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깊은 후회 속에서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검찰, 항소심서 징역 3년 구형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일명 '땅콩 회항'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조현아(41·여)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검찰이 항소심에서도 원심과 같은 징역3 년을 구형했다.
20일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 심리로 열린 조 전 부사장에 대한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회장의 장녀이자 부사장으로서의 지위를 남용해 항공기 안전에 관한 법질서를 무력화시켰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를 돌리기 전 항공기가 지상에서 이동한 17m의 거리 역시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죄의 구성요건인 '항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항공보안법의 입법취지는 항공기 운행 과정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항공보안법상 '항로'란 항공기가 운항하는 진행경로와 진행방향을 뜻하는 것이다. (하늘에서의) '항공로'로 축소해석하는 것은 입법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어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를 멈추고 되돌아가 사무장을 내리게 한 후 재출발해 (해당 항공기의) 출발예정 시간이 24분 지연됐다"며 "뉴욕 JFK공항처럼 전세계의 수많은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에서 이 같은 회항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승무원들이 안전운항을 위해 기내 안전을 체크하는 등 이륙을 준비하던 시기여다"며 "조 전 부사장의 행동으로 다수의 승무원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고 폭행 등을 당하면서 안전점검 등이 방해받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같은 논리를 토대로 조 전 부사장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및 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죄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땅콩 회항' 사건 조사가 시작되자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대한항공 객실담당 여모(58) 상무와 대한항공 측에 국토교통부 조사 상황을 알려준 혐의로 기소된 국토부 김모(55) 조사관에 대해서도 원심 구형과 같은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했다.
검찰은 아울러 "조 전 부사장이 '사건 발생 책임은 매뉴얼을 미숙지한 승무원과 사무장에 있고 자신은 부사장으로서 적법한 업무 지시를 했다'는 취지 등으로 법정에서 발언한 점에 비춰 진정으로 이 사건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반면 변호인은 조 전 부사장의 행위가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며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인은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를 돌리기 전 항공기가 이동한 17m는 항공기 항로변경죄에서의 '항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항공보안법은 비행기 납치를 방지하고 지상의 경찰력이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며 "반면 이 사건은 항공기가 엔진을 끄고 토잉카의 견인을 받아 유도로를 이동하는 '푸시백'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인은 이어 "푸시백은 기장의 역할이 배제되고 항공기가 관제사의 지시·통제에 의해 이동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비행기의 충돌 가능성이 없고 지상 경찰력의 출동도 가능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또 "형벌 조항에선 문언의 의미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항공보안법은 항로와 항공로를 같거나 유사한 의미로 혼용하고 있고 항로를 '지상 이동'을 포함하는 의미로 해석할 근거는 없다. 항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항로'의 개념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아울러 "조 전 부사장은 이미 여론에 의해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며 "두 돌도 되지 않은 어린 쌍둥이의 어머니로서 4개월의 구속기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지 못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고통을 받았다. 두 아들은 엄마의 부재로 인해 전반적인 불안증상이 더해지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날 녹색 수의를 입고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채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조 전 부사장은 재판 내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5시간이 넘게 진행된 공판이 막바지에 이르자 감정이 북받치는 듯 조금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조 전 부사장은 최후진술에서 "작년 겨울 경황없이 집을 나선 후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어느새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며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깊은 후회 속에서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어 "구속된 시간 동안 제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다"며 "저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박 사무장과 승무원들, 대한항공 임직원들, 저 때문에 분노하고 마음 상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흐느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5일 뉴욕 JFK발 인천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기내 서비스가 매뉴얼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무장과 여승무원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하는 등 소란을 피운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1심 선고 직후 항소했으며, 항소심에선 업무방해와 강요 등 혐의는 인정하고 형량이 높은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의 성립 여부만 다퉈왔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은 다음달 22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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