐만 아니라 생활환경도 열악했다. 조선인들은 파도가 들이치는 해변가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식사도 주지 않았다. 결국 많은 조선인들이 탈출을 위해 바다로 뛰쳐나갔지만 헤엄쳐 도망가다 죽거나 도중에 잡혀 총살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 섬에서 숨진 조선인은 122명이다. 일본인보다 사망률이 12% 높은 숫자다.
하시마 섬에서 살아 돌아온 최창섭씨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영양실조로 다리에 쥐가 나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속됐으면 자살하든지 어떻게 해버리려고 각오를 다졌다”며 “말채로 도망자들을 막 후려치면 살이 묻어나고 죽는 소리가 난다.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마구 때린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주려고”라고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韓 “등록 반대 외교전”
vs 日 “한국과 협의”
또 나가사키 조선소(구 미쓰비시 조선소)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군함을 만들다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를 외면한 채 이 장소들이 일본의 산업혁명을 이끈 유산이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 세계 유산 등록 여부는 오는 6월부터 7월까지 독일에서 열리는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결과를 통해 결정된다.
이에 외교부는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이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은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호하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등록 반대 외교전을 펼칠 예정이다. 또 강제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강제 노동 문제를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 중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19개 위원국들에 강력히, 그리고 지속해서 제기해왔고 앞으로도 제기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우려를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간 위원국들의 의견을 청취해 몇 가지 복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일본 정부는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한국 측에 정중히 설명해 이해를 구한다는 입장이다. 강제 징용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 언론은 “한국이 억지를 부린다”고 보도했다. 일본 주요 언론인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8일 사설에서 “한국의 세계유산 등재 반대는 반일선전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산업 근대화의 궤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 “근대화를 앞당긴 일본의 기술력이 세계사적으로 높이 평가돼 기쁘다”며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부' 시설에 한국인이 강제 징용됐던 것을 이유로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에 '반발'하고 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