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지/금] 내부통신망 점검 나선 기업들

소통창구가 싸움창고?…사측 골머리

2015-05-04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소통’을 경영 화두로 꺼내놓은 기업들이 많다. 너나 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진과 직원 간 ‘소통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다수의 기업들은 익명게시판 활성화를 통해 전 직원 간 대화 창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창구가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선다.

허심탄회하게 쓴 글에 다른 해석을 하는 직원이 등장하고, 이를 토대로 편을 나눠 난상토론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측도 이런 일엔 적잖이 당황하지만 해당 사이트 글을 막기라도 하면 ‘소통 부재론’이 고개 들어 조심스럽다.

익명게시판 대표적 소통 채널로 자리매김
상호충돌 의견 나올 때마다 유관부서 긴장

사내 익명게시판을 활용하는 A사. 임직원과 직원 간 소통창구의 한 획을 그었다며 칭찬일색이다. 직원이 쓴 내용 중 작은 건의사항도 해결해주면서 상호간 신뢰도 쌓았다.
이 회사는 최근 한 직원이 게시판에 쓴 ‘회사에서 지급한 데스크탑이 느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는 글에 팀장급 간부가 ‘유관부서에 연락 주시면 바로 지원하겠습니다. 하고 계신 업무 대박을 기원합니다’는 응원의 글을 달았고, 컴퓨터 교체가 진행됐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B대기업. 내부 직원 간 화제는 구조조정이다. 여느 때보다 고삐를 죄고 사업 재편을 하다 보니 임직원들 사이에서 “oo사업부를 드러내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다더라” “oo사업부는 통째로 해외에 매각한다더라” 등의 근거 없는 글이 난무하고 있다.

계열사 내부에서 이토록 근거 없는 글이 작성돼 확산되는 배경은 지난해 각 계열사 사업부별 매출 실적이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최근 그룹 전 계열사에 걸쳐 진행 중인 인수합병과 매각 흐름에 맞춰 ‘성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버려진다’는 내부 임직원들의 인식과 ‘그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더해져 루머가 양산되고 있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사내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 내부는 물론이고,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할수록 기업의 창의성이 높아지고 고객 중심 경영을 견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과 소통하는
CEO 늘어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나돌면서 소통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CEO들이 부지런히 현장을 찾고, 블로그를 통해 ‘소통’에 나서거나 익명으로 자유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직원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 ‘소통’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이를 발판으로 ‘도약’하려는 CEO들의 다양한 소통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임직원들과 많이 접촉하기 위해 식사를 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는 CEO들도 많다.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소통의 방법 중 ‘같이 밥을 먹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특히 건설업계에서 식사 시간을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소통’으로 인한 피해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기업도 늘고 있어 충격을 안긴다.
소통을 위해 적은 글에 다른 해석을 내는 직원이 생기면서 기업 내 파벌싸움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모 기업에선 팀 내 직원 간 마찰이 통신망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붙어 해당 글이 외부로 알려진 경우도 있었다.

이 사건은 한 팀에서 팀장과 팀원간의 의견 충돌이 나자 이들 지켜본 타 부서 직원이 ‘oo vs oo, 누구 말이 맞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
작성자는 사업적 부분에 대해 다른 부서 직원들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고 밝혔지만 이 글 댓글에는 oo직원을 옹호하거나 과거 문제를 들추어내는 글들이 상당수 적히면서 오히려 감정싸움을 유발했다. 
일부 직원들은 “익명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엔 이해당사자가 없는 가십거리를 적거나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글을 적어야지 상호비방을 목적으로 하거나 누군가를 특정하는 글을 쓰면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선다”며 운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보였다.

또 다른 직원은 “사측이 건의사항을 이야기하라고 해서 정말 건의사항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라며 “어느 정도 협의가 가능한 선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반기를 들 만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심탄회하게 쓴 글
때론 ‘독’

그도 그럴 것이 괜한 말 한마디로 해고통보라도 받으면 결국엔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익명 게시판의 경우 민원 작성자가 보호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익명게시판의 취지야 그렇지만 작성자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넘어갈 정도의 민원이니 더 말이 없는 거지 조직을 흔드는 민원이면 문제가 된 시점부터 작성자의 신상이 어느 정도 알려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에선 SNS등을 통해 직원들 사이에서 양산, 배포되고 있는 음해성 루머를 강력 제재하겠다고 나섰다. 루머가 퍼지면서 내부 직원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닌 데다 업무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일이 쌓이다보면 내부서 해결될 문제가 외부로 퍼지면서 기업이미지 하락은 물론 특정인에 대한 사정으로 연결돼 더 큰 혼란을 부추기기도 한다. 
해당 업계 관계자는 “각 계열사별로 루머를 적극 진화하는 한편 루머 양산 및 유포 직원을 사규에 근거해 엄중 처벌 방침을 밝히고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