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대결집으로 적폐 심장부 친다
청와대發 대한민국 대개조
‘성완종-역대 정권 커넥션’ 고리 찾기 시동
병상 메시지로 엄호사격…위기를 기회로 반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난 4·29 재·보궐선거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정치적으로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선거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차기 대권 최대 경쟁 상대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김 대표는 급등하고 문 대표는 급락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jtbc의 의뢰를 받아 재보선 다음날인 30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4.4% 포인트)가 그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대표는 23.4%로 하루 만에 7.1% 포인트가 올랐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3.3% 포인트 하락한 23.6%를 기록하면서 지지율 격차가 겨우 0.2% 포인트로 좁혀졌다.
하지만 국정운영 측면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최대 수혜자다. ‘성완종 리스트’로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국정운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한 까닭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선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역시 동반상승해 긍정 평가가 43.3%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5.7%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박 대통령은 일선 정치인 시절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각종 선거에서 ‘박근혜 마케팅’이 봇물을 이루면서 선거 판세를 좌우했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는 여당에서 ‘박근혜’가 오히려 장애물로 받아들여졌다. ‘성완종 리스트’에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대거 들어갔기 때문이다.
‘선거의 여왕’ 또 진가 발휘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역시 선거의 달인이었다. 9박 11일 동안의 중남미 순방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에 의해 위경련과 인두염을 앓고 있었지만 선거 전날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병상 메시지’를 날렸다. ‘성완종 파문’의 근본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두 차례 걸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면이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 행사까지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 메시지는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란 야권의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완벽하게 결집 시켰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유리하다는 편견이 이번 재보선에서 깨진 이유도 보수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간 까닭으로 분석된다. 특히 접전지에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박 대통령의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를 찍었다.
위기국면에서 돌파구를 찾은 박 대통령은 국가 대(大)개조에 나설 태세다. 조기 레임덕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운영에 강력한 드라이버를 걸 것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은 ‘성완종 특사’를 고리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도 은밀한 병폐를 모조리 도려내면서 국가 대개조의 첫 시동을 걸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대통령 특사를 사유화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고, 실제로 과거 대통령과는 달리 임기 2년여 동안 단 한 번, 그것도 생계형 특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는 성완종 특사 의혹을 파헤칠 명분이 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에도 ‘국가 대개조’를 천명했다. 첫 단추를 인적쇄신으로 끼우려 했다. 그러나 정홍원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된 안대희·문창극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도 서 보지 못한 채 잇달아 낙마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이후 정부 부처의 일부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국가 대개조는 사실상 무산됐다.
이번에는 다르다. 각오부터 결기가 느껴진다. 4·29 재보선 다음날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경제활성화와 공무원연금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 그리고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루어서 국민의 뜻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또 “이번 국민의 선택은 정쟁에서 벗어나 경제를 살리고 정치개혁을 이루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민심을 등에 업었다고 판단한다. 야당이 재보선 기간 내내 ‘정권심판론’을 선거 프레임으로 내세웠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건 상대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재신임으로 해석되는 까닭이다.
청와대發 ‘정치 개혁’ 주목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은 먼저 청와대 발(發) ‘정치개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승부수로 던진 ‘성완종 특사 의혹 규명’이 결과적으로 여론을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권에서 광범위하게 펼친 로비의 실체를 규명하게 되면 정치개혁의 큰 길이 보이게 된다.
황태순 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성완종 특사를 언급한 건 적폐의 심장부를 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마지막 쪽지에는 현 여권 인사 8명의 이름만 거명돼 있지만 별도의 ‘성완종 장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이를 끝까지 추적해 ‘성완종-역대 정권 커넥션’ 고리를 찾아내 정치개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이완구 전 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건 박근혜 정부 사람들도 정치개혁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기의 표현이다.
한편으론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따라 당 쪽으로 기울어진 당청 역학관계를 바로 잡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여권은 당초 4·29 재보선을 ‘김무성 개인기’로 치르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선거 판세가 혼전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병상 메시지’를 통해 함포 엄호 사격에 나서면서 전세가 여당 쪽으로 기울었다. 이를 계기로 당청 역학구도가 다시 균형이 맞춰졌다.
행정부 정리도 시급하다. 총리가 공석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인사 문제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주지 않도록 도덕성과 추진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 관계자는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도 총리 인선이 국가 대개조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여권의 인적 배치가 마무리 되고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갖추면 ‘국민생활’에 초점을 맞춰 국가 대개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4·29 재보선에서 야당이 성완종 리스트를 놓고 정치 이슈를 내세웠지만 유권자들은 여당이 앞세운 ‘지역일꾼’이라는 생활밀접형 어젠다를 선호하는 것이 확인됐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에게 꾸준히 요청해온 경제활성화 관련법의 국회 처리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특히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리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만큼 경제 살리기 정책이 단시간에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사회개혁에도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다.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다.
당초 박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전국 규모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인 올해를 국가 대개조의 적기로 삼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4개월 동안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개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역설적으로 겨우 4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 완승이 다시 국가 대개조의 추동력이 됐다. 마침 패장(敗將)인 문재인 대표가 이끄는 야당도 자중지란에 휘말렸다. 책임론이 일어나면서 친노-비노 세력이 다시 충돌했다. 이런 현상은 대여 투쟁력을 떨어뜨린다. 박 대통령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래저래 박 대통령으로선 안팎으로 국가 대개조에 나설 호기를 맞았다.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