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방화사건 전모

양극에 선 대한민국 “DJ,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한다”

2010-02-09     김수정 기자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이 결국 망자의 마지막 안식처마저 불태워 버렸다.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역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아직 화재원인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화재 당시 묘역 부근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난하는 16장의 보수단체 전단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일부 보수단체에 방화 의혹이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했던 ‘어버이협회’가 그 의혹 대상. 언론의 의혹 제기에 어버이협회는 “우린 미친놈이 아니다”라며 격분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설을 앞두고 발생한 엽기적인 화재 사건의 이모저모를 파헤쳐 보자.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로, 국민이 놀라고 참담한 심정일 것”

김대중평화센터(이사장 이희호)의 최경환 대변인은 침통해 했다. 그는 화재가 터진 지난 2일 언론을 통해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경찰은 엄중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이번 사건이 방화로 인한 화재로 최종 결론나진 않았다. 하지만 최 대변인을 비롯한 여론 대부분은 이미 방화의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 묘역 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동작경찰서는 “주변에 화인이 될 만한 것이 없었고, 잔디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오전에 불이 난 점 등을 볼 때 저절로 난 불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해 사실상 이번 사건을 방화 사건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동작경찰서는 즉시 형사과장과 20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수사전담팀을 동원해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흑석2치안센터에 수사본부를 마련한 경찰은 방화 용의자를 찾기 위해 현충원 내 CCTV 화면을 분석 중이다.

특히 화재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모 보수단체 전단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사건 발생일 이전의 현충원 출입기록과 화재지점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모 보수단체 용의선상 수사

물론 아직 용의자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지만, 언론과 여론의 심증은 일부 보수단체로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로 충격을 줬던 ‘어버이협회’는 사건 발생과 동시에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어버이협회의 한 관계자는 “우린 그런 일을 저지르는 미친놈이 아니다. 이건 모함이다. 되레 좌파 측 자작극이면 자작극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분개했다. 특히 그는 “한겨레 같은 이상한 언론이 우리를 자꾸 궁지로 몰고 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지 이전에 대해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대중은 광주로 갔어야 한다. 하물며 군대도 가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국립묘지에 누울 수 있느냐”라며 “지난해 퍼포먼스는 정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에 이런 보수단체들의 각종 사회기관을 향한 규탄 기자회견이 늘어나고 있다. 2일에는 어버이협회, 보수국민연합, 한미우호증진협의회가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좌편향언론의 거짓 선동 방해공작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에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기갑 국회 난동, MBC PD수첩 무죄 판결에 대해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를 초래한 배후는 ‘우리법연구회’” 라면서 “좌편향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에 대한 모든 책임은 진보성향 판사들을 제재하지 않은 이용훈 대법원장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방화사건 배후에 특정 보수집단이 의혹을 받는 것도 화재 당시 발견된 전단을 비롯해 최근 보수집단의 노골적인 분노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조사결과 보수단체의 방화로 인한 화재로 밝혀진다면, 보수 세력을 향한 여론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지방선거의 결과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남은 조사 결과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봉화마을은 공사 중

한편, 이번 방화 사건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은 허술한 관리 시스템으로 치명타를 맞았다.

사건 당일 현충원 관계자는 “묘역을 청소하던 직원이 불탄 흔적을 처음 발견했다. 오늘 오전 9시10분 순찰할 때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불이 난 장소는 CCTV에 포착되지 않아 정확한 화인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라고 전했다. 또한, “묘역 화재 사건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족 측의 요청을 수용해 불탄 지역을 파헤쳤다. 묘역에 초소를 설치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셈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 보수집단이 지목되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의 안전도 장담할 수만은 없다. 이에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담당하는 ‘사람사는세상(주 봉화마을)’의 김경수 사무국장은 “현재 봉하마을은 묘역 주변에 추가 공사를 하고 있어서 특별히 안전 관리 면에 대한 질문에 드릴 얘기가 없다”라면서도 “대통령의 장지가 생가에 있을 뿐 아니라 (수는 밝힐 수 없지만)경찰과 경호원들이 교대로 상주하고 있어 위협 노출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CCTV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추가 공사가 끝나는 5월 초순까지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된 이번 추가 공사에는 CCTV는 물론 박석 건립 등 자발적인 국민 참여로 이뤄지고 있었다. 김 국장은 마지막으로 이번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지 화재 사건에 대해 “결코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