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 민심 잡으려던 신세계…역풍 부는 까닭은
신세계그룹의 미묘한 상생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서울 시내 면세점 대전에 참여한 신세계가 갑자기 남대문 시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중구청과 함께 하는 신세계의 지원에 대해 오히려 등을 돌리고 있다. 항상 곁에 있던 신세계가 이제서야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면세점 입찰을 위한 상생협력 점수 따기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앞두고 보여주기식 지원
수입품 파는 상인들 되레 반발…지원금도 유명무실
신세계그룹이 면세점 독립법인인 신세계디에프를 설립하기로 한 것은 지난달 21일이다. 기존 면세사업은 타 호텔들처럼 신세계조선호텔 내의 한 부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신세계 측은 법인 설립과 함께 면세점을 그룹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를 위해 전 호텔신라 대표였던 성영목 현 신세계조선호텔 대표를 면세 법인에서도 대표로 내정했다. 이외에도 기존 면세점의 노하우를 가진 인력을 차례로 보강해 면세점을 핵심사업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실 신세계의 법인 설립은 서울 시내 면세점 대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신세계는 국내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에 입성한 다음 해외를 노리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걸음은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 인수였고 다음은 김해공항 면세점 입점이었다. 세 번째인 서울 시내 면세점은 신세계 면세 법인의 기로를 가를 정도로 중요한 입찰이다.
여기에서 신세계가 내세운 기치는 지역경제 및 중소기업과 상생을 추구하는 동반 면세점이다. 신세계 측은 지역시장 살리기와 중소기업의 상품 판로 개척, 혁신제품의 글로벌 명품 전략 등을 전격 돕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선발 평가기준
30% 차지해
실제로 신세계는 같은 달 23일 서울 중구청 및 남대문 상인회와 함께 남대문시장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 MOU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시설 개선과 홍보, 문화산업 양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관련 사업에 1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신세계가 이야기하는 상생이 얄궂게도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서 중요한 심사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당 면세점 입찰 평가기준에는 기본적인 관리역량이나 경영능력 외에도 사회 공헌도 및 상생협력이 30%의 비율을 차지한다.
사실 남대문시장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은 10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 바로 곁에 본점을 둔 신세계가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신세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 진출을 코앞에 두고서야 남대문시장을 살린다며 관련 MOU를 체결했다. 지역과의 상생이 가점을 얻는 것을 고려해 보여주기식 지원을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신세계가 이전에도 관련 MOU를 체결한 사례는 있다. 2013년 성영목 신세계조선호텔 대표가 과거 신세계백화점 대표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원금을 내건 것도 아니었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도 않았다는 전언이다.
또 성 대표가 신세계조선호텔로 자리를 옮긴 지난해에도 한 차례 더 MOU를 맺었다. 그러나 이 역시 지원금 등은 없었고 관계자가 아니면 모를 정도로 소리소문 없이 지나갔다는 후문이다.
이번에는 지원금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소 다르지만 여기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1억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최대 전통시장 중 하나인 남대문시장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인 금액이라는 점이다.
롯데·현대百도
비슷한 행보
더불어 중구청조차도 이 같은 MOU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신세계는 해당 지원금을 홍보용으로 쓴 것이나 다름없다는 쓴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형국이다.
특히 남대문시장의 강점 중 하나인 수입품은 바로 옆 신세계 본점에 면세점이 들어오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일부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신세계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강한 반기를 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신세계뿐만이 아니다. 롯데그룹의 경우 지난달 28일 국산 농산물 소비와 수출 확대,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겠다며 농림축산식품부 등과 상생협약을 맺었다. 또 현대백화점그룹은 같은 날 중소기업의 우수 제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육성하겠다며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곧 다가오는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을 앞두고 모두들 상생협력 점수를 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사실상 전시지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평가기준에서 차지하는 해당 요소가 30%로 적지 않은 만큼 지원을 안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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