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고발] 전·월세 신고제 논란
시범 운영 앞두고 한계론…세입자들 “잘될까” 냉소적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전세난으로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불안 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시가 ‘전·월세신고제’ 실시를 선포했다. 들쭉날쭉한 전·월세 통계부터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세입자들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강제성이 없어 통계자료 작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은 지지부진했던 임대사업자등록제도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란 기대를 보이지만, 집을 구해야 하는 소비자 입장의 세입자들은 ‘과연’이란 의문이 더 큰 것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집구하기에 나선 세입자들이 느끼는 전·월세신고제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서울시 “전면적 시범 아닌 시도 단계”
현재 서울시는 전·월세신고제 시범구역을 정하기 위해 자치구들과 협의 중이다. 시범구역은 월세 거래량이 많은 지역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동남·동북·도심권 등 5개 권역으로 나눠 1개 동씩 선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전·월세신고제는 월세 가격을 세입자가 직접 등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범구역 내에서 전입신고를 하는 세입자에게 주소지, 전·월세 가격, 계약기간 등을 설문조사 방식으로 데이터를 확보해 전·월세 대책의 일환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은 월세 사업자들이 자신의 수익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등록을 하지 않아 관련 정보 수집이 어려웠다. 특히 최근 저금리로 집주인들의 월세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이 같은 상황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보증금이 1000만 원 수준으로 낮거나 보증금이 없는 순수월세의 경우 상당수 세입자들이 확정일자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 감정원과 통계청이 내놓는 전·월세 가격 통계도 저마다 달라 혼선을 빚어왔다. 표본수와 모집단, 조사방법 등에 차이가 있어 흐름은 비슷하게 나오지만 조금씩 차이가 난 것이다. 특히 한국 감정원의 월세가격지수는 표본수가 3000여개다. 가격동향 파악에는 도움이 되지만 정책에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세입자가 등록하도록 하면 이전보다 정보 수집이 용이해지고, 정확한 전·월세 통계를 확보할 수 있어 전·월세신고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되면 지금보다 주택 전·월세 정보가 더 많이 축적돼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월세신고제는 시범사업이 끝나 후 법제화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1월 국회 서민주거복지 특별위원회에 전·월세등록제 입법을 건의한 바 있다.
강제성 없다
음성적 관행 늘까
하지만 실효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많다. 우선 전·월세신고제는 강제성이 없고, 신고하는 세입자에게 인센티브도 없다.
또 임대인들이 세입자에게 누락을 요구하거나 실제금액보다 더 적게 쓰게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집주인이 소득 노출을 꺼려 세입자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은 시장의 높은 기대감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직장인 A씨는 “전·월세신고제 도입으로 인한 기대도 있지만 ‘과연’이란 생각이 더 크게 든다”면서 “집 없는 세입자들은 집주인이 원하는 조건에 맞춰줄 수밖에 없다. 월세방을 구할 때 전세대출이 가능한 집을 찾는 것도 어려운 게 현실인데, 집주인들이 전·월세신고를 하게 둘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입자 B씨는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시행하고, 효과를 보려면 아직은 보완점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며 “부동산의 경우 집을 구하는 세입자가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을의 위치에 있다. 때문에 괜히 세입자들만 피 보는 정책이 될까 반신반의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도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 후 임대인들이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못하게 하는 등의 음성적인 관행을 늘릴 수 있다”며 “최근 정부의 증세 정책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서울시의 자료가 국세청으로 넘어가 대대적인 임대소득 과세의 자료로 쓰일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계획 중인 전·월세신고제 법안 추진도 순탄하지 못할 전망이다.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은 “전·월세 통계를 수집하게 되면 그 정보는 당연히 임대사업자의 소득과 연계되고 이는 세금 문제와 연결지어진다”며 “전·월세등록제도가 임대사업자등록제와 비슷하게 이해될 경우, 여당에서는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돼 법안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부동산 정상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데 서울시가 사전협의 없이 이런 정책을 추진할 경우 엇박자를 낸다고 반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내년까지 유예된 임대사업자 등록제가 실시되면 필요 없는 정책이 될 수 있어 전·월세신고제가 얼마나 실익이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염려도 크다.
이 같은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세제나 금융지원과 같은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범사업 실시 후 확대하겠다는 단계적인 접근은 좋지만, 로드맵을 만든 뒤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당장 전면적인 시행이 아닌 시도 단계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우선 전·월세 조사를 서울시 자체적으로 시도해보려고 한다”며 “시민들에게 신고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전입신고 시 별도 서류에 전·월세가격, 임차기간을 적어낼 수 있는 설문형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