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령탑이 좋아…프로스포츠 패러다임 바꾸다

2015-04-20     김종현 기자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최근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이 현역 최연소 사령탑인 조동현 감독을 선임해 젊은 사령탑 열풍을 입증했다. 더욱이 배구와 축구에서도 젊은 감독들이 잇따라 지휘봉을 잡으면서 리그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무적함대 삼성화재를 무참히 침몰시킨 프로남자배구 OK저축은행의 김세진 감독은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젊은 감독들의 좌충우돌 도전기를 만나본다.

 김세진 감독 2년 만에 챔피온 등극…젊은 감독 모시기 기폭제
 70년대생 감독들 소통의 아이콘 부상…위기관리능력이 변수

신임 조동현 KT 감독은 올해 만 39세로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현역 최연소 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 인해 프로 농구는 KCC 추승균 감독 대행을 포함해 절반이 넘는 6개 팀의 사령탑이 70년대생 감독으로 채워졌다.

이뿐만 아니라 얼마 전 막을 내린 프로배구는 74년생인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의 돌풍에 발칵 뒤집혔다. 김 감독이 이끈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에 삼성화재의 아성을 깨고 팀을 챔피언에 올리면서 젊은 감독 돌풍의 주인공이 된 것.

특히 프로배구는 2005년 출범한 이래 지난 시즌까지 열 시즌 동안 삼성화재가 무려 8번이나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마땅한 경쟁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이번 시즌에도 삼성화재는 탄탄한 경기력을 선보여 OK저축은행의 돌풍이 일기 전까지는 당연히 우승을 예약했었다.

하지만 올해 OK저축은행의 돌풍을 거세가 불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삼성화재를 상대로 3승 무패를 거뒀다. 이들은 챔프전에서 9세트를 따내는 동안 단 한 세트만 내주는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김 감독은 우승 소감에 대해 “그야말로 기적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저 어려운 일을 해낸 우리 선수들이 대견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우승컵을 들어 올린 날 패러다임을 언급하며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뜻을 굳건히 했다. 김 감독은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 선수시절부터 배구의 패러다임을 바꿔왔다. 오른손을 쓰다 왼손을 썼고 세터에서 공격수로 전향했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도 제가 보유하고 있다. 선수 은퇴 이후 지도자 코스를 밟지 않고 해설위원을 하다 곧바로 사령탑에 올랐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진정성, 신뢰를 갖고 지도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흡수되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승리열쇠,
패러다임 교체

그의 말처럼 이번 시즌은 프로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계기가 됐다. 그간 V-리그 10년을 지배해왔던 신치용(삼성화재)-김호철(현대캐피탈) 체제를 깨뜨린 것이다. 우선 김호철 감독은 김세진 감독에게 챔프전 자리를 내주면서 다시 야인이 됐다. 또 신 감독은 김호철 감독이 아닌 다른 이에게 최초의 패배를 허용하고 말았다. 더욱이 김세진 감독은 세 번째 우승 감독이자 V-리그 최초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사람이 됐다.

김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젊은 감독이 트렌드라며 제가 그 선봉자라고 얘기한다. 그것도 과분하다. 다만 프로배구 10년사에 삼성과 현대만 우승했던 것을 깬 것은 큰 의미”라면서도 “아직 삼성-현대의 틀을 깬 것은 아니다.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사람들의 기본 심리에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삼성화재 이외의 우승을 보고 싶었던 팬들의 목마름을 적셔준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돌풍은 OK저축은행 창단에서부터 시작된다. 2013년 5월 OK저축은행(당시 러시앤캐시)은 초대 사령탑으로 KBS N 해설위원을 맡고 있던 김세진 위원을 선임했다. 이는 당시 파격적인 인사였다. 김 감독은 2006년 코트를 떠난 뒤 2007년부터 해설위원으로 전향했다.

그는 프로팀 코치는 물론 아마추어 지도자조차 거절했던 철저한 야인이었다. 김 감독은 “OK저축은행이 창단 팀이기 때문에 그 제의에 수락했다”며 “기존 팀에서 감독 제의가 왔다면 고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OK저축은행 역시 김 감독 선임은 큰 도박이었지만 약 7년간의 해설위원 경험이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보탬이 됐다. 김 감독은 “해설위원을 하면서 양 팀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플레이 패턴이나 흐름을 분석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면서 “삼성화재에서 선수생활을 한 것도 이번 챔프전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리더십과 시몬의 조화
우승 견인

특히 김 감독의 탁월한 소통능력은 팀 우승의 견인차로 평가받는다.

일각에서는 김 감독에 대해 ‘형님 리더십’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형님과 감독은 분명히 다르다”며 “어리지만 선배님들의 배구 영향을 많이 받았다. 훈련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지금의 시간을 강조한다. 한눈파는 것은 절대 가만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신 스킨십에 대해서는 애틋하다. 그는 “굳이 말하자면 어깨동무 리더십”이라며 “왜 함께 어깨동무를 해야 하는지, 어깨동무를 했을 때 얼마나 강해지는지 알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OK저축은행은 챔피언결정전에서 어깨동무의 중요성을 선수들과 공유하면서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더욱이 OK저축은행은 지난 1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5 한일 V-리그 탑매치’에서 일본 챔피언 JT 썬더스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3-2 우승을 거두면서 당당히 한국배구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김 감독의 어깨동무 리더십과 함께 OK저축은행을 빛낸 건 외국인 선수 시몬의 역할이 컸다. 실제 김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던 순간 가장 먼저 달려가 시몬을 끌어안았을 정도다.

시몬은 김 감독이 바꾼 또 다른 패러다임 중 하나였다.

OK저축은행은 2년차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선수를 바로티에서 시몬으로 교체했다. 시몬은 V-리그에 입성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센터로 군림하던 선수였다. 당시 김 감독은 전문 라이트 공격수를 영입하기 위해 고심했다. 하지만 당시 몸값도 비싼 데다 데려올 만한 자원이 충분치 않았다. 이때 김 감독은 시몬에게 눈을 돌렸다. 시몬의 서브치는 모습을 본 김 감독은 센터였던 시몬을 라이트로 전향시켜 데려온 것이다.

김 감독의 기대처럼 시몬의 돌풍은 매서웠다. 더욱이 시몬은 리그 후반기 팀을 위해 헌신적인 자세로 돌아서며 그의 가치를 더욱 빛냈다.

김 감독에 따르면 OK저축은행은 정규리그 중간 중간 삼성화재를 제치고 선두로 올라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하며 무너져 버렸다. 여기에는 시몬이 삼성화재 레오와 정면승부를 펼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이후 시몬은 레오와의 정면승부를 포기하고 팀을 위해 맞추기로 하면서 팀 승부가 갈렸다.

더욱이 시몬은 김 감독의 설득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팀을 위해 수긍한 것으로 알려져 김 감독과의 끈끈한 신뢰관계를 증명해냈다.

시몬을 향한 김 감독의 칭찬은 끝이 없다. 김 감독은 “시몬은 시즌 내내 무릎 통증을 안고 뛰었다. 그럼에도 불평보다는 솔선수범의 자세로 어린 동료들을 이끌었다”면서 “이번 챔프전에서 레오와 신경전이 있었는데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시몬의 무릎부상이 심해 더 이상 라이트 공격수를 못할 경우 2년 계약이 되어 있지만 놔줄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OK저축은행 측은 부상이 더 심해져 다음 시즌 뛰지 못하게 되더라도 수술과 재활 등을 모든 방법을 강구해 시몬의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 다른 리그로 보내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시몬의 무릎이 시즌 내내 성치 않았지만 팀을 향한 시몬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플레이오프 2경기서 77점(공격 성공률 56.67%), 챔프전 3경기서 70점(50.45%)를 기록하며 류리치, 레오와의 외국인 선수 맞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압도하는 놀라운 파괴력을 선보였다.

시몬은 “항상 아팠고 정말 많이 아팠다. 경기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면서도 “그래도 감독님께 뛰겠다고 했다. 내가 아픈 것보다 우리 팀의 우승이 먼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런 상태에서 해낸 우승이라 더욱 기쁘다. 우승하는 순간 여태까지 해왔던 훈련이나 고생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더라”며 우승 소감을 전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시몬이 외국인 선수임에도 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세대교체
리그 변화의 신바람

이처럼 OK저축은행의 기적은 단지 김 감독과 시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름 아닌 어깨동무리더십을 몸소 실천한 토종 선수들, 경기대 3인방의 이민규, 송희채, 송명근 등의 활약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더욱이 OK저축은행은 올 시즌 왕좌에 오른 만큼 이젠 도전자들에게 쫓기는 심정으로 리그를 치러야 하는 부담을 경험해야 한다. 특히 제자 김세진 감독에게 무릎을 꿇은 신치용 감독은 레오를 앞세워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또 전통 강호 현대캐피탈 역시 최태웅 감독(39)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면서 김세진 감독으로 시작된 젊은 사령탑 바람에 동참했다. 특히 최 감독은 현역 선수에서 지도자로 발탁된 최초의 케이스라는 점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더욱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젊은 사령탑 열풍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윤정환 감독과 광주FC 남기일 감독 역시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선수들과 나이차가 크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험 부족으로 위기 관리능력에는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결국 감독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또 장기레이스에서 긴 안목을 갖고 선수단을 관리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만이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김세진 감독이 팀을 맡은 지 2년 만에 파란을 일으킨 전례를 참고해볼 때 올 시즌 프로스포츠 곳곳에서는 젊은 감독들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 바람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젊은 감독들의 좌충우돌 성장기에 팬들은 이미 흥분해 있는지도 모른다.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