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의 밀어붙이기, ‘항소’ ‘개혁 정책’ 투트랙 전략 통할까
교육감 무덤 ‘서울시교육감’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지난달 23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선거과정에서의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국민참여재판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비록 29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최종형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교육감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서울시 교육감 자리는 유독 부침이 심했다. 일각에서는 ‘교육감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다. 공정택 곽노현 전 교육감은 부인 차명계좌 재산신고를 누락한 혐의, 후보 매수 혐의로 각각 유죄가 확정돼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이후 당선된 문용린 전 교육감도 선거에서 자신이 보수 단일 후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교육정책을 펼칠 교육감이 수시로 바뀌면서 교육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진보와 보수 양 갈래로 나뉘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감 퇴진 가능성은 교육정책 공백 상황을 몰고 올 것이 뻔하다. 이런 가운데 조희연 교육감은 항소심에서 배심원들을 다시 설득하겠다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죄가 나오리라고 상상을 못해 당황스러웠고 충격 받았다”
자신이 신청한 국민참여재판 발목, 허위사실공표죄 헌법 소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1일 오전 교육청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월례조회에서 “유죄가 나오리라고 상상을 못해 당황스러웠고 충격을 받았다”며 “수뢰나 부패사건도 아니고 부당하게 기소됐다는 공감대도 있기에 떳떳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육감은 “여러분에게 상처와 긴장을 드려 죄송하다”며 “1심에서 배심원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것 같은데 항소심에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분이 교육감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평상시 하시는 것처럼 일상업무에서 흔들리지 않고 임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지난달 23일 유죄 판결에 적잖이 당황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것도 그였고 충분히 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란 예상을 했으나 이를 뒤엎는 판결이 나왔으니 그럴 만 했다. 어찌보면 자업자득이지만 조 교육감이 최종 유죄판결을 맞을 경우 직전 3명의 교육감에 이어 4번째로 임기 내에 물러나는 교육감이 될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교육정책을 책임질 담당자가 없다는 사실은 사실상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부재로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선거전에서 상대를 꺾기 위해 무분별한 폭로전을 진행한 결과다. 아무리 결과가 중요한 선거라지만 정도를 지키지 않은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 항소심이 더욱더 치열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동시에 사실상 직무정지상태인 조 교육감의 정책들도 추진동력을 잃었다. 얼마나 많은 학교장들이 조 교육감의 정책을 따를지 장담할 수 없다. 조 교육감은 이제 치열한 항소심 준비와 추진동력을 잃은 자신의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힘든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제 와서
법이 잘못 됐다니
조 교육감은 ‘식물교육감’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법률적 대응을 하는 동시에 기존 개혁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 붙인다는 전략이다.
먼저 조 교육감은 지난달 29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한 항소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지난 23일 조 교육감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후보가) 의혹을 사실로 믿을 만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사실 확인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혹을 제기했다”며 “여기에는 고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조 교육감은 항소심에서 고 후보의 영주권 보유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를 입증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집중 소명할 전망이다. 영주권 보유 여부를 제3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을 뿐 상대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목적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조 교육감 측은 이와 함께 2심 재판부가 정해진 뒤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헌법 소원도 낼 예정이다. 조 교육감은 1심 재판 직후 서울교육협의회를 소집해 “저를 기소한 법적 근거 조항인 공직 선거법 250조 2항 허위사실공표죄는 OECD 가입 국가에는 거의 없다”며 “선거운동 기간 동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헌법 소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조 교육감의 이중잣대성 발언이다. 그는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직 재판부와 배심원의 정의롭고 현명한 판단을 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3일에는 법원에 들어서면서 “시민 법관인 배심원들의 상식에 기초한 현명한 판단을 겸허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법정 최후 변론에선 “배심원 여러분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판단을 해주시길 겸허하게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 결과가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나오자 “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초 조 교육감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자 검찰은 ‘배심원은 교육감 선거의 유권자들이어서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없다’며 반대했었지만, 배심원들은 냉정한 판단으로 조 교육감이 아닌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자사고 재지정평가
교육부 동의 없이 또 시행
조 교육감의 항소로 또다시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의 뜻대로 판결이 뒤집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항소가 교육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비난 여론도 있다. 진실은 조 교육감만이 알고 있다.
조 교육감은 법률적 대응과는 별도로 기존에 자신이 주장해 온 개혁정책에 속도를 더하기로 했다. 자칫 유죄 판결로 인해 서울 각 학교의 교장과 교감 등이 개혁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정책은 두 가지다. 자사고 재지정평가와 혁신학교 공모다.
서울시 교육청은 11개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에 돌입했다. 시교육청은 이미 지난 주에 평가 대상이 되는 각 학교의 교감과 미팅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말 학교로부터 자체평가서를 받아 평가를 진행하면 6월 말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의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진행된다. 각 학교는 5년마다 한 번씩 평가를 받는데 올해는 2011년에 개교한 자사고 11곳이 심판대에 오른다. 평가 대상학교는 경문고, 대광고, 대성고, 보인고, 현대고, 미림여고, 선덕고, 세화여고, 양정고, 장훈고, 휘문고 등이다.
시교육청은 평가에 교육부 표준안과 시교육청 재량평가 지표를 활용할 계획이다. 평가 결과 기준 점수에 미달한 학교는 자사고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
지난해에는 2010년 개교한 자사고 14개교 중 8개교가 70점에 못 미친 점수를 받았다.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등 6개교가 최종 지정취소됐으며 숭문고와 신일고는 지정취소를 2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올해도 일부 학교가 자사고 지위를 내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지정취소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해에도 자사고 취소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시위를 벌였었다. 게다가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에 교육부가 동의하지 않고 있어 최종지정취소까지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조 교육감 형 확정 시
정책 폐기·표류 가능성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 공모도 강행하기로 했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조 교육감의 핵심정책이다. 만약 조 교육감의 유죄가 확정되면 폐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서둘러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올 하반기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는 지난달 28일 시작됐다. 현재 88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번 공모를 통해 하반기까지 총 100개교로 늘어난다.
시교육청은 6월 15일부터 19일까지 신청서류를 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6월 29일 18개 혁신학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 중 6개 학교는 2011년 9월 이미 지정돼 재공모 지정 대상이며, 순수 신규지정 혁신학교는 12개교다.
신규지정 혁신학교는 평균 3250만 원을, 재공모 지정 학교는 평균 2250만원을 지원받는다. 또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혁신 교육활동 공동 운영 등 권역별 자율협의체를 꾸릴 수 있도록 지원받는다. 그 외에도 시교육청은 교원 전문성 향상과 공동체 활성화 등도 지원한다.
이번에 선정되는 서울형 혁신학교는 2019년 2월까지 운영된다. 올해 혁신학교 공모 과제는 학교 운영의 민주적 의사결정, 공공성을 갖춘 창의적 교육과정, 지역사회와의 소통 강화, 학생의 기초학습능력 신장 등이다. 시교육청은 2018년까지 서울형 혁신학교를 총 200개교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공모 대상 기관을 유치원과 특수학교 등까지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선거비용 보전금 미반납자
1~4위 모두 교육감
공직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출마자들은 선거비용 보전금을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교육감 선거 후보들이 보전금 반환에 가장 불성실한 것으로 알려 졌다.
지난달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선거별 보전금 반환액과 징수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역대 교육감 선거에서 발생한 선거보전금 반환대상액은 118억8120만원이다. 이 중 114억9000만원이 징수되지 않아 미환수율이 97.3%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의원 42.2%, 광역의원 37.7% 등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35억2444만원으로 가장 많고 이원희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 30억4616만원,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28억2515만원, 강원춘 전 경기도교육감 후보 15억7000만원 순으로 뒤를 이었다.
조 교육감과 문 전 서울시교육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각각 벌금 500만원,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상급심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조 교육감은 33억8400만원, 문 전 교육감은 32억6420만원을 반납해야 한다.
이 전 후보와 공 전 교육감은 국세청이 매달 200만원가량을 압류하고 있지만 모두 갚으려면 각각 127년, 117년이 걸린다. 강 전 후보의 경우 서류상 ‘무재산’이라 징수가 아예 불가능하다. 1300여만 원을 낸 곽 전 교육감은 2013년 1월 이후에는 징수 내역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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